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성 목사.
(Photo : ) 김지성 목사.

어떤 표준을 채택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표준이 무엇이냐에 따라 모습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단위(표준)가 중요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백만'이라고 합시다. 여기에 원이라는 화폐 단위를 붙이느냐, 아니면 달러라는 화폐 단위를 붙이느냐에 따라 그 가치는 엄청나게 달라지는 것입니다.

성경은 모든 단위를 '믿음의 단위'로 설정해 놓았습니다. 사사기에 보면 이스라엘의 적인 미디안 군대의 숫자를 13만 5,000명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를 상대하기 위해 모인 이스라엘의 군대 숫자가 3만 2,000명. 산술적으로는 4배 이상의 차이가 나는 셈입니다. 도저히 불가능한 싸움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리더였던 기드온을 향해 하나님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명령을 내리십니다. 전투를 위해 그들 중 단 300명만을 선발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간단합니다. 하나님은 숫자에 연연해 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오로지 표준(단위)이었습니다.

이 하나님의 뜻을 겸허하게 받아들인 기드온은 '믿음'이라는 단위를 채택하였고, 그 기준에 따라 믿음의 용사 300명을 선발했습니다. 그러자 상상을 초월하는 결과가 만들어졌습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 격인 전투에서 완승을 거둡니다.여호수아의 지휘 아래 진행되었던 여리고성 공략 작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여리고성을 점령하기 위해 여호수아는 믿음의 단위를 채택했습니다. 믿음으로 매일 한 바퀴씩 견고한 여리고성을 돌았습니다. 그리고 7일째는 일곱 바퀴를 돌고 함성을 질렀습니다. 그러자 여리고성이 무너졌습니다.

이 대승에 심취한 여호수아는 여리고성에 비해서 그 규모가 훨씬 작았던 아이성에 대해서 군사의 단위를 채택했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군대는 여지없이 패하고 말았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마 21:21)." 예수님 말씀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큰 결실이나 상상을 초월하는 기적은 믿음의 단위(표준)가 채택될 때 가능함을 역설함이 아니겠습니까?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이 말씀은 고침을 바라는 두 시각 장애자에게 예수님이 물으시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때 두 시각 장애자는 "주여 믿나이다"라는 대답을 통해서 믿음의 단위를 선택했음을 직설적으로 표현했습니다. 그 말을 들으신 예수님은 "네 믿음대로 되리라"는 말씀을 통해서 믿음의 표준을 채택하는 것이 기적을 경험하는 통로가 됨을 확증하십니다. 그러자 두 시각 장애자의 눈은 곧 밝아졌습니다(마 9:29).

들판에서 5000명을 먹이라는 예수님의 말씀 앞에 제자들은 즉각 일반적 단위를 말했습니다. 적어도 200데나리온 어치의 떡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돈의 단위가 아닌 믿음의 단위를 채택하라는 개념에서 이 명령을 내리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친히 믿음의 단위를 채택하신 예수님은 무리들을 배불리 먹이시는 기적을 만드십니다.

이민자들이 빨리 정착하여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미국에서 통용되는 각종 표준(단위)인 달러, 마일, 갤런, 파운드, 스퀘어피트 등에 빨리 익숙해져야 합니다. 강국을 이루는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정한 강국을 이루는 삶이 되기 위해서는 세상에서 통용되는 표준(단위)에서 믿음의 단위로 빨리 전환되어야 합니다. 오로지 믿음의 단위를 채택한 자에게만 강국의 지위가 부여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만이 강국에 대한 꿈을 현실화 시키는 열쇠가 됨을 확신하십시오. 그리고 강국의 삶을 확보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