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성 목사.
정우성 목사(남가주광염교회)

연말연시가 되면 자기도 모르게 왜 그런지 바쁘다. 정리해야 할 일도 있고 앞으로의 계획도 준비하느라 시간이 빨리 간다.

지는 해, 뜨는 태양 아래 환경은 변하는 것 같지만 우리는 진실로 변화될 수 있을까? 달력 한 장 넘기고 새 달력을 걸어 놓는다 할지라도 우리 마음이 변해야 다 변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사람의 힘은 기쁨이다. 공부도 기쁘면 공부를 한다. 운동도 기쁘면 운동을 매일 한다. 페이스북 하는 것도 즐거우면 시간 가는지 모르게 한다. 돈 버는 것도 즐거우면 열심히 돈을 번다. 요즈음 당신은 무엇이 가장 기쁘고 즐거운가? 잠 안자고 밥 안 먹어도 그것만 생각하면 너무 너무 즐거운 것이 있는가? 그런데 우리 주변에 들려오는 뉴스는 힘든 우리를 더욱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 사실 기뻐할 일이 없다고 말한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 방법을 찾을 수 있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느8:10) 하나님을 기뻐하면 하늘로부터 새 힘을 받고 세상을 정복하며 살 수 있다고 한다. 그러면 도대체 하나님을 기뻐한다는 말이 무엇일까? 하나님 자신을 기뻐하는 것이다. 하나님 자체를 좋아하는 것이다. 내 인생에 하나님이 전부이다. 우리 소원 자체가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보다, 선물보다, 자연세계보다, 사람보다, 건강보다 더욱 더 하나님 자신 때문에 즐거워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가장 크게 기뻐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만족하게 하실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성경을 읽고, 듣고, 지키는 것이다. 말씀을 듣고 깨닫는 것이다.

그런데 말씀을 마음으로 깨닫는 방법은 오직 성령님으로만 가능하다. 성령님께 구하라. 성령 충만을 바라보라. 성령님을 의지하라.

말씀을 듣고 우리는 반응을 본다. 감정적 반응과 의지적 반응이다. 감정적 반응은 말씀을 듣고 죄를 깨닫고 마음을 찢는 것이다. 우는 것이다. 그러면 말씀 때문에 기쁨이 찾아온다. 기쁨이 넘치는 것이다. 의지적 반응은 말씀에 대한 철저한 순종이다. 순종을 통해서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다. 우리가 순종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기쁨을 표현할 때 행복, 즐거움, 유쾌함, 흡족, 만족, 갈망, 갈구, 목마름, 열정 등의 단어를 같이 사용하는 예가 성경에 종종 있다.

하나님께 심취한 시인 아삽은 이렇게 노래한다.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시 73:25-26).

다윗왕도 이와 같았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네게 보이시니리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16:11)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에 관한 가장 두드러진 표현 가운데 하나를 하박국 3:17-18에서 찾아볼 수 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바꾸어 말하자면, 인간의 삶과 이 세상의 행복을 지탱시켜 주는 모든 것이 사라질 때에도 하나님은 우리의 즐거움, 우리의 기쁨이 되실 것이다. 다른 모든 것을 잃었을 때 하나님만으로 기쁨을 누린다면, 이것이야말로 기적 같은 은혜이다.

구약과 신약 성경 모두에서 주님을 기뻐하라는 명령을 발견할 수 있다.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시 37: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 4:4).

예수님의 기쁨을 맛본 사람들이 가장 억누를 수 없는 갈망은 마지막 날,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 할지어다"(마 25:21)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다. 이는 그 무엇과도 비길 수 없는 소망이다. 하나님의 도성은 기쁨의 도성이다. 그리고 그 기쁨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오는 불멸의 기쁨이다.

연말 연시에 우리가 전심으로 전력을 다하여 이렇게 고백하면 어떨까?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시1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