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희 상담사
한수희 상담사

상처를 주고받는 일은 우리 삶의 곳곳에서 일어나며 평생 일어난다. 성폭행, 학대, 유기, 폭언 같은 치명적인 사건이 발생했을 때만 생기는 게 아니다. 친구들의 모임에 나만 초대받지 못했을 때, 나에 대한 뒷담화가 들려 올 때, 내 인사를 받지 않는 사람을 만났을 때, 몇 번 보낸 문자나 전화에 아무런 답이 없을 때,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가 더 이상 중요한 존재가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을 때 등등… 수 많은 일들이 우리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으며, 우리 모두는 상처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마음의 상처를 입었을 때 대처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열등감에 눌려 자기만의 세계로 들어가 관계를 끊어 버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픔을 느끼는 것이 두려워 상처를 덮어두기 급급한 사람이 있고, 상처를 정면으로 직시하며 잠시 고통스럽더라도 적극적으로 상처를 다루는 사람이 있다. 이것은 결국 개인의 선택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은 고스란히 자신의 몫이라는 것이다.

상처를 다스리는 훈련의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들은 작은 일에도 피를 흘리며, 작은 종기 같은 상처를 암 덩어리처럼 키워 낼 위험이 크다. 왜냐면 상처는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시작해서, 같은 곳에 흉터를 남기기 때문이다. 상처 받는 마음에는 심리적 방아쇠(trigger)가 작동해서 우리를 강렬하고 부정적인 감정에 빠지게 한다. 학벌에 대한 열등감이 있는 사람이 학벌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유난히 민감하게 대응하고 상처를 받는 것이 그 예이다.

그들에게 있어 상처를 일으키는 행위에 대한 반응은(trigger) 지금까지 겪어 온 모든 상처에 대한 반응이다. 따라서 그가 느끼는 분노는 지금까지 받은 상처에 대한 총체적 분노이며 자신의 눈 앞에 있는 사람이 그 모든 상처의 전적인 책임자라도 되는 듯이 분노를 터트리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심리적 방아쇠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위험한 순간에 방아쇠를 당기려 하는 자신의 모습을 감지하고 통제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 그래서 자신에게도 상대방에게도 상처를 입히는 일을 피할 기회를 갖게 된다.

그럼에도 마음의 상처로 인해 분노, 좌절, 모욕감 등이 밀려올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상대의 말과 행동에 대한 판단을 하루 정도는 유보해야 한다. 상대방에 대한 판단은 나 자신의 심리적 트리거(trigger)를 살펴 보고, 아픈 곳을 들여다 본 후에 해도 절대 늦지 않다. 대신 그 시간에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아야 한다.

1) 방금 일어난 상처는 나에게 어떤 아픔을 주었나?

무시 당한 기분인지, 거절 당한 느낌인지, 나를 특별하게 대우해 주지 않은 것에 대한 서운함인지 혹은 나의 기대가 무너진 실망감인지 내가 느끼는 아픔이 무엇인지 자문해 보는 시간을 갖도록 한다.

2)나의 분노는 정당한가, 엉뚱한 사람에게 화를 낸 것은 아닌가?

다른 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는 상태에서 과민하게 문제를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가 유난히 민감하게 느끼는 부류의 일은 아닌지, 내가 화를 내는 상대가 나에게 만만한 대상이라 화풀이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3)되살아난 옛 상처가 있는가?

상대방은 나에게 상처를 줄 의도가 전혀 없었는데, 과거의 경험이 떠올라 그 상처를 이번 일에 투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옛 상처와 오늘의 일을 분리하고 있는지 점검해 봐야 한다.

4)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고통스러운 기억은 무엇인가?

상처를 다스리는 훈련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과정 중 하나다. 나의 상처가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그 출발점을 확인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숨겨 놓고 덮어 둔 상처는 저절로 치유되지 않으며 우리의 마음이 연약해 지는 순간에 여지없이 그 위력을 드러낸다. 때론 고통스럽더라도 그 고통을 들여다 보고 해결해 나갈 때 상처가 다시 도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5)나의 분노는 다른 사람에게 어떤 아픔을 주었을까?

보통 상처를 입었다고 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만 희생자인 듯 생각한다. 그러나 상처 입은 사람은 그 상처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게 되어있다. 그것은 자신의 연약함을 포장하기 위한 폭력적인 형태의 반응 일 수도 있고, 아무 잘못 없는 상대를 자꾸 상처를 주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는 경우 일 수도 있다. 하지만 상처의 근원을 치유하려면 나의 상처를 돌아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남에게 상처를 주는 일도 차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