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희 상담사
한수희 상담사

9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와 엄마가 스포츠용품 가게 앞을 지나가는데, 아이가 가게 앞에 진열된 멋진 빨간색 자전거를 봤다. 아이가 걸음을 멈추고 엄마에게 말했다. “와, 나도 저런 자전거가 있었으면 좋겠다.” 아이 엄마는 미친 듯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너 정신이 있는 거니! 크리스마스 선물로 자전거 사 준 게 언젠데! 이제 3월인데, 자전거를 또 사달라고! 내가 또 사줄 것 같아?” 엄마는 아이를 바닥에 팽개칠 것만 같았다.

안타깝게도 아이 엄마는 이해하기 위한 듣기와 결정하기 위한 듣기를 구분하지 못했다. 만약 엄마가 아이에게 “저 자전거의 어디가 그렇게 마음에 드니?”라고 물었다면, 아이는 “저기 핸들에 달린 반짝이는 줄 보이죠? 진짜 멋져요”라고 대답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반짝이는 줄은 값싼 생일 선물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이가 자전거의 어떤 부분을 마음에 들어 하는지를 들은 다음에는 이렇게 물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엄마가 왜 저 자전거를 사 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아이는 바보가 아니다. 이렇게 대답했을 수도 있다. “크리스마스 때 새 자전거를 받았잖아요.”

듣기의 위험함이 여실히 드러나는 한 사례다. 선하고 지혜로운 귀로 듣지 못 하는 것이 위험한 이유는 우리의 듣는 방식과 마음 상태에 따라 상대의 말을 해석하기 때문이며, 그 해석에 근거해 반응하게 되기 때문이다. 가장 위험한 듣기에는 방어적 듣기가 있다. 방어적 듣기란 화자의 진의와 무관하게 자신이 공격받는다고 느껴서 다양한 형태의 방어적 자세를 취하는 것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일단 상대방의 말을 듣고 나면 그 다음 순간 감정에 이끌려 반응하기 쉬우며, 인간관계나 조직 내의 신뢰를 매우 심각하게 침해하기 때문에 파괴적이다.

방어적 듣기의 유형은 으르렁거리는 사자 형, 놀란 사슴 형, 심약한 주머니 쥐 형, 도망치기 바쁜 토끼 형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주위의 사람들이 각 유형의 사람들을 어떻게 느끼는지를 살펴봄으로써 나는 어떤 유형의 사람인지 확인할 수 있다.

먼저 으르렁거리는 사자 형은 당신이 자제력을 잃고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모습을 가끔 본다고 하며, 당신이 화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다른 사람의 말을 잘라 버리거나 비아냥거리는 투로 말하는 편이라고 하며, 당신이 자기 생각이나 자기 영역을 지나치게 방어하려는 편이라고 말한다.

놀란 사슴 형은 당신이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염려에 빠지는 것을 자주 본다고 말하며, 당신이 염려에 빠질까 바 되도록 말해 주지 않으려고 조심한다고 말한다. 또한 당신이 절망에 빠지지 않도록 대화를 잘해주어야 한다고 말하며, 근심으로 인해 두통, 위통 같은 것을 자주 앓는 것을 보았다고 말을 한다.

심약한 주머니 쥐 형은 자신의 주장을 꿋꿋이 펼 때가 거의 없고 도와달라는 말도 하지 못하며, 사람들과 절대로 충돌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고 무조건 몹시 조심하는 편이다. 불쾌한 일을 피하기 위해 자기 주장을 너무 많이 포기함으로 당신의 관대함과 이타적인 태도를 다른 사람들이 이용하는 것을 종종 본다고 한다.

도망치기 바쁜 토끼 형은 심각한 문제에 관해서는 무조건 말하고 싶어하지 않으며, 사람들의 만남을 피하기 위해 변명을 한다. 일이 어려워지면 당신이 슬쩍 자리를 피하는 경우가 많으며,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래서 주위에서 당신을 늘 멀리 있는 사람처럼 느낀다고 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위태롭다고 느낄 때 본능적으로 방어하게 되어 있다. 이것은 당연한 반응이며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 낼 수 있는 결정적 방편이다. 문제는 방어가 필요치 않은 상황에서 방어를 함으로 나뿐 아니라 관계를 해치는 결과를 초래하는 데 있다. 내 안의 상처와 채워지지 못한 결핍들이 자기를 보호하기에 급급하게 만들다 보니, 상대의 입장을 헤아리는 것은 점점 어려워지고 자신의 잘못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눈은 닫게 만든다.

상대가 나를 무시한다고 느끼기 때문에 사자처럼 으르렁거림으로 나의 강함을 피력하고, 보호 받는 것을 통해 사랑을 느껴야 하기 때문에 연약함의 혜택을 포기하지 않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늘 착한 사람으로 인정받아야 하기 때문에 당연한 자기 주장도 펼치지 못하며, 나를 드러내는 것에 두려움이 있기 때문에 도망치기 바쁘다.

우리는 연약하다. 그 연약함이 부지불식간 악한 동기를 유발하게도 하고, 그것이 결국 나를 걸려 넘어지게 하는 올무가 되기도 한다. 연약함은 발견 되어야 하고, 고백되어야 하고, 그 연약함으로 인해 파생된 잘못은 말씀의 빛 가운데 조명되어야 하고, 연약함의 한계를 넘어 성장해야 하고, 나의 성장을 통해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 우리는 나 자신을, 내 가족을, 내 지체를, 내 이웃을 진정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