조동혁 박사(내과/신장내과)
조동혁 박사(내과/신장내과)

의사는 하루를 정신없이 지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기다림에 지친 환자들은 의사가 마치 골프라도 치다 늦은 것처럼 화를 내는 경우를 흔히 본다. 많은 의사들이 필자와 별반 다른 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아래는 지난 9월 어느날, 필자의 실제 하루 일과이다.

어젯밤 10시에 환자차트를 열고 리뷰를 하던 중, 2일 전 피검사를 한 환자의 결과가 밤중에 도착했다. 신장이 안 좋은 그 환자는 고칼륨증이 심했다. 필자는 곧바로 환자에게 전화를 걸고 바로 응급실로 가라고 권유를 한다. 이 늦은 시간에 환자에게 응급연락을 할 때면, 그 환자가 왜 병원에 가야 하는가에 대해 설명할 뿐만 아니라 가지 않겠다고 하는 환자를 설득하는 것, 그리고 종종 환자와 실랑이도 하게 되는 등 많은 시간을 들이게 된다.

하지만 다행히 그 환자는 필자를 신뢰하는 환자이기에, 간단한 설명에도 긴말 없이 병원에 가겠다고 한다. 그 환자는 밤 10시에 병원으로 향했고, 필자는 밤 12시에 응급실 의사가 그 환자의 상태를 알려주는 전화를 받은 후에야 마지막 정리를 한 후 새벽 1시에 잠자리에 든다. 그리고 새벽 5시가 되면 또다시 눈을 뜨고, 종합병원에서 입원한 환자의 회진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밤사이 새로 입원한 3명의 환자와 다른 입원해 있던 환자들을 보다보니 밤새도록 입원한 위급한 환자가 많아 8시부터 시작하는 외래는 오늘도 20분이 늦었다. 9시쯤, 한 환자는 어젯밤부터 혼동이 왔다고 보호자가 전화가 와서 바로 앰블란스를 불러 응급실로 가라는 말을 듣지 않고 예약없이 외래를 방문했다. 위급한 상황이기에 환자를 보니 심한 폐렴증상으로 인한 정신혼미/섬망상태가 의심되에 앰블란스를 불러 응급실로 호송하는 절차와 응급실 의사와의 전화 등으로 예상하지 못한 45분의 시간을 써버리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목이 아프고, 배가 아프고, 혈압이 너무 높다는 등, 예약하지 않은 환자 5 명이 추가로 방문했다. 그러다 보니 순식간에 병원로비는 시장바닥이 되면서 예약을 하고 온 환자 두 분이 짜증을 내며 언성을 높인다. 좀 빨리 환자를 진료하려 하지만 오늘은 쉬운 환자가 그리 많지는 않은 날이라는 생각을 하며 환자를 보고 있는 도중에 암전문의 선생님으로부터 메시지가 온다. 며칠 전 필자가 검사에서 이상소견이 발견되어 암전문의에게로 보내드렸던 환자가 조직검사를 했는데 암으로 판정이 나왔단다. 환자 앞에서 양해를 구하고 메시지를 확인하고는 다시 진료를 하려는데 좀전에 응급실로 보낸 환자 때문에 응급실 의사가 통화를 요청한다. 다시 한번 더 양해를 구하고 통화를 끝내고 다시 진료를 시작한다.

다음 환자는 당뇨에 대해서 필자와 너무나도 다르게 치료를 하는 의사를 주치의로 두고 있는 환자다. 벌써 당뇨 때문에 의사 세 명을 봤는데 누가 더 잘하나 볼려고 나한테 와봤단다. 이리저리 의사들을 보러 다니면서 약은 다 타놨는데 약은 맘에 들 때만 가끔 드신단다. 물론 당뇨관리 수치는 엉망이다. 결국 이런 의사쇼핑을 하는 환자는 내 말도 듣지 않기 때문에 또 한명의 의사가 약을 더 처방해준들 무엇하리. 그 분께는 주치의한테 가셔서 그 분하고만 당뇨관리를 하라고 말씀을 드리고 다시 오시지 않으셔도 된다고 하니 끝까지 나한테도 “좋은 약” 한두 개를 처방해 달라면서 자리 뜰 생각을 안 하신다. 반복되는 실랑이를 겨우 뿌리치고 나와서 그 다음 환자를 본다.

이런 식으로 하루 외래를 오후 4시에 끝내고 투석센터를 향해 떠난다. 투석을 하는 환자와 이야기를 하던 중 갑자기 그 환자의 눈이 돌아가더니 경련을 일으킨다. 또다른 응급상태로 환자를 뉘우고 안정시키느라 결국 30분의 계획없던 시간이 또 흘렀다. 다시 종합병원으로 향해 오후에 응급실로 실려온 나의 환자와 신장이 안 좋아 실려온 다른 환자들을 보고 나니 저녁 8시다. 레지던트 때부터 병원에서 30분안에 집에 오겠다고 하면 3시간이 넘어야 오는 것을 훤히 아는 아내는 전화가 없어도 오늘도 늦는 줄 이미 알고 있다.

집에 와서 환자차트를 20여 개 리뷰 하고 밤 9시 반에 두부김치를 먹고 샤워를 하니 11시다. 그러고 보니 금요일까지 건강칼럼 써야 하는 것이 생각나 다시 컴퓨터를 켜고 글을 쓰다보니 12시 반이 넘는다. 오늘도 새벽 1시 전에 잠자리에 들기는 힘들 것 같다. 아침부터 머리가 지끈지끈 아픈건 가라앉질 않고, 아이스팩으로 머리를 눌러가며 이렇게 하루를 마감하면서, 내가 언제까지 이렇게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