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은 짧은 기독교 역사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활발한 선교활동을 펼치고 있는 나라로, 해외에 흩어져 사는 한인들은 고국보다 더 뜨거운 열정으로 선교에 앞장서고 있다.
교회는 이민사회서 가장 중요한 한인커뮤니티다. 한국에서 하와이 이민을 처음 모집할 때 인천에 있는 교회가 중심이 되었으며, 1965년 이후 새로운 이민법에 따라 미국으로 이주한 이들도 교회를 중요한 사회활동 공간으로 생각했다.
교회를 통해 고국의 소식을 듣고, 교회에서 교제하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공항에 내린 첫 순간부터 교회의 안내를 받아 집을 구하고, 직장을 구하고, 자동차를 등록하고, 자녀들을 취학 시키는 등 생활 전반적인 것까지 친형제보다 더 친절히 교회는 도움을 줬다.
교회와 사회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존재다. 교회의 사회정치 참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던 부정적으로 바라보던 지금까지 교회가 부패했을 때 사회도 부패했었다. 교회가 건강할 때 사회도 건강했다.
본지는 이처럼 중요한 기능을 감당하고 있는 뉴욕·뉴저지 지역 40개 교회의 담임 목회자를 만나, 북한 선교·비인가 신학교 문제·청소년 사역·교회의 사회적 책임·뉴욕교계의 부흥 등 다양한 이슈들에 대한 목회자들의 의견을 들었다.
40개 교회는 각 교단별로 분배했다. -편집자주-
뉴욕시 스태튼 아일랜드에 위치한 뉴욕 성결교회는 1976년 부활주일을 맞아 장석진 목사가 장년 19명과 함께 야외예배를 드림으로써 시작됐다. 같은 해 5월 교회 명칭을 동부 한인교회라 명명하고 교회 설립예배를 김정권 집사 가정에서 드림으로써 가정교회 형태로 교회가 출발했다. 예배에 참석하는 숫자가 점점 많아지며 뉴저지 North Bergen에 있는 미국교회인 Woodcliff Community Reformed Church에서 예배를 드리게 됐으며, 6월 27일 창립기념예배를 드리게 된다. 이후 11월 28일 교통이 편리한 Jersey City로 교회를 이전하고, 12월 5일 교회 명칭을 뉴저지한인성결교회로 변경한다.
뉴욕성결교회는 하나님이 허락한 교회의 비전을 이루기 위해 초창기부터 교육과 선교에 힘을 기울였다. 교육의 일환으로 신도들이 교회 안에서만 친교하고 교육받는 신앙인으로서가 아니라 교회 밖의 사회 속에서 신앙인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교육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특별히 이민사회의 특성을 고려해 사회특강을 계획해 실시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성도들의 신앙성숙을 위해 성경읽기를 권장하고 다독하는 자에게 격려하는 시상을 했다.
뉴욕성결교회는 1970년대에 들어 한국인의 미국 정식 이민이 시작되며 증가하는 한인들을 대상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공동체로서 시작되었고, 전인적 신앙으로 이들을 양육함으로써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고자 했다.
현재의 교회 명칭인 뉴욕성결교회를 사용한 것은 1978년 7월 16일 스태튼 아일랜드에 위치한 미국 모라비안 교회 건물로 교회를 이전하면서부터다. 뉴욕성결교회는 교회를 이전한 후 웨슬리안 복음주의와 성결교회의 전도표제인 사중복음을 교회의 방향과 지표로 삼고 열심히 성결의 빛을 비추기 위한 사역을 계속했다.
지금 뉴욕성결교회가 자리 잡고 있는 새성전은 1991년 완공됐으며,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성막의 건축양식에 따라 위치를 선정했다. 이 성전은 1995년 스태튼 아일랜드 지역 상공회의소에서 주최한 건축부문에서 Interior부와 Exterior 부문에서 최고의 설계상을 받았다.
장석진 목사가 교회를 개척하면서 늘 가지고 있던 비전은 세계선교에 힘쓰고자 함이었다. 마치 안디옥 교회가 이방선교의 모체가 되었던 것처럼 뉴욕성결교회는 해외 선교의 전초기지가 되기 위해 힘써 노력해왔다. 장석진 목사는 뉴욕으로 교회를 이전하며 더욱 해외선교의 비전을 이루기 위해 '선교하는 교회'로서의 사명을 성도들과 나누며 최선을 다해 나갔다.
그 첫 번째 일로 장석진 목사는 교회를 개척하자마자, 매년 한국 농어촌 교회를 선정해 선교 헌금을 작정하고 돕기로 하였다. 선교에 모범을 보이는 선구자적인 교회들이 했던 것처럼, 사역의 시작부터 선교에의 참여를 권장했다.
한편 뉴욕성결교회는 지난 6월 24일 창립 31년을 맞아 '2010 선교비전'을 선포했다.
선언문에는 2010년까지 50곳(현재 26곳) 이상의 선교지 지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교회는 이를 위해 교인들이 선교적인 삶으로 살아나가기로 다짐했다. 또한 교인들이 평생에 한 번은 단기선교와 선교비전 여행 등으로 선교현장을 체험토록 하는 실천 내용을 담았다.
1. 평양 대부흥 100주년을 맞아 회개와 부흥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지고 있습니다. 목사님이 생각하는 부흥이란?
1907년에 일어난 평양대부흥의 엄청난 파장이 한국 강산을 뒤덮었었는데, 그런 부흥의 역사가 다시 한 번 일어났으면 좋겠다. 평양대부흥운동의 특징을 보면 회개운동부터 시작됐다는 것이다. 철저한 회개가 시작하니 성도들이 은혜를 받고 전도하게 됐다. 또 새벽 예배가 시작돼 일 년에 2만3만 명 결신자가 일어나 이는 큰 부흥이 돼 한국 강산에 파급됐다.
세계성령운동에 대해 언급한 책이 있는데, 1902년 영국 웨일즈 운동과 인도 부흥에 이어 한국강산의 부흥운동을 3쪽을 할애해 크게 기록하고 있다. 한국이 그 당시는 세계적으로 알릴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는데, 이 부흥운동으로 말미암아 세계 부흥사에 기록이 된 만큼 큰 역할을 감당했다.
1907년에 일어났던 부흥운동의 여파로 세계 최대 단일교회인 순복음교회가 생겼으며, 제일 큰 장로교·감리교·성결교도 한국에 있을 정도다. 세계적인 교회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평양대부흥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2.자꾸만 제기되는 불법 신학교의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교단에서 하는 신학교는 있어야 한다. 우리 교단 같은 경우 미국 교단과 연결이 안 되어 있어 신학교가 없기에 신학생이 공부하기 힘들다. 이에 LA에서 미주성결대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다른 이들에게 인정받던 안 받던 간에 자체 교단 수급을 위해서는 신학교가 필요한 것 같다. 그러나 교단을 떠나 신학교를 영리목적으로 하는 이들이 학위를 팔고 남발하는 모습은 지양해야 한다. 철저하게 지양해야 목회자들의 권위도 서게 된다. 평신도로 일하다가 갑자기 일 년 만에 목회자다, 박사라고 하면 목회자의 권위가 떨어진다. 불법 신학교에 대해 정리할 필요는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너무 교계를 드러내 선교적인 측면에서 신뢰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 같아 염려스럽다.
3. 청소년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는 무엇으로 보고 계십니까? 그 대응 방안은? 2세들에 대한 1세들의 역할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또한 세계 안에서 한인 디아스포라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는데, 그 안에서 2세들의 사명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1세들이 해야 할 사명은 모든 신앙적 기초를 다져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1세들은 2세들에게 보수신앙을 전달해줘야 한다. 우리 세대가 가도 2세들이 계속 신앙을 유지할 수 있도록 기틀을 마련해줘야 한다. 2세들이 교회에서 더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청소년센터를 건축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세계 안에서 한인 디아스포라들 즉 2세들의 사명은 정말 중요하다. 감사한 것은 신학을 많이 공부한 젊은 세대들이, 사명자들이 많이 생긴다는 것이다. 현재 EM 사역자들을 구하는 게 힘들지만, 신학생들이 한 2천여 명이 되니 5년 안에는 밸런스가 맞지 않을까 싶다.
또 여름 방학 때 보며 공항마다 줄을 서서 이민 가방에 한아름 가지고 어딘 가를 가는 이들을 보면 대부분 단기선교팀들이다. 젊은 2세들이 단기선교를 나가는 것은 정말 아름다운 모습이다. 그런 단기선교가 많이 일어나야 한다.
청소년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는 처음부터 영어로만 의사소통을 하게 내버려뒀기 때문이다. 영어만 하는 교회를 보면, 이 아이들이 영어만 하다가 대학가서 자기의 정체성을 찾고 방황하는 것을 보게 된다. 고등학생까지는 미국인들과 같이 교류하며 친하게 지내는데 대학생이 되면 미국인들과 교제가 잘 안 된다. 영어만 하는 애들은 방학이 되도 교회를 잘 찾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처음부터 한국말을 교육시켰다. 성경공부는 영어로 하더라도, 한국말을 하라고 했다. 이에 아이들이 설교를 못 알아듣는다고 야단들이어서 이중 언어로 하라고 했다. 아이들이 집에서 한국어로 대화를 하니까 어려운 말을 제외하고는 다 알아듣는다. 또 방학이 되면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교회에 나오고, 졸업해도 교회에 나와 부모들과 같이 교회에서 봉사도 한다. 이런 것을 볼 때 교회 교육은 한국말로 해야 한다는 것이 내 주장이다.
또 영어만 하는 애들에게 봉사는 잘 안 시켜 그들이 예배 때만 왔다 갔다 하니 애들이 교회에 대한 관념 없이 떠돌아다니는 것이다. 우리교회에서는 영어권 애들에게 주일 학교에서 교사로 가르칠 수 있도록 잡아 주니까 애들이 교회에 붙어있더라. 교회서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는 아이들은 커서 결혼하면 교회를 안 나가는 거야. 정체성을 찾아주고 자꾸 1세와 2세가 만나도록 해야 한다. 2세들은 연봉이 더 많아도 헌금을 잘 안 하고, 십일조 생활도 잘 안한다. 십일조만 해도 교회 운영에 문제가 없는데 애들이 그것을 못하니, 어떻게 신앙적 훈련들을 잘 연결시키는가가 1세들의 사명이다. 이런 면에서도 1세들이 신앙적 틀을 닦아줘야 한다.
4. 교회가 지역사회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교회는 적극적으로 사회를 이끌어가야 한다. 우리 교회에서는 한국과 베트남 참전용사가 한 달에 한 번씩 모이고 있다. 예전에 모임을 했던 곳을 사용할 수 없어 우리교회에서 모임을 진행하라고 했다. 그들은 매 달 한 번씩 친교하는데, 보통 100명씩 와서 식사도 하고 댄스도 한다. 우리가 무료로 친교실을 개방해주고 있는데, 마음대로 쓰라고 했더니, 그들이 얼마나 감사해 하는지 모른다. 그들이 현재 75세인데, 20살에 한국전에 나갔던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로 말미암아 미국 사회와 유대가 잘 된다. 그 사람들이 가서 우리교회 소개해주기 때문이다.
교회 근처에 정신적으로 약한 이들을 위한 너싱홈이 있다. 한국분이 2-30여명 있는 곳인데 중국 너싱홈으로 바꿔서 중국 음식과 미국 음식만 먹으니 한국 음식을 너무 먹고 싶어 한다. 우리가 5년째 봉사하고 있다. 매주 너싱홈을 찾아가 음식도 주고 예배도 드리는 등 봉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들 노인들이 너무너무 좋아하더라. 지금은 2주에 한 번씩 찾아가고 있다.
또한 경찰서에서 매달 한 번씩 우리교회서 미팅을 가진다. 우리 교회를 항상 오픈해 놓기에 이 지역에 있는 주민들과 경찰들이 함께 미팅을 진행한다. 이런 커뮤니티 서비스 필요한 것 같다. 가끔 지역사회에서 바다로 인해 수재가 발생해 많은 구제비를 전달하기도 한다.
5. 한국교회가 다양한 대북 선교 활동을 펼치고 있는데 뉴욕성결교회는 어떤 사역들을 진행 중인지?
북한선교의 일환으로 지난 1972년에 모스크바 할렐루야 교회를 세워 태권도 선교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중국 연변 탈북자들을 위해 용정에 선교센터를 지어 탈북자들을 돌보고 있다. 우리교회서 파송한 용정잘살기운동본부 위원장 박준성 선교사를 통해 용정지역에서 가장 큰 '사랑의 소' 목장 설립을 진행 중이다. 목장은 용정시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동네에 위치하고 있으며, 40만평 규모로 축사와 선교센터가 들어선다. 그곳에서 400마리의 소를 키울 예정이며, 이들 소가 낳는 수백 마리 새끼를 조선족 주민들에게 나눠주고 일부는 목장 운영비로 사용하려고 한다. 그외 지붕개량사업도 했다. 한족은 기와집인데, 조선족은 돈이 없어서 초가집으로 하니 마음이 아파 100여 채를 기와로 바꿨다.
교회는 이민사회서 가장 중요한 한인커뮤니티다. 한국에서 하와이 이민을 처음 모집할 때 인천에 있는 교회가 중심이 되었으며, 1965년 이후 새로운 이민법에 따라 미국으로 이주한 이들도 교회를 중요한 사회활동 공간으로 생각했다.
교회를 통해 고국의 소식을 듣고, 교회에서 교제하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공항에 내린 첫 순간부터 교회의 안내를 받아 집을 구하고, 직장을 구하고, 자동차를 등록하고, 자녀들을 취학 시키는 등 생활 전반적인 것까지 친형제보다 더 친절히 교회는 도움을 줬다.
교회와 사회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존재다. 교회의 사회정치 참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던 부정적으로 바라보던 지금까지 교회가 부패했을 때 사회도 부패했었다. 교회가 건강할 때 사회도 건강했다.
본지는 이처럼 중요한 기능을 감당하고 있는 뉴욕·뉴저지 지역 40개 교회의 담임 목회자를 만나, 북한 선교·비인가 신학교 문제·청소년 사역·교회의 사회적 책임·뉴욕교계의 부흥 등 다양한 이슈들에 대한 목회자들의 의견을 들었다.
40개 교회는 각 교단별로 분배했다. -편집자주-
뉴욕시 스태튼 아일랜드에 위치한 뉴욕 성결교회는 1976년 부활주일을 맞아 장석진 목사가 장년 19명과 함께 야외예배를 드림으로써 시작됐다. 같은 해 5월 교회 명칭을 동부 한인교회라 명명하고 교회 설립예배를 김정권 집사 가정에서 드림으로써 가정교회 형태로 교회가 출발했다. 예배에 참석하는 숫자가 점점 많아지며 뉴저지 North Bergen에 있는 미국교회인 Woodcliff Community Reformed Church에서 예배를 드리게 됐으며, 6월 27일 창립기념예배를 드리게 된다. 이후 11월 28일 교통이 편리한 Jersey City로 교회를 이전하고, 12월 5일 교회 명칭을 뉴저지한인성결교회로 변경한다.
뉴욕성결교회는 하나님이 허락한 교회의 비전을 이루기 위해 초창기부터 교육과 선교에 힘을 기울였다. 교육의 일환으로 신도들이 교회 안에서만 친교하고 교육받는 신앙인으로서가 아니라 교회 밖의 사회 속에서 신앙인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교육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특별히 이민사회의 특성을 고려해 사회특강을 계획해 실시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성도들의 신앙성숙을 위해 성경읽기를 권장하고 다독하는 자에게 격려하는 시상을 했다.
뉴욕성결교회는 1970년대에 들어 한국인의 미국 정식 이민이 시작되며 증가하는 한인들을 대상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공동체로서 시작되었고, 전인적 신앙으로 이들을 양육함으로써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고자 했다.
현재의 교회 명칭인 뉴욕성결교회를 사용한 것은 1978년 7월 16일 스태튼 아일랜드에 위치한 미국 모라비안 교회 건물로 교회를 이전하면서부터다. 뉴욕성결교회는 교회를 이전한 후 웨슬리안 복음주의와 성결교회의 전도표제인 사중복음을 교회의 방향과 지표로 삼고 열심히 성결의 빛을 비추기 위한 사역을 계속했다.
지금 뉴욕성결교회가 자리 잡고 있는 새성전은 1991년 완공됐으며,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성막의 건축양식에 따라 위치를 선정했다. 이 성전은 1995년 스태튼 아일랜드 지역 상공회의소에서 주최한 건축부문에서 Interior부와 Exterior 부문에서 최고의 설계상을 받았다.
장석진 목사가 교회를 개척하면서 늘 가지고 있던 비전은 세계선교에 힘쓰고자 함이었다. 마치 안디옥 교회가 이방선교의 모체가 되었던 것처럼 뉴욕성결교회는 해외 선교의 전초기지가 되기 위해 힘써 노력해왔다. 장석진 목사는 뉴욕으로 교회를 이전하며 더욱 해외선교의 비전을 이루기 위해 '선교하는 교회'로서의 사명을 성도들과 나누며 최선을 다해 나갔다.
그 첫 번째 일로 장석진 목사는 교회를 개척하자마자, 매년 한국 농어촌 교회를 선정해 선교 헌금을 작정하고 돕기로 하였다. 선교에 모범을 보이는 선구자적인 교회들이 했던 것처럼, 사역의 시작부터 선교에의 참여를 권장했다.
한편 뉴욕성결교회는 지난 6월 24일 창립 31년을 맞아 '2010 선교비전'을 선포했다.
선언문에는 2010년까지 50곳(현재 26곳) 이상의 선교지 지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교회는 이를 위해 교인들이 선교적인 삶으로 살아나가기로 다짐했다. 또한 교인들이 평생에 한 번은 단기선교와 선교비전 여행 등으로 선교현장을 체험토록 하는 실천 내용을 담았다.
1. 평양 대부흥 100주년을 맞아 회개와 부흥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지고 있습니다. 목사님이 생각하는 부흥이란?
1907년에 일어난 평양대부흥의 엄청난 파장이 한국 강산을 뒤덮었었는데, 그런 부흥의 역사가 다시 한 번 일어났으면 좋겠다. 평양대부흥운동의 특징을 보면 회개운동부터 시작됐다는 것이다. 철저한 회개가 시작하니 성도들이 은혜를 받고 전도하게 됐다. 또 새벽 예배가 시작돼 일 년에 2만3만 명 결신자가 일어나 이는 큰 부흥이 돼 한국 강산에 파급됐다.
세계성령운동에 대해 언급한 책이 있는데, 1902년 영국 웨일즈 운동과 인도 부흥에 이어 한국강산의 부흥운동을 3쪽을 할애해 크게 기록하고 있다. 한국이 그 당시는 세계적으로 알릴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는데, 이 부흥운동으로 말미암아 세계 부흥사에 기록이 된 만큼 큰 역할을 감당했다.
1907년에 일어났던 부흥운동의 여파로 세계 최대 단일교회인 순복음교회가 생겼으며, 제일 큰 장로교·감리교·성결교도 한국에 있을 정도다. 세계적인 교회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평양대부흥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2.자꾸만 제기되는 불법 신학교의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교단에서 하는 신학교는 있어야 한다. 우리 교단 같은 경우 미국 교단과 연결이 안 되어 있어 신학교가 없기에 신학생이 공부하기 힘들다. 이에 LA에서 미주성결대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다른 이들에게 인정받던 안 받던 간에 자체 교단 수급을 위해서는 신학교가 필요한 것 같다. 그러나 교단을 떠나 신학교를 영리목적으로 하는 이들이 학위를 팔고 남발하는 모습은 지양해야 한다. 철저하게 지양해야 목회자들의 권위도 서게 된다. 평신도로 일하다가 갑자기 일 년 만에 목회자다, 박사라고 하면 목회자의 권위가 떨어진다. 불법 신학교에 대해 정리할 필요는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너무 교계를 드러내 선교적인 측면에서 신뢰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 같아 염려스럽다.
3. 청소년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는 무엇으로 보고 계십니까? 그 대응 방안은? 2세들에 대한 1세들의 역할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또한 세계 안에서 한인 디아스포라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는데, 그 안에서 2세들의 사명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1세들이 해야 할 사명은 모든 신앙적 기초를 다져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1세들은 2세들에게 보수신앙을 전달해줘야 한다. 우리 세대가 가도 2세들이 계속 신앙을 유지할 수 있도록 기틀을 마련해줘야 한다. 2세들이 교회에서 더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청소년센터를 건축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세계 안에서 한인 디아스포라들 즉 2세들의 사명은 정말 중요하다. 감사한 것은 신학을 많이 공부한 젊은 세대들이, 사명자들이 많이 생긴다는 것이다. 현재 EM 사역자들을 구하는 게 힘들지만, 신학생들이 한 2천여 명이 되니 5년 안에는 밸런스가 맞지 않을까 싶다.
또 여름 방학 때 보며 공항마다 줄을 서서 이민 가방에 한아름 가지고 어딘 가를 가는 이들을 보면 대부분 단기선교팀들이다. 젊은 2세들이 단기선교를 나가는 것은 정말 아름다운 모습이다. 그런 단기선교가 많이 일어나야 한다.
청소년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는 처음부터 영어로만 의사소통을 하게 내버려뒀기 때문이다. 영어만 하는 교회를 보면, 이 아이들이 영어만 하다가 대학가서 자기의 정체성을 찾고 방황하는 것을 보게 된다. 고등학생까지는 미국인들과 같이 교류하며 친하게 지내는데 대학생이 되면 미국인들과 교제가 잘 안 된다. 영어만 하는 애들은 방학이 되도 교회를 잘 찾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처음부터 한국말을 교육시켰다. 성경공부는 영어로 하더라도, 한국말을 하라고 했다. 이에 아이들이 설교를 못 알아듣는다고 야단들이어서 이중 언어로 하라고 했다. 아이들이 집에서 한국어로 대화를 하니까 어려운 말을 제외하고는 다 알아듣는다. 또 방학이 되면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교회에 나오고, 졸업해도 교회에 나와 부모들과 같이 교회에서 봉사도 한다. 이런 것을 볼 때 교회 교육은 한국말로 해야 한다는 것이 내 주장이다.
또 영어만 하는 애들에게 봉사는 잘 안 시켜 그들이 예배 때만 왔다 갔다 하니 애들이 교회에 대한 관념 없이 떠돌아다니는 것이다. 우리교회에서는 영어권 애들에게 주일 학교에서 교사로 가르칠 수 있도록 잡아 주니까 애들이 교회에 붙어있더라. 교회서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는 아이들은 커서 결혼하면 교회를 안 나가는 거야. 정체성을 찾아주고 자꾸 1세와 2세가 만나도록 해야 한다. 2세들은 연봉이 더 많아도 헌금을 잘 안 하고, 십일조 생활도 잘 안한다. 십일조만 해도 교회 운영에 문제가 없는데 애들이 그것을 못하니, 어떻게 신앙적 훈련들을 잘 연결시키는가가 1세들의 사명이다. 이런 면에서도 1세들이 신앙적 틀을 닦아줘야 한다.
4. 교회가 지역사회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교회는 적극적으로 사회를 이끌어가야 한다. 우리 교회에서는 한국과 베트남 참전용사가 한 달에 한 번씩 모이고 있다. 예전에 모임을 했던 곳을 사용할 수 없어 우리교회에서 모임을 진행하라고 했다. 그들은 매 달 한 번씩 친교하는데, 보통 100명씩 와서 식사도 하고 댄스도 한다. 우리가 무료로 친교실을 개방해주고 있는데, 마음대로 쓰라고 했더니, 그들이 얼마나 감사해 하는지 모른다. 그들이 현재 75세인데, 20살에 한국전에 나갔던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로 말미암아 미국 사회와 유대가 잘 된다. 그 사람들이 가서 우리교회 소개해주기 때문이다.
교회 근처에 정신적으로 약한 이들을 위한 너싱홈이 있다. 한국분이 2-30여명 있는 곳인데 중국 너싱홈으로 바꿔서 중국 음식과 미국 음식만 먹으니 한국 음식을 너무 먹고 싶어 한다. 우리가 5년째 봉사하고 있다. 매주 너싱홈을 찾아가 음식도 주고 예배도 드리는 등 봉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들 노인들이 너무너무 좋아하더라. 지금은 2주에 한 번씩 찾아가고 있다.
또한 경찰서에서 매달 한 번씩 우리교회서 미팅을 가진다. 우리 교회를 항상 오픈해 놓기에 이 지역에 있는 주민들과 경찰들이 함께 미팅을 진행한다. 이런 커뮤니티 서비스 필요한 것 같다. 가끔 지역사회에서 바다로 인해 수재가 발생해 많은 구제비를 전달하기도 한다.
5. 한국교회가 다양한 대북 선교 활동을 펼치고 있는데 뉴욕성결교회는 어떤 사역들을 진행 중인지?
북한선교의 일환으로 지난 1972년에 모스크바 할렐루야 교회를 세워 태권도 선교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중국 연변 탈북자들을 위해 용정에 선교센터를 지어 탈북자들을 돌보고 있다. 우리교회서 파송한 용정잘살기운동본부 위원장 박준성 선교사를 통해 용정지역에서 가장 큰 '사랑의 소' 목장 설립을 진행 중이다. 목장은 용정시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동네에 위치하고 있으며, 40만평 규모로 축사와 선교센터가 들어선다. 그곳에서 400마리의 소를 키울 예정이며, 이들 소가 낳는 수백 마리 새끼를 조선족 주민들에게 나눠주고 일부는 목장 운영비로 사용하려고 한다. 그외 지붕개량사업도 했다. 한족은 기와집인데, 조선족은 돈이 없어서 초가집으로 하니 마음이 아파 100여 채를 기와로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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