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카운티제일장로교회 엄영민 목사.
엄영민 목사(오렌지카운티제일장로교회)

한 권사님께서 편찮으셔서 심방을 갔다. 척추 뼈가 신경을 눌러 한 쪽 다리가 너무나 아프고 마비 증세까지 일으켜 꼼짝없이 누워계셨다. 혼자 노인 아파트에서 사시기 때문에 진짜 곤란한 것은 식사를 챙기는 일과 화장실 가는 일조차 제대로 하실 수 없는 점이었다. 아픈 다리를 끌면서 기어 다니곤 하시는데 그나마 움직이고 나면 다리가 견딜 수 없이 아파 가능하면 누워서 지내시곤 하셨다. 나는 교회에 있는 휠체어 하나를 빌려드리겠다고 말씀드렸다. 집 안에서라도 휠체어로 움직이면 다리의 통증을 줄이면서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권사님도 쾌히 빌려달라고 하셔서 집안에서 휠체어로 움직일 수 있는 동선을 점검해보았다. 부엌에서 응접실을 거쳐 방과 화장실로 다닐 수 있는지 점검을 하는 중에 화장실 문 앞에 TV 받침대와 곁에 싸놓은 옷 보따리가 문제였다. 그것들을 다른 곳으로 옮기려고 권사님께 여쭙고 자세히 둘러보니 그 어디에도 옮겨 놓을 공간이 없었다. 구석구석 짐들이 너무 많았다. TV 받침대와 잘 싸서 놓은 옷들의 필요를 여쭈웠더니 버려도 될 것 같아 그것들을 버리자고 말씀드렸다. 권사님은 말없이 망설이고 또 망설이신다. 그래서 제가 버리시지 않으시면 이고 주무셔야 된다고 농담하며 웃었지만 그런 상황이 어디 그 권사님만이겠는가? 어떤 사람이나 어느 집이나 상황은 비슷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어떤 물건은 거의 평생을 같이 해온 자식 같은 것들인데 어떻게 고민 없이 버릴 수 있겠는가?

신혼여행 때의 일이 생각났다. 신혼여행을 위하여 짐을 챙겼더니 작지 않는 가방 두 개였다. 여행용 짐을 챙기는 요령이 없는데다 폐백을 못했던 터라 신혼여행을 마치면 고향에 들러 친척들에게 인사를 할 요량으로 한복까지 넣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거기에 제주에서 여행 중에 친구 누나를 만나 짐을 하나 더했다. 막 따낸 귀한 것이라며 주시는 바람에 감귤 한 박스가 더 늘어난 것이다. 받을 때는 기분이 좋았는데 작지 않는 가방 두 개에 감귤 한 박스를 끌고 신혼여행을 하는 것을 상상해보라. 얼마나 고생을 했던지... 설상가상이랄까? 그 짐들을 챙기느라 사진관에서 빌려간 당시 내 월급 3배 정도 되는 카메라를 잃어버리는 불상사가 일어나고 말았다. 카메라는 물론이고 신혼여행이란 아련한 추억까지 다 잃어버린 것이다. 그 카메라 값을 몇 달에 걸쳐 갚느라고 고생한 것까지 신혼여행 때 짐은 나를 두고두고 힘들게 하였다.

그때 내가 확실히 배운 교훈이 하나 있다. 여행을 할 때는 짐을 가볍게 챙겨야 한다는 진리(?)였다. 그래서인지 여행을 할 때마다 짐을 가볍게 싸려고 애쓰는 버릇이 생겼다. 하지만 인생의 짐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죄의 짐, 근심 걱정의 짐, 어떤 땐 동서양의 모든 짐까지 짊어지고 낑낑 메는 것을 보노라면 나는 아직도 짐 하나 정리할 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이다. 나도 모르게 집착이 버릇처럼 일어날 때마다 이 교훈을 떠올리면서 짐을 줄이려고 노력을 하지만 그 놈의 욕심 때문에 쉽게 버리지 못한다. 주님이 당신께 맡기고 배우고 당신으로 인해 가볍게 살라 하시니 이젠 주님께 가지고 가야겠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 11:28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