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효 목사
장재효 목사(서울 성은교회)

성경은 인간이 영과 육으로 구성되었다고 말합니다. 영은 하나님으로부터 파생되어져 나왔기에 육보다 더욱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가치 기준은 영에 있습니다. 영이 하나님 앞에 어떻게 살고 있느냐가 인생의 성패를 좌우하게 됩니다. 본문을 통해 성공한 인생을 사는 자는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 보도록 합시다.

1. 악인의 것을 빼앗아 주시는 하나님

1절에 “유다의 죄는 금강석 끝 철필로 기록되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다의 죄는 최고로 단단한 금강석 끝 철필로 절대로 지워지지 않게 새겼다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죄도 마찬가지입니다. 절대 지워지지 않게 새겨져 있습니다. 유다의 죄는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온갖 우상들을 섬기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아세라는 옷을 입지 않은 형상으로 나무를 깎아 만듭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이 영적으로, 육체적으로 음란의 죄를 짓게 됩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다가 모세를 통하여 출애굽하게 됩니다. 광야 40년의 세월을 보내고 약속의 땅에 들어갔는데, 그곳은 텅 빈 땅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가나안 일곱 족속과의 전쟁에서 이겨서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됩니다. 가나안 원주민들은 자신들이 잘 가꾸어놓은 생활 터전을 한 푼도 받지 못하고 이스라엘에게 고스란히 넘겨주게 되었습니다. 이는 전도서 2장 26절에 “하나님이 그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시나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시고 저로 모아 쌓게 하사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에게 주게 하시나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라는 말씀을 생각나게 합니다.

가나안 원주민들은 자녀 대대로 잘 살기 위하여 노고를 아끼지 아니하고 생활 터전을 마련했는데, 하나님께서는 이를 그 기뻐하는 자에게 거저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가나안 원주민들은 그저 수고만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목적으로 살아가는 자들에게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이것을 믿는다면 당장 우리의 삶이 달라질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살리심을 받아 살고 있으면서도, 이방인들이 섬기는 아무것도 아닌 금, 은 목석에 불과한 것을 섬기느라 정신이 없진 않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을 가지고, 우상들에게 바치고 절을 하고 복을 빌면서 살아가기도 합니다. 이는 참 어리석은 인생입니다.

출애굽기 20장 4절 이하에는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라고 말씀합니다. 가나안 원주민들은 우상 섬기고 모든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살다가 그들의 모든 토지와 집과 재물을 다 빼앗겼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의 주인을 이스라엘 백성으로 바꾸어 버리신 것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남의 이야기가 아닐 수 있습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 아닌 세상의 것을 우상으로 삼고 살아간다면 헛수고만 하게 될 것입니다. 그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 도와주는 것으로 끝나며 우리는 지옥 가는 비참한 인생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성경은 죄인에게는 노고를 준다고 합니다. 노고는 일하는 고통입니다. 죄인은 몸살 앓아가며 일하게 하시고, 그 결과물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를 소원하는 사람에게 넘겨주십니다. 모든 것의 창조자이시고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일은 죄인들이 하고, 쓰는 것은 하나님의 일꾼들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목적으로 사용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빨리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면 세상의 우상을 좇지 않고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살 수 있습니다.

2. 악인의 멸망과 의인의 형통

5-6절은 하나님을 불신하고 배척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한마디로 그 인생은 불행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 24장 19절에는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지금은 형통한 것처럼 보이나 실상은 곧 저주를 받아 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마치 사막의 떨기나무와 같습니다. 떨기나무는 나무 그 자체로 쓸모가 없습니다. 그래서 인생 중에 가장 참혹하고 비참한 삶을 사는 자를 떨기나무에 비유합니다. 그는 건조하고 메마른 사막에 거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곳은 사람이 거할 수 없는 땅입니다. 하나님께 버림받은 땅의 대표입니다. 그곳에서 언젠가 잘 될 날이 올 것이라는 헛된 희망을 품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들이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자들의 삶은 다릅니다. 7절에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여기에서 ‘의지’한다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에게만 기대를 거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의뢰’한다는 것은 완전히 맡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만 나의 소망이 있음을 알아 모든 기대를 걸고, 내 삶이 나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여 믿고 맡기는 자가 바로 복을 받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가뭄이 와도 걱정이 없습니다. 항상 그 잎이 푸르고 결실이 그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뿌리가 물가에서 공급해 주는 수분을 계속해서 받기 때문입니다. 성도 역시 하나님께 붙어 있으면 그 삶이 형통하며 은혜의 열매가 끊임없이 맺어지게 됩니다.

3. 악인에게 보응하시는 하나님

10절에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그 행실대로 보응하나니”라고 말씀합니다. 그가 행한 대로 갚아주신다는 것입니다. 의를 행하기 위해 참아가며 죄를 이기는 자는 그 행위대로 갚으셔서 하나님 나라의 주인공이 되게 하십니다. 반면에 불의와 죄악을 일삼은 자는 지옥에 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악한 자에게 보응하시는 방법으로 자고새의 예를 듭니다. 다른 얌체 없는 새가 몰래 자고새의 둥지에 자기의 알을 낳아놓고 가면 이 자고새는 자기가 낳은 알인줄 알고 지극정성으로 품습니다. 새끼들이 부화해서 알에서 나왔는데, 그 생김새가 다르게 됩니다. 그래도 자고새는 알을 품었기에 어느 정도 클 때까지 돌보게 됩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품었던 새들은 감사하다는 인사도 없이 떠나버리게 됩니다. 마치 이와 같이 우리가 가슴에 품고, 금고에 넣어서 애지중지 한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옮겨버리시면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임자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물질에 대한 욕심이 도가 넘쳐서 불의한 방법으로 소유하게 된다면 그것은 결코 우리의 것이 될 수 없습니다. 도리어 그 물질이 옮겨질 때에 소유자에게 화병만 남기고 가게 될 것입니다. 이런 것을 깨닫는 것이 지혜입니다. 그러니 자고새처럼 내 것이라고 주장하며 보관하느라고 헛수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게 맡겨 주신 물질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일에 요긴하고 선하게 써야 합니다. 그런 자가 하나님의 선한 청지기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분명히 하나님은 그를 향하여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칭찬하시며 영광의 면류관을 씌워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생을 설계하시는 분이십니다.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오늘까지의 삶을 주관해 주셨습니다. 우리를 살리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뜻 가운데 사용할 곳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의 삶의 성공은 하나님의 사명 가운데 힘 있게 쓰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것은 철저히 회개하고, 오직 하나님께 자신을 의탁해야만 가능합니다. 하늘나라를 위한 영적 기준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모든 여건과 환경을 마련해 주시고, 지혜와 은사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의 참된 성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