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교회학교 중등부 학생 때의 일이다.
그 시절에는 토요일에 예배를 드리고 나서
매번 2부 순서라는 것이 있었는데,
한 번은 성경을 토론하는 프로그램을 하게 되었다.

그것은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어이없게도
주제가 '사랑과 믿음 중에 어느 것이 더 귀한가?'였다.

사랑과 믿음 가운데 어느 것이 더 귀하다니?
그것은 애초에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릴 일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사랑편에 들면 사랑을 위해 싸우고,
믿음 쪽으로 편이 갈리면
믿음을 위해 핏대를 올릴 판이었다.

그때 나는 믿음 편의 용사였다.
성경 구절을 들먹이며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주장하다가
차차 열기를 더해가서는 마침내 사랑이 믿음을 트집잡고,
믿음은 사랑에 흠집을 내려고 시도하기에 이르렀다.
믿음 없이 사랑이 가능하겠냐는 식으로....

한참 논전이 치열할 때에 내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싸움을 마무리 지을 만한 질문 하나를 던져놓고
막 회심의 미소를 지을 참이었다.
"너는 성경을 믿느냐?"
믿음 없이는 성경이 아무것도 아니질 않겠는가.

그러자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적진에 있던 친구 녀석이 이렇게 대답하였다.
"나는 성경을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