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종종 하나님의 주요 경쟁 상대가 되는 것은, 대부분 우리가 돈이 신적 속성을 가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해주시기를 바라는 바로 그 일들을, 돈이 우리를 위해 해주기를 기대한다. 아니 돈이 하나님에 버금가는 위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다. 예수님의 비유에 나온 부자가 그랬다. 그는 돈을 '안도감의 원천'으로 삼고 의지한다. 그는 오랫동안 좋은 것들을 많이 축적해 놓았다고 자신에게 말한다. 우리는 충분한 돈을 저축해두면 더 이상 걱정할 일이 없을 거라고 믿는다. 사람들은 경제가 갑자기 붕괴되지나 않을까? 건강이 나빠지지 않을까? 일자리를 잃지 않을까? 뜻밖의 재난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한다. 그러나 충분한 돈을 저축해둔다면 그 모든 걱정이 사라질 것이라고 믿는다. 이처럼 우리가 돈을 '안도감의 원천'으로 삼고 의지할 때 돈은 우리의 신이 된다. 왜냐하면 우리가 돈에 소망을 두고 의지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 우리는 '기도'하지 않게 된다. 왜냐하면 모든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충분한 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성공과 돈이 신격화 되는 것은 한 가지 공통된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 전제란 우리가 우리 자신을 돌볼 수 있다는 것이다.
돈의 신은 우리가 우리의 모든 필요를 처리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좋은 분이지만 꼭 필요한 분은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가 양식이 꽉 찬 식품저장고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일용할 양식을 위해 기도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성공의 신은 우리의 자급자족과 독립 가능성에 확신을 갖게 한다. 어느 신혼 부부의 이야기다. 안타깝게도 신혼의 행복이 길지 않았다. 이유는 생계를 주로 아내가 꾸려가고 있었고 그로인해 아내는 자신이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는 사실로 남편을 압박했기 때문이다. 결국에는 이혼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집을 잡히고 18만불을 대출 받아 주식을 샀다. 투자가 성공인지 실패인지 확인 하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날 저녁 주식시장의 거래가 마감될 무렵, 샀던 주식이 휴지조각이 된 사실을 알게 됐고 부부는 순식간에 빚더미에 올라 앉고 말았다. 망연자실한 아내를 남편이 위로했다. "우리는 돈을 잃었을 뿐이야. 괜찮아. 우리에게는 여전히 서로가 있잖아!"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정말 중요한 것을 가르치기 시작하신 것이다. 필요의 공급자가 하나님이 아닌 자신으로 알고 있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단 하루에 18만불을 날린 그날이 그녀의 인생에서 최고의 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만일 당신이 지금 돈과 성공의 신을 섬기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축복하시어 그 모든 것들을 당신에게서 빼앗아 가시기를 바란다. 그래서 당신이 돈과 성공의 신 앞에 무릎 꿇고 예배하다가 진짜를 놓쳤다는 것만 깨닫게 되는 불상사를 당하기 전에 조금이라도 빨리 진짜를 붙잡게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예수님의 비유에 나오는 부자는 돈을 '만족감의 원천'으로 삼고 의지했다. 부자는 혼자 중얼 거린다. '조금만 더 모으면 편하게 살 수 있을 거야. 먹고 마시고 즐길 수 있을 거야!" 그 부자는 풍성한 소출을 거두기 전에도 부자였다. 그러나 항상 좀 더 가지면 만족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경제 수준과 행복 수준이 같지 않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국가별 행복지수 조사 결과도 마찬가지다. 소득 수준이 높은 선진국이 아닌 빈곤한 후진국 가운데 행복지수 1위 국가가 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지금까지 많은 심리학자들이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연구했다. 그들은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는 것, 오히려 돈이 인간을 불행하게 만든다는 것을 발견했다.
일리노이스 대학의 에드 디너 교수는 "물질주의는 행복에 유해하다!"라고 말한다. 그는 행복을 얻기 위해 돈을 축적하거나 쓰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오히려 인생의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 결과를 얻었다. 미시건 대학의 크리스토퍼 피터슨 교수는 행복과 가장 밀접하게 관련된 인간의 성품이 '용서'라고 말한다. 사람은 돈이나 재물에 대해 만족할 줄 모르는 욕구를 갖고 있다. 욕구를 채워주면 그 욕구가 자연스레 사라질 거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결과는 반대다. 욕구는 채울수록 더 채워달라고 보챈다. 갈수록 욕구가 더 강렬해진다. 사람들은 이 함정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또 한가지 함정은 우리가 자신의 가치를 자신이 버는 돈으로 결정된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돈이 많으면 자신의 가치가 올라가고 적으면 내려 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의 참된 가치성과 정체성은 돈에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물질적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그 가치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물질 이하로 전락한 우리의 가치를 본래의 가치로 되돌려 놓는 것이다.
돈의 신을 섬기는 동안은 우리의 가치가 십자가가 아닌 돈으로 결정된다. 당신은 무엇을 근거로 자신의 가치를 평가하는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인가, 아니면 당신이 축적한 돈인가? 어리석은 부자에게 "하나님이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고 하셨다. 하나님이 당신을 위해서 해주시기를 바라고 있는 것들을, 돈의 신이 당신을 위해 해주기를 기대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미국 지폐에는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In God We Trust)라는 표어가 새겨져 있다. 오늘날 미국 사회의 수많은 사람들이 돈을 신으로 믿고 의지한다는 사실을 고려해볼때, 달러 지폐에 새겨진 그 표어 뒤에 물음표를 붙이는 것이 순리일 것 같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가? (In God We Trust?)" 우리가 돈을 어떻게 다루고 있느냐 하는 것이 그 질문에 답하는 한가지 방법이 될 것이다. 예수님은 그것을 "네 보물이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6:21)라는 말씀으로 표현하셨다. 우리가 돈을 우리 삶의 어떤 자리에 놓았느냐 하는 것이, 우리가 무엇을 믿고 의지하느냐 하는 것을 밝혀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