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적으로 이슬람은 전세계를 이슬람화하는 것을 꿈꾼다. 그래서 교육의 최고의 목표도 이슬람을 잘 아는 '좋은 무슬림'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자녀출산을 무슬림들이 많이 하는 것도 이슬람화를 위해 인구 증가를 원하기 때문이다. 자녀가 많으면 지하드에 나갈 사람이 늘어나는 것이다.

미국에서 오사마 빈 라덴의 조직이 테러를 한 후에 이웃 집 무슬림은 오사마 빈 라덴이 '가장 훌륭한 무슬림'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오사마 빈 라덴이 무슬림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하였다고 들었다. 더구나 한국에 사는 한국인 무슬림학자 중에는 이슬람이 일부일처제라고 우기는 일도 있었다고 들었다. 그러나 사실은 이와 다르다.

한국의 모 대학의 교수가 <이슬람>의 정의는 <평화>이므로 이슬람이 평화의 종교라고 하였다(아브라함의 종교-살림출판사 참조). 한국어로 번역된 꾸란에는 <성령>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현지 이슬람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자신들은 성령이 무언지 모르고 <알라>만이 안다고 하였다. 다시 말하면 한국어로 번역된 코란이 틀렸다. 중동의 이슬람학자들은 코란(꾸란)에 나오는 <루흐 알꾸두스>는 가브리엘 천사를 말한다고 하였다. 다시 말하면 한국의 이슬람학자들이 쓴 이슬람에 대한 책들이 오늘의 중동의 현장과 다르게 기록된 게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신학대학교와 교회는 이슬람에 대한 이해를 하고 있어야 한다. 적어도 이슬람학자들을 교회와 신학교에 초청하여 강의를 듣기(그분들의 강의 내용이 이슬람 현장과 다른 게 있으므로)보다는 기독교인 중에서 이슬람권 전문가를 길러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슬람의 교과서적인 내용과 오늘의 이슬람 세계의 현실을 비교 분석하여 보아야 한다. 그 이유는 둘 간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슬람 세계의 현실은 한국에서는 잘 모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 이유는 이슬람권 선교를 한국에서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여기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유명한 선교단체에서는 이라크를 위한 단기 팀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들린다.

이슬람권 선교는 일회성 전도뿐만이 아니라 무슬림들이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오랜 시간 예수님의 제자로 살도록 멘토해 주어야하며,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영적으로 성장하여야 다른 무슬림들에게 영향을 끼치면서 살게 된다. 이렇게 전도와 제자훈련이 겸해져야 하니 지혜가 필요하다. 일회성 노방전도가 이슬람권 선교에서 큰 열매를 못 얻는 것은 무슬림들에게 복음을 제시하고 나서 무슬림들이 다시 이슬람으로 돌아가 버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언가 이슬람권 전도 방법에는 다른 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복음을 중동의 상황에서 본래 성경이 기록될 당시의 중동 상황(물론 대부분 이스라엘- 이집트- 이라크-요르단 등 중동 땅에서 이뤄지는 내용이 성경에 들어 있으므로)과 견주며 해석하여 주는 것이다. 가령 눅 15장의 탕자의 이야기는 중동 무슬림들에게 아주 적합한 본문이다. 이 본문을 가지고 케네스 베일리는 귀한 책을 썼다. 우정을 다 쌓은 후에 복음을 제시하기는 어려울 때가 있다. 마침 복음을 전하려고 1년, 2년 우정을 쌓았는데 갑자기 헤어지게 되는 예도 있다. 그러므로 선교사는 복음을 아랍어로 이야기체화하여 어느 때든지 자연스럽게 복음을 제시하며 대화할 준비를 갖추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이슬람권 현장이 늘 살해와 폭력이 있어왔으므로 어느 때든지 이슬람권 선교에 대한 열정과 훈련은 사그라져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도 기도하는 일을 쉬지 말아야 한다. 이슬람권에서의 첫 번째 선교 전략은 기도이다. 새벽기도이다. 우리의 기도가 필요하다.

세 번째는 이슬람권 선교에서의 <시기와 상황>을 잘 읽어내야 한다. 선교는 복음이 현지 아랍인들에게 전달되어지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그 복음이 다양하게 전해진다. 무조건 말로만 전하는 것도 있지만 문서로, 안방의 텔레비젼으로, 전도지로, 설교로, 그리고 노방 전도로 다양한 채널이 있다. 한가지 방법이 아니다. 그래서 현지 이슬람 학자들마저도 '이라크는 지금 들어갈 때가 아니다'고 하였다. 지금이 아니라는 것이지 이라크 선교를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차례 지금이 이라크 선교가 낙관적이지만은 않다고 강조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네 번째, '만일 이라크에 가더라도 선교사의 신분을 언론에 노출시키지 마라 고 한다. 물론 우리가 이슬람권 선교에서 복음을 <조용히 그리고 지혜롭게> 전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중동의 기독교와 이슬람-예영 출판 참조). 우리가 한 생명을 얻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지만 그 일로 들떠있어서는 안 된다. 무슬림들이 선교사들의 활동을 잘 알고 있다. 숨기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조용히 전도하는 것이다.

다섯 번째는 이슬람권 선교는 구제와 더불어 복음이 들어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구제는 있고 복음이 없는 구제는 다시 고려해 보아야 한다. 그 구제 활동도 오랜 시간 지혜를 모아야 한다. 그러나 구제하는 단체들은 소속 단체에 관련된 분만이 알기 때문에 그리고 다른 사역자들과 정보 교류를 원활하게 하지 않으면 효율적인 구제활동이 이뤄지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슬람권 선교는 기도와 찬양이다. 선교지에서의 선교사간의 하나됨과 교류가 이슬람권 선교 전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