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식은 한자로 '거짓 가(假)‘에 '꾸밀 식(飾)‘ 이 합쳐져 거짓으로 꾸미다 라는 뜻이다. 이 용어는 여러 가지 유사어가 있는데 위선, 허세, 외식, 거짓, 꾸밈 등과 같은 개념이다. 국어 사전적 의미로는 ’말이나 행동을 다른 사람이 듣고 보기에만 좋도록 거짓으로 꾸미는 것을 뜻한다.
성경에는 가식이라는 용어가 쓰이고 있지 않지만 이와 비슷한 말로 외식이란 말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신약 성경 마태복음 23장 25절에 갈 때 겉은 깨끗하되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한 바리새인들을 꾸짖으셨다. 또 입술로만 하나님을 존경하는 바리새인을 보고 꾸짖으셨다.
한편 성경 이외의 일반적인 용법에서 이 단어는 주로 극장에서 쓰이는 용어였다. 즉 무대 위에서 '답변하다', '대화하다', '어떤 역할을 맡아 연기하다' 라는 의미로 쓰였다. 그리고 종교적, 도덕적 의미로는 배우가 연기를 하듯이 '~을 가장하다' 또는 '~인 체하다', '거짓으로 행동하다', '외식하다'라는 의미로 쓰이게 되었으며 성경에서도 이런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배우는 외형적이고, 외형적이라는 것은 배우를 뜻한다. 그래서 어거스틴은 "배우들이 그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인 것처럼 가장하고, 그들의 본 모습이 아닌 다른 사람의 역할을 하는 것처럼 교회 안과 모든 인간 생활에서 본래의 자기 모습이 아닌 것처럼 가장하려는 모든 사람은 위선자이거나 배우"라고 말했다. 성경에는 가식이라고 직역돼서 나온 단어는 없다. 그대신 거의 외식이라는 단어로 번역되어 있다.
한 마디로 가식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약점을 감추거나 허세를 부리는 것, 또는 본 마음과 달리 위선적인 언행을 꾸미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세상 사람들은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보고 '표리부동', '겉과 속이 다르다', '위선적이다', '가식적이다'라는 말을 많이 한다. 만일 우리의 신앙에 진실이 결여되어 있다면 비난받아 마땅하다.
가식은 하나님이 어떻게 보시는가를 염두에 두지 않고 사람이 어떻게 보느냐를 염두에 두어 외모를 꾸미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가식의 베일을 벗어 버려야 한다. 사실은 늑대인데 양의 탈을 썼다면 바로 그것이 가식이다.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악의를 숨기고 선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자들을 꾸짖으실 때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겉으로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다고 말씀하셨다.
성경에서 먼저 자신을 돌아보라고 말하고 있다(마7:5). 또 먼저 내면을 깨끗이 하고 '모든 감추어진 것은 드러나지 않는 것이 없고, 숨은 것이 드러나지 않는 것이 없다(눅12:2)'라고 말씀하고 있다. 내 안에 감추어 진 것이 발견되어 졌을 때 그것을 빨리 드러내는 것이 좋다.
가식하는 사람은 우선 그의 의식 속에 하나님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직 그의 관심은 사람밖에 없다. 그것은 너무나 단순하지만 중요한 말이다.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하나님을 기쁘게 하랴?" 가식하는 사람은 사람을 기쁘게 할 생각으로 가득한 사람들이다.
결국 가식은 하나님을 뒤로 한 인간의 얕은 수작으로서 하나님을 속이고, 다른 사람을 속이고,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이런 하나님 앞에 당당히 나올 수 없게 된다.
그의 성공은 진정한 성공이 아니며, 그 명예는 진정한 명예가 아니고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보실 때 이 일이 바른가, 과연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가?를 늘 물어야 한다.
글/ 전요섭 교수(성결대 기독교상담학, 한국복음주의기독교상담학 회장)
성경에는 가식이라는 용어가 쓰이고 있지 않지만 이와 비슷한 말로 외식이란 말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신약 성경 마태복음 23장 25절에 갈 때 겉은 깨끗하되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한 바리새인들을 꾸짖으셨다. 또 입술로만 하나님을 존경하는 바리새인을 보고 꾸짖으셨다.
한편 성경 이외의 일반적인 용법에서 이 단어는 주로 극장에서 쓰이는 용어였다. 즉 무대 위에서 '답변하다', '대화하다', '어떤 역할을 맡아 연기하다' 라는 의미로 쓰였다. 그리고 종교적, 도덕적 의미로는 배우가 연기를 하듯이 '~을 가장하다' 또는 '~인 체하다', '거짓으로 행동하다', '외식하다'라는 의미로 쓰이게 되었으며 성경에서도 이런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배우는 외형적이고, 외형적이라는 것은 배우를 뜻한다. 그래서 어거스틴은 "배우들이 그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인 것처럼 가장하고, 그들의 본 모습이 아닌 다른 사람의 역할을 하는 것처럼 교회 안과 모든 인간 생활에서 본래의 자기 모습이 아닌 것처럼 가장하려는 모든 사람은 위선자이거나 배우"라고 말했다. 성경에는 가식이라고 직역돼서 나온 단어는 없다. 그대신 거의 외식이라는 단어로 번역되어 있다.
한 마디로 가식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약점을 감추거나 허세를 부리는 것, 또는 본 마음과 달리 위선적인 언행을 꾸미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세상 사람들은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보고 '표리부동', '겉과 속이 다르다', '위선적이다', '가식적이다'라는 말을 많이 한다. 만일 우리의 신앙에 진실이 결여되어 있다면 비난받아 마땅하다.
가식은 하나님이 어떻게 보시는가를 염두에 두지 않고 사람이 어떻게 보느냐를 염두에 두어 외모를 꾸미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가식의 베일을 벗어 버려야 한다. 사실은 늑대인데 양의 탈을 썼다면 바로 그것이 가식이다.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악의를 숨기고 선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자들을 꾸짖으실 때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겉으로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다고 말씀하셨다.
성경에서 먼저 자신을 돌아보라고 말하고 있다(마7:5). 또 먼저 내면을 깨끗이 하고 '모든 감추어진 것은 드러나지 않는 것이 없고, 숨은 것이 드러나지 않는 것이 없다(눅12:2)'라고 말씀하고 있다. 내 안에 감추어 진 것이 발견되어 졌을 때 그것을 빨리 드러내는 것이 좋다.
가식하는 사람은 우선 그의 의식 속에 하나님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직 그의 관심은 사람밖에 없다. 그것은 너무나 단순하지만 중요한 말이다.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하나님을 기쁘게 하랴?" 가식하는 사람은 사람을 기쁘게 할 생각으로 가득한 사람들이다.
결국 가식은 하나님을 뒤로 한 인간의 얕은 수작으로서 하나님을 속이고, 다른 사람을 속이고,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이런 하나님 앞에 당당히 나올 수 없게 된다.
그의 성공은 진정한 성공이 아니며, 그 명예는 진정한 명예가 아니고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보실 때 이 일이 바른가, 과연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가?를 늘 물어야 한다.
글/ 전요섭 교수(성결대 기독교상담학, 한국복음주의기독교상담학 회장)
© 2020 Christianitydaily.com All rights reserved. Do not reproduce without permissi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