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성 목사.
(Photo : ) 김지성 목사.

심리학에서 자주 쓰는 용어로 Emotional Contagion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한국말로 표현하자면 '정서적 전염'이라고 번역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감정이나 정서는 전염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심리적으로 불안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불안한 생각이 들게 되고, 밝고 긍정적인 사람의 옆에 있으면 덩달아 밝고 긍정적으로 변하게 됩니다. 분위기는 바로 '정서적 전염'으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언젠가 TV에서 '웃음 세미나'라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웃음을 잃어버린 시대가 안타까워, 웃음을 만드는 일에 뛰어들었다는 강사는 웃음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다 같이 함께 웃자고 역설했습니다. 그리고 청중들 가운데서 가장 웃고 싶지 않은 한 사람을 찾아서 그에게 환한 미소를 지어보도록 했습니다. 처음에는 쭈빗쭈빗 어색해 하던 그 사람은 강사의 강한 권유에 못이겨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그 모습이 재미있었던지 그 사람을 바라보던 청중들은 하나 둘씩 웃기 시작했고, 곧 이어서 그 웃음은 잠재울 수 없는 강한 폭소로 이어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정서적 전염'입니다.

특별히 교회는 '정서적 전염'이 강한 곳입니다. 긍정적인 말이든, 부정적인 말이든 교회 안에서 그 전염의 속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빠릅니다. 그래서 말 한 마디, 행동 하나하나를 심사숙고해야 하는 것입니다. 목회자인 저는 '정서적 전염'에 민감합니다. 교회의 최종 리더십에 속해 있는 이유로 저의 얼굴 표정, 언어, 행동은 교회 전체에 큰 영향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나도 모르게 만들어지는 힘든 표정을 애써 감추려고 노력했습니다.

때로는 한없이 소리치며 울고 싶어도 그 울음을 돌이켜 삼켜야만 했던 적도 참 많았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정서적 전염'의 단초를 제공하는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정서적 전염'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자칫하면 무거워질 수 있는 교회의 분위기를 긍정적 자세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전염'을 시키는 것은 교회를 위하여 유익한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몸을 구성하는 지체들입니다. 우리가 바로 교회의 몸을 구성하는 지체라는 말입니다. 웰빙을 추구하는 이 시대 사람들은 자신의 몸에 유익이 되는 것만을 고릅니다. 해가 되는 것은 가까이 하려 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교회의 지체인 우리 자신들이 교회를 위해서 좋은 것을 취해야 함은 당연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부정적 방향의 정서적 전염'을 걱정해야 하는 것이 어찌 저 한 사람만의 일이 되겠습니까? 바로 우리 모두의 일이 되어야 함이 마땅하지 않을까요? 비판을 삼가야 합니다. 말이 좋아 유익한 비판이지 그런 비판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랑하기에 한 마디 한다고 말하지 맙시다.

정말 교회를 사랑한다면 말없이 무릎꿇고 기도하는 것이 백 번 낫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비판을 할 줄 몰라 조용한 것이 아닙니다. '부정적 방향의 정서적 전염'을 우려하기에 그리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창조적이며 긍정적인 모습'들이 전염될 수 있길 소원합니다. 교회는 함께 책임지고, 세워가는 공동체입니다. 공동체란 권리와 책임을 공유하는 곳입니다. 우리 모두가 교회의 긍정적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최종의 책임자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