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승훈 목사
여승훈 목사

한국 사회에는 저녁이 되면 빨간 불빛의 불긋 불긋한 십자가가 수없이 보인다. 그 불긋 불긋한 십자가는 곧 교회가 있는 곳으로 인식된다. 그래서 저녁에 보이는 십자가의 숫자를 보면 그 지역에 교회가 대충 몇 개 정도 있는지를 가늠 한다고 한다.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십자가가 있는 건물을 말한다. 즉 십자가가 세워진 건물이 곧 교회로 인식되는 것이다.

이런 인식이 교회에 대한 불건전한 사고를 형성하는 것 같다. 십자가가 세워진 건물이 곧 교회라는 등식은 건물의 크기와 구조에 따라 A급 교회, B급 교회, C급 교회로 구분짓는 경향이 사람들 마음속에 본능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교회 건물만 그렇게 구분짓는 것이 아니라 교인들도 교회 건물에 따라 등급을 매기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매우 서글픈 현실이다.

그러면 여기서 교회에 대한 기본 원리를 생각해 보자. 무엇이 교회인가? 교회는 어떻게 세워진 것인가?

과거 박찬호 선수가 메이저 리그 선수로 뛸 때를 회상해 보자. 그는 종종 슬럼프를 겪을 때가 있었다. 그럴때마다 매스컴에서 문제로 지적하던 내용이 투구하는 기본 폼에 관한 것이었다. 기본 폼이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면 최고의 투구 내용이 나오지 않는다는 지적이었다.

그렇다. 교회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교회에 관한 이론들과 판단들이 얼마나 난무하고 있는가? 한인들이 밀집한 지역의 어느 한인 식당이라도 가보라. 여기 저기서 들려오는 이야기들의 주제 가운데 교회에 관한 내용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그 이야기들의 대부분이 교회들의 아픔에 관한 것이다. 식사를 하면서 옆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이런 저런 아픈 이야기를 들으면서 왜 그럴까? 무엇일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져 보게 된다.

대답은 교회를 이해하는 기본 원리가 허술하다는 것이었다. 교회의 기본 원리가 무엇인가? 어느날 예수님께서 빌립보 지방을 지나 가시다가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자신을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으셨다. 사람들이 세례 요한 혹은 엘리야 혹은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 하느냐?” 제자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베드로의 대답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고 말씀하셨다.

베드로의 원래 이름은 “시몬”이었으나 예수님께서 반석이라는 뜻의 게바라는 새 이름을 주셨다. 즉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신다는 것은 곧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우신다는 것인데, 그 베드로 위에 세운다는 말씀의 진의는 베드로라는 인물 위에 교회를 세우신다는 것이 아니라 베드로가 말한 예수님께 대한 신앙 고백 위에 세우시겠다는 것이다.

베드로의 신앙 고백을 자세히 살펴보라. 주는 그리스도시라는 것은 주는 구원자시라는 뜻이고 주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은 그분의 본성이 곧 하나님이시라는 뜻이다. 즉 구원자이시고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자신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말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교회를 가리켜서 “내 교회”라고 하신 것이다. 따라서 교회는 건물로 대체되는 것이 절대 아니다.

만약 건물을 교회로 인식 한다면 초라한 건물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 교회는 스스로 얼마나 초라하게 생각하겠는가? 반면에 화려한 건물에서 예배 드리는 교회는 얼마나 우쭐해 하며 웃지 못할 건물 엘리트 의식에 사로 잡히겠는가?

왜 주님의 교회가 그토록 영광스러운 것인지 아는가? 화려한 건물 때문인가? 그런 화려한 건물 속에서 드리는 예배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인가? 만약 조금이라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한시라도 빨리 허황된 깊은 잠에서 깨어나야 할 것이다.

주님의 교회가 진정으로 영광스럽게 여겨지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 고백으로 모인 무리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가슴에서 나오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 고백은 금으로도 대체할 수 없고 은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유일무이한 절대 가치를 가지는 것이다. 이런 신자들이 모인 교회가 정말로 A급 교회요 A급 신자들 아니겠는가? 혹 인간의 눈에는 초라하게 보일지 몰라도 하나님의 눈에는 참으로 보배롭게 보이지 않겠는가? 이제는 더 이상 건물 자랑으로 교회 신앙의 수준을 대변하려는 생각은 멈춰야 되지 않을까?

과거 90년대 초에 구 소련이 붕괴되면서 선교의 문이 열리기 시작할 때였다. 그 당시 한국 선교사들이 제법 많이 들어가 활동하였다. 그때 남겨진 일부 오점들 가운데 하나가 소련 사람들에 대한 마음으로의 존중없이 물량 공세로 외형적인 성과 위주의 선교 전략으로 인한 소련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입혔다는 것이다. 어느 선교사의 말에 의하면 그 당시 소련 사람들 대부분은 일시적인 경제적 어려움으로 도움을 받는 신세가 되었지만, 그러나 마음 속으로는 그들의 민족적 우수성에 대한 자존심을 더욱 다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화려한 건물에는 관심이 있는데 정작 예수님께 대한 참된 신앙 고백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면 이런 경우 “속 빈 강정”이라고 표현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속 빈 강정의 의미는 겉은 그럴듯하지만 속은 텅 비어 있다는 뜻이다. 우리 주님은 속 빈 강정 같은 교회가 아니라 속이 꽉 찬 강정같은 교회를 보기 원하신다. 만약 속 빈 강정같은 교회를 세운다면 마지막 하나님의 심판 때에는 그 흔적을 찾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다.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 앞에서 흔적이 뚜렷이 남게 될 교회, 그런 교회를 세워야 되지 않겠는가? 어떻게 그런 교회를 세울 수 있는가?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신 “내(예수님) 교회”를 세우면 된다. 예수님의 교회를 세우는 관건은 기초 원리인 예수님께 대한 신앙 고백 여부에 사활이 달려 있다. 만약 교회에 대한 자랑이 있다면 구원자시요 하나님이신 예수님께 대한 신앙고백으로 인한 자랑을 하라. 만약 예배에 대한 감격이 있다면 구원자시요 하나님이신 예수님께 대한 신앙고백으로 인한 감격이 되게 하라. 만약 부흥 성장하고 있다면 구원자시요 하나님이신 예수님께 대한 신앙 고백으로 인한 부흥 성장이 되게 하라. 가장 멋진 교회, 가장 품격 있는 교회, 최고 수준의 교회 그런 교회는 바로 예수님 자신의 교회를 세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