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네 힘을 입을지어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여 네 아름다운 옷을 입을지어다 이제부터 할례 받지 않은 자와 부정한 자가 다시는 네게로 들어옴이 없을 것임이니라 (사 52:1)"

Awake, awake, O Zion, clothe yourself with strength. Put on your garments of splendor, O Jerusalem, the holy city. The uncircumcised and defiled will not enter you again.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이 정성 다해서 통일 통일을 이루자
이 겨레 살리는 통일 이 나라 살리는 통일
통일이여 어서 오라 통일이여 오라!"

아마도 많은 분들이 이 통일노래를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노래의 가사는 우리에게 매우 친숙해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학창시절에 많이 부르던 통일노래로 떠올려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특히 70-8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세대에게 이 통일노래는 항상 마음을 울리는 감동일 것입니다. 당시 젊은 세대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소리 높여 불렀고, 분단된 민족의 아픔을 온 몸으로 느꼈고, 통일코리아(United Korea)에 대한 강한 열망을 노래했었습니다. 물론 당시에는 아직 남북관계가 심한 긴장상태였기에 통일을 노래하거나 이야기하는 것은 마치 먼 산을 보고 외치는 메이리 소리와도 같이 들렸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통일의 열망은 이제 실현되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통일코리아(United Korea)의 아침이 밝아 오고 있음을 여러 면에서 감지하고 있습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실제적으로 체험하고 있습니다. 또한 믿음의 눈으로 뿐만 아니라, 현실적인 실체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남북화해의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된 이후 현재까지 남한으로 이주한 북한 주민들이 2만5천명 이상 된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 분들이 통일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남쪽에서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바라며 기도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통해 이미 통일코리아가 희미한 모습으로나마 우리의 삶에 작은 본보기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추운 겨울에서 따스한 봄으로 계절이 바뀌고 있다고 해서 봄이 완전히 온 것은 아닙니다. 또한 그 변화과정에는 '꽃샘추위'도 있으리라는 것을 우리는 체험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마치 2000년 전에 예수님이 오심으로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했지만, 예수님의 재림까지 아직 하나님의 나라는 완성되지 않은 것과도 같습니다. 이를 신학자들의 말대로 '이미 그러나 아직(already not yet)'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는 이 땅에 이미 임한 하나님의 나라와 아직 완성되지 못한 하나님의 나라 사이에서, 예수님 재림의 소망(계 22:20)을 마음에 품고 고난을 받으며 긴장된 나그네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의 분단이 있기 전에 평양이 '동방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려졌던 것을 우리 성도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동방의 시온을 향해 오늘 주님께서 "깰지어다 깰지어다"라고 반복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남녘과 북녘, 이방 땅으로 흩어져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주님의 음성을 듣기를 원하십니다. 한 신학자는 이사야 선지자의 이 외침을 이렇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당시 마비되고 몽롱한 상태에 있는 것으로 보이던 교회를 향해 '깨어나라'는 당부를 하면서 힘을 되찾게 하고 용기를 회복시킨다. ... 이것은 마치 '전에는 네가 낙심하였고 부정과 불결 속에 빠져 있었으나 이제 주께서 너를 소생시킬 행복하고 번창한 날을 예비하라'는 말이나 다름없다(존 칼빈 주석/ 사 52:1)." 주님께서는 거룩한 성에 힘을 입히시고, 아름다운 옷을 입히시길 원하십니다. 이 말씀에 의지해서 우리는 고난 받고 있는 북녘 땅의 성도들이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할 날이 아주 가까이 와 있음을 믿습니다.

이제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통일코리아(United Korea)의 찬란한 여명의 아침을 바라보며, 고교시절에 배워 잘 알고 있는 시조 한편을 떠올려 봅니다. 이 시조를 지으신 남구만(南九萬, 1629년 ~ 1711년)은 조선의 문신이자 정치가였다고 합니다.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치는 아이는 상기 아니 일었느냐
재 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느니"

이 시조는 이렇게 해석해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동쪽 창문이 벌써 밝았느냐 종달새가 우지짖고 있다
소를 먹이는 아이는 아직도 일어나지 않았느냐
고개 너머에 있는 이랑이 긴 밭을 언제 갈려고 하느냐"

이 시조는 봄을 맞아 농촌의 생동하는 아름다운 풍경과 농사일을 재촉하는 권농의 뜻을 담고 있다고 감상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시조를 감상하며 통일코리아(United Korea)를 생각해 봅니다. 이 시조는 통일코리아의 새 아침이 밝아 오고 있는데도 아직 일어 나지 않고 있는 이들에게, '잠에서 일어나라(Wake up)'고 흔들어 깨우고 있다고 받아들여집니다. 그리고 먼저 잠에서 깨어난 성도는 아직도 잠자리에 누워있는 성도를 지금 흔들어 깨워 주어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