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미시민자유연맹(ACLU)의 압력을 이기지 못한 LA 카운티 슈퍼바이저위원회는 지난 50여년간 사용해 왔던 문장 속 십자가의 이미지를 빼고 대신 캘리포니아 초기 역사를 상징하는 스페인풍 미션(성당을 중심으로 한 생활공동체)이나 인디언의 얼굴을 그려넣기로 결정했다.

그동안 미 시민자유연맹은 지자체 문장에 특정 종교를 상징하는 십자가가 들어있는 것은 미 헌법의 정교분리 원칙을 위반하는 것이라며 계속해서 디자인 교체를 요구해 왔으나 당국은 "캘리포니아의 역사적 배경에 무지한 상식 밖의 요구로, 서식 변경시에는 그에 따른 경제적 손실도 크다"며 완강하게 거부해 오다 결국 백기를 들고 만 것이다.

이미 1990년대 뉴 멕시코주의 버나릴로 카운티, 일리노이주 롤링 메모우스, 자이언에서 같은 사례로 십자가가 제거됐고, 최근에는 캘리포니아주 레드렌즈가 ACLU의 거센 항의에 굴복해 시 로고에서 십자가를 빼기로 합의한 바 있다. 따라서 이번 LA 카운티의 최종 결정은 지자체의 문장내 십자가 제거 바람을 미국 내 다른 주로 확산시킬 가능성이 크다.

이같이 미국의 공적 상징 중에서 기독교적 상징을 제거하고자 하는 움직임은 다른 쪽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미국의 '충성맹세'에서 '하나님 아래'라는 구절을 제거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그것이다. 이 충성맹세에 대한 논란은 마이클 뉴다우라는 무신론자에 의해 처음 제기되었는데, 그는 당시 자신의 8살난 딸이 학교에서 '하나님 아래'라는 구절이 담긴 충성맹세를 하는 것은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 카운티 학교 당국을 상대로 위헌소송을 냈다.

비록, 지난 14일 미 대법원은 별거한 부인과 양육권 소송을 벌이고 있는 뉴다우씨가 딸을 대변할 법적 권한이 없다는 이유로 소송을 기각시키긴 했지만, 논란의 여지는 아직도 남아 다른 사람이 같은 사안으로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왜 '정교분리'를 외쳤던가를 생각해보자. 먼저는 개인의 종교 자유를 보장하기 위함이요, 둘째는 종교를 보다 손쉬운 통치 수단으로 사용하고자 하는 일체의 시도를 금지하기 위함이다. 종교의 이름앞에서는 어떠한 이성의 힘도 무력해지며, '비합리'가 너무나 완벽하게 '합리화'된다.

그런데, LA 카운티의 문장 속 십자가가 개인의 종교 자유를 침해한다거나 지배의 야욕을 드러내고 있는가? '충성맹세'의 "하나님 아래서"란 단어가 그러한가?

예수가 달려죽은 십자가는 기독교의 자기낮춤, 자기 비하의 상징이며, 죽음까지 불사한 사랑의 가장 큰 표현이다. 때문에 기독교에서는 십자가를 바라보며 겸손해지고 십자가를 생각하며 남을 용서한다. 이같은 기독교 정신이 잘못된 것이고,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는 것이라면 모르되, 사회에 유익한 상징이라면 세속 국가가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가 없다. 세속 국가의 목표가 모든 종교적 상징을 철저하게 없애버리고자 하는 무신론적인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만일 그런 것이라면, LA 카운티 문장속에 등장하는 '포모나' 여신에 대해서는 왜 제동을 걸지 않는 것인가.

왜 기독교 상징만 사용하냐고 볼멘 소리를 하는 타종교인들이 있을 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은 미국의 역사가 기독교에서 시작했기 때문이요, 만일 그들 종교의 상징 중에 미국의 정신에 부합하고 모든 이가 따를 만한 정신이 표현된 상징이 있다면 그 역시 사용하지 못할 것이 없을 것이다.

'하나님 아래서'란 구절 역시 그러하다. 이 충성맹세의 촛점은 기독교의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고자 함이 아니고 미국민으로써의 정체성을 보다 견고히 하고자 함이다. 그 가운데 각각 개성이 다른 50개의 주가 절대 나뉘어지지 않고 끝까지 하나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종교적 언어를 사용해 표현한 것이다. 종교성을 배제한 '합리'의 언어만으로는 '절대성'을 표현하기에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같이 현상만을 보지 않고 현상 너머 그 현상의 존재이유와 의미를 헤아릴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이 있다면, LA 카운티 문장 속 십자가와 '하나님 아래서'란 단어가 걸림이 될 이유가 없다.

종교는 믿지 않을 권리도 있지만, 믿을 권리도 있다. 그리고, 종교자유의 보장은 사회 윤리에 반하지 않는 한 자유로운 종교표현의 자유까지 보장해주는 것이 되어야 한다. 사회에서 '성스러움'이 제거하려는 시도, 이것만큼 그 사회의 건강을 헤치는 어리석은 시도가 있을까. 크리스천들은 이 어리석은 세속국가를 위해 기도해야 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