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근 목사
유동근 목사
온누리선교교회 담임
IMC 선교회 대표
두란노 아카데미 학장

호세아서 4장은 백성들의 죄악상에 대해, 5장은 제사장과 왕족들의 죄악상에 대해 낱낱이 말씀하시며, 6장은 참되게 회개하기를 권면하면서 종교적인 교만을 꾸짖는 내용이다.

1절,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거민과 쟁변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호세아서에는 ‘지식’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온다. 6절에 보면 “내 백성이 지식이 없어 망하는도다”라고 하신다. 이것은 머릿속의 객관적인 지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영 안에서 직관적으로, 체험적으로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을 말한다.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하니 무조건 쓸모없고 무익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야말로 머리로만 아는 지식을 말한다. 그리고 그런 지식은 아닌 게 아니라 무용하고 해롭기까지 하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전서 2장에서 온전한 자들 중에서의 지혜를 말하였고 그 지혜는 이 세상 지혜가 아니고 이 세상의 없어질 관원의 지혜도 아니며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라고 하였다. 성령 안에서 얻어진 지혜라는 말이다. 성도들은 무지한 것을 자랑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알되 자신의 지혜와 총명이 아닌 성령께서 지혜로 가르쳐주신 지식으로 충만해야 한다.

여기서 여호와께서 이 땅 거민과 ‘쟁변’하신다고 했다. 하나님은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의견을 듣기도 하시고 묻기도 하시는 분임을 알 수 있다. 우리 마음속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건한 마음으로 그분의 뜻을 알기 위해서 따져보는 것을 하나님은 결코 나쁘게 생각지 않으신다. 그분은 우리의 마음을 존중하시며 사람 차원으로 낮아지셔서 ‘너는 그렇게 생각하느냐?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하는 식으로 쟁변도 하신다. 여기서 ‘인애’란 사랑을 말한다. 당시 이스라엘은 인애도 없고 진실도 없으며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었다.

2절, 오직 저주와 사위와 살인과 투절과 간음뿐이요 강포하여 피가 피를 뒤대임이라

피를 흘리는 싸움이 많다는 것이다. 사위(deception)란 말은 사기 혹은 거짓을 뜻한다. 투절이란 도둑질이다. 1절의 인애의 상황은 없고 저주, 사기, 도적질, 간음뿐이라고 하였다. 이런 때는 살인이 살인을 따른다. 서로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피 터지는 싸움을 계속한다는 말이다.

3절, 그러므로 이 땅이 슬퍼하며 무릇 거기 거하는 자와 들짐승과 공중에 나는 새가 다 쇠잔할 것이요 바다의 고기도 없어지리라

그래서 결국 심판을 받는다는 것이다. 왜 심판을 받는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마땅히 있어야 할 진실, 마땅히 있어야 할 하나님에 대한 사랑,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없고, 저주와 속이는 것과 살인, 간음, 도적질, 피 흘리는 것들만 있기에 그 나라를 공허하게 하고 슬퍼하게 하시는 것이다. 따라서 자연과 어류들까지 해를 입는다고 하였다. 오늘날 이 세계가 그러한 처지가 되어가고 있다. 땅에 죄악이 관영하면 자연계도 불행해진다.

4절, 그러나 아무 사람이든지 다투지도 말며 책망하지도 말라 네 백성들이 제사장과 다투는 자같이 되었음이니라

그러나 다투고 책망할 필요가 없다고 하신다. 인심이 악해진 때에는 지도하는 말이나 충고하는 말을 듣지 않는다. 이런 시대에는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 고로 책망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이다. 책망하면 다투게 된다. 오늘날 어떤 교회에서는 교역자들과 성도들이 다툰다. 이것은 매우 타락한 상황이다. 잠언서를 보면 지혜로운 자들은 책망을 잘 받는 자들이다.

5절, 너는 낮에 거치겠고 너와 함께 있는 선지자는 밤에 거치리라 내가 네 어미를 멸하리라

제사장들은 낮에 섬긴다 하면서 범죄하고 선지자는 밤에 범죄한다는 뜻이다. 거친다는 것은 걸려 넘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심판의 광경이다. 어미를 멸한다는 것은 국가를 멸한다는 뜻이다. 즉 모체를 심판하시겠다는 뜻이다. 당시 이스라엘의 수도는 사마리아이고 사마리아는 각 지역에 대해 어미 같은 존재였다.

6절,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하나님을 섬기려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어야 한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왜 망하게 되는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이다. 이것이 큰일이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버리시는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버리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먼저 하나님을 버렸기에 하나님도 그들을 버리시는 것이다. 이 말씀은 로마서 1장에도 있다. 그들이 마음속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니까 하나님도 그들을 버려두셨다고 한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버릴 때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신다. 이것은 아주 두려운 일이다. 하나님 알기를 힘쓰라! 이것은 작은 일이 아니다.

빛을 미워하는 자들은 지식을 얻을 수 없다. 무엇을 아는 것도 그 정도가 다 다르다. 진리를 깨닫고 아는 것은 많은 생각의 연단, 부지런한 생각의 훈련을 필요로 한다. 무지(無知)는 신앙의 어머니가 아니라 패망의 어머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매튜 헨리). 당시 제사장이나 백성이나 다 지식이 없었다. 오늘날도 어떤 단체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기존 지식을 최고의 것으로 여겨 전혀 재고의 여지가 없이 붙들고 있는 것을 보는데, 이는 무지로 가는 지름길이다. 최상의 지식이란 없다. 끊임없이 자신의 아는 것을 점검하여 새롭게 조명해보고 교정하며 보완해나가는 길이 있을 뿐이다. 짧은 세월에 많은 것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지식은 많은 시행착오와 경험을 통해 주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월이 필요하다.

7절, 저희는 번성할수록 내게 범죄하니 내가 저희의 영화를 변하여 욕이 되게 하리라

이스라엘 백성의 수가 많아질수록 범죄가 더했다. 하나님은 그래서 그들의 영광을 욕되게 하셨다. 그러므로 신약에 사는 우리 또한 우리와 함께하는 성도수가 많아질 때 조심해야 한다. 사람이 늘어날수록 재산이 늘고 명예와 세력이 늘어난다. 당시 이스라엘은 민족의 수가 불어날수록 더욱더 많은 범죄행위가 나타나게 되었다.

8절, 저희가 내 백성의 속죄 제물을 먹고 그 마음을 저희의 죄악에 두는도다

이것은 제사장들을 두고 하신 말씀이다. 제사장들은 백성들을 위하여 속죄 제사를 드리고 그런 연후에 그 제물을 먹게 되어 있었다. 따라서 백성들의 범죄 건수가 많아지면 속죄 제물 또한 많이 들어온다. 그래서 제사장들이 속죄 제물을 먹는 것에 재미가 붙은 것이다.

오늘날도 어떤 좋지 않은 사역자들은 당시의 이런 제사장들처럼 하나님의 백성들의 영혼을 관심하고 양육하는 것에 중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돈을 받는 재미로 돌아다니면서 일하려고 한다. 이것은 발람과 같은 행위이며 주님에 의해 정죄된 것이다(계 2:14).

9절, 장차는 백성이나 제사장이나 일반이라 내가 그 소행대로 벌하며 그 소위대로 갚으리라

제사장이나 백성이나 그 소행이 일반적으로 좋지 않다는 말이다.

10절, 저희가 먹어도 배부르지 아니하며 행음하여도 수효가 더하지 못하니 이는 여호와 좇기를 그쳤음이니라

그들은 먹는 것에 탐닉하고 또 행음했다. 제사장 직분을 오용한 것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다. 그들은 불법으로라도 먹기를 좋아했지만 그것이 그들에게 축복이 되지 못하고 행음하여도 그 수효가 늘어나지 않을 거라고 하신다.

11절, 음행과 묵은 포도주와 새 포도주가 마음을 빼앗느니라

이것은 마시는 포도주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상, 종교, 미신적인 사상이 그들을 미혹했다는 말이다.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우상들이었다.

12절, 내 백성이 나무를 향하여 묻고 그 막대기는 저희에게 고하나니 이는 저희가 음란한 마음에 미혹되어 그 하나님의 수하를 음란하듯 떠났음이니라

이것이 모두 다 우상을 숭배하는 방식이다. 하나님께 묻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지식, 교리, 사상에게 묻는다. 철학과 심리학, 정신분석학도 있다. 이런 것들이 마치 사람을 주님께 잘 인도해줄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아들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나아갈 수 없다고 하셨다. 예수님 한 분이 길이요 진리이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 외에도 길이 있는 것처럼 뭔가를 의지한다. 그러면서 신앙이 더 좋아졌다고 확신한다. 그것은 미혹된 것이다. 하나님이 아닌 막대기 같은 것들이 사람들에게 뭔가 알려 주는 것을 사람들은 신기하게 듣는다. 이것은 음란한 마음에 미혹된 현상이다. 오늘날 이런 일들이 너무 많다. 하나님 아닌 거짓된 것들을 의지하고 숭배하는 것이다.

13절, 저희가 산꼭대기에서 제사를 드리며 작은 산 위에서 분향하되 참나무와 버드나무와 상수리나무 아래서 하니 이는 그 나무 그늘이 아름다움이라 이러므로 너희 딸들이 행음하며 너희 며느리들이 간음을 행하는도다

사람들은 왜 참되신 하나님을 찾지 않는가? 많은 우상들이 겉보기에 너무 그럴듯해서 그쪽으로 가는 것이다.

14절, 너희 딸들이 행음하며 너희 며느리들이 간음하여도 내가 벌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남자들도 창기와 함께 나가며 음부와 함께 희생을 드림이니라 깨닫지 못하는 백성은 패망하리라

이 말씀은 심판하지 않으시겠다는 뜻이 아니다. 그들의 딸들이 행음하고 며느리들이 간음하는데 남자들도 창기에게 다니고 요즘 말로 내연의 처와 함께 희생 제물을 드린다고 하니 그들을 다 함께 벌하시겠다는 것이다.

15절, 이스라엘아 너는 행음하여도 유다는 죄를 범치 말아야 할 것이라 너희는 길갈로 가지 말며 벧아웬으로 올라가지 말며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지 말지어다

북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 부패했다는 것을 통탄해하는 말씀인데, 남쪽 유다만큼은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시는 것이다. “길갈로 가지 말며 벧아웬으로 올라가지 말며”. 길갈은 북쪽의 우상숭배 장소이고, 벧아웬은 벧엘의 별명으로서 이 역시 우상숭배의 장소이다. 이 제단들은 여호와를 섬긴다는 명목으로 우상을 섬기는 데 사용되었다. 그들이 우상을 섬긴다고 해서 여호와의 이름을 전혀 부르지 않는 게 아니었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면서 사실은 우상을 숭배했던 것이다.

16절, 이스라엘은 완강한 암소처럼 완강하니 이제 여호와께서 어린 양을 넓은 들에서 먹임같이 저희를 먹이시겠느냐

“완강한 암소처럼 완강하니”. 이스라엘이 우상을 섬기는 죄를 회개하지 않고 한번 사로잡히더니 이제는 더 고집이 세졌다는 말씀이다. 사람이 일단 어떤 종교적 관념에 강하게 붙잡히면 완강한 암소처럼 절대 바뀌지 않는 것을 본다.

17절, 에브라임이 우상과 연합하였으니 버려두라

우상과 연합했다는 것은 히브리어로 ‘카블 아짜삠’이라고 하는데, 이는 아주 연합이 강해서 서로 떠날 수 없는 부부처럼 합해진 것을 뜻한다(말 2:14). 그들은 이처럼 우상 숭배 관념이 철저히 머릿속에 박혀서 이제는 완전히 버려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여졌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잘못된 교리나 지식이나 사상에 빠지면 그 세뇌된 것 때문에 벗어나지 못하고 이렇게 버림받게 된다. 그래서 이단의 사상이 무서운 것이다.

18절, 저희가 마시기를 다 하고는 행음하기를 마지아니하며 그 방백들은 수치를 기뻐하느니라

마신다는 것은 죄를 마시는 것을 말하는 듯하다. 술을 마시는 행위처럼 우상숭배를 위해서도 먼저 뭔가 마시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은 우상을 숭배하다가 수치를 당해도 좋다고 한다.

19절, 바람이 그 날개로 저를 쌌나니 저희가 그 제물로 인하여 수치를 당하리라

이것은 어려운 말이다. 저희가 죄를 먹고 마시고 우상숭배를 계속하며 그 방백들은 수치를 기뻐하는 것이 4장에 나타난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태인데, 이러한 상태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앗수르 사람들이 날개 같은 바람으로 싸듯이 포로로 잡아간다는 예언의 말씀이다. 그들은 홀연히 무섭게 납치당하듯 할 것이고 큰 수치를 당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