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인권
(Photo : 기독일보) 안인권 목사.

이른바 선진국의 그리스도인들은 "인간은 모두 평등하게 지음받았다"는 개념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미국 독립선언서에 등장하는 이 구절은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았으며 저마다 고유한 가치를 지닌다는 성경의 가르침에 기반을 둔 것이다. 훌륭한 사상이다. 그러나 어쩌다 보니 이 인간 평등이 기묘하게도 사상 평등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모든 인간이 동등한 가치를 가지는 것처럼 모든 사상 역시 동일한 가치를 갖는다는 식이다. 그것을 신앙에 적용하면 세상에는 서로 다른 신앙관을 가진 다양한 인간이 존재하므로 각자가 가지고 있는 믿음은 인정해 주어야 한다는 뜻이 된다. 이런 사고방식대로라면, 신앙은 구원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가 된다. 그러므로 누군가의 믿음은 진리고 다른 이의 신앙은 거짓이라는 주장이야말로 용서받지 못할 죄가 된다. 따라서 각자가 믿고 싶은 것을 조용히 믿으면서 다른 이의 신앙은 건드리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현대 기독교 신앙이 이런 사조에 물들어 있다. 이것은 크게 두가지 형태로 나타나는데 먼저는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는 고백하는 이들 가운데 만연하다. 그들은 신앙이 그저 기호나 선택의 문제이며 결국 모든 종교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보편론적인 사고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 꼭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나님을 알고 하늘나라에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굳이 누군가를 붙잡고 기독교 진리를 받아들이라고 요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의 형태는 지성적으로는 보편주의를 배격하지만 실제로는 그런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서 나타난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하면서도 주변에 있는 이들이 예수님을 만나든 말든 상관없다는 듯 홀로 자신의 신앙을 지켜 갈 뿐이다. 허다한 그리스도인들이 지성적으로나 실질적으로나 이런 보편주의적인 경향을 보인다. 이제 마음을 열고 말씀을 읽으면서 하나님 말씀이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말하는지 살펴봐야 한다.

먼저 우리는 무엇이 위기인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세계 인구 가운데 45억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더더욱 심각한 것은 이들 가운데 10억은 아예 복음을 들어 본 적조차 없다는 것이다. 이들이 죽게 되면 그 다음에는 어떤 일이 생기게 될까? 이것이야말로 오늘날 그리스도를 좇는 이들이 답해야 할 가장 시급한 질문이라고 확신한다. 만약 신앙이 선호의 문제라면, 그리고 만약 자신이 나고 자란 곳의 신앙으로도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면 우리가 굳이 그들에게 갈 필요가 없다. 하지만 그리스도가 유일한 진리라면, 그래서 그들이 하늘나라에 가지 못한다면 우리는 한시바삐 복음을 들고 그들에게 달려가야 한다. 예수님의 존재조차 모른 채 지옥을 향해 가고 있는 상황이라면 현대 문화의 성공 신화에 사로잡혀 낭비할 시간이 없다. 바울은 로마인들에게 쓴 편지에서 하나님의 계시의 선재성을 말하면서 이미 모든 인생은 하나님을 알고 있다고 전제한다.(롬1:18-21)

지구상에 존재하는, 역사상 존재했던 모든 인간들은 예외없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었다. 그러나 모두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지는 않는다. 동시에 모든 인간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거부했다.(롬1:21) 인간은 자자손손 이어지는 죄의 본성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그분의 영광에 저항하게 되었다.(롬1:21-25) 이것은 복음의 기본적인 진리에 해당하지만 예수님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는 이들에게 일어나는 일을 이야기할 때 간과되기 쉬운 내용이기도하다. 인간이 죄에 물들어 있는 까닭에 정신의 왜곡과 마음을 병들게 하는 우상숭배를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특정한 부족이나 문화를 공격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인간 전체를 향한 지적이다. 인간은 너나 할 것 없이 우상숭배자들이다. 선진국에 있든 후진국에 있든 모두가 우상숭배자들인 이유는 하나님을 거부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진리가 있다. 인간은 누구나 죄인이라는 사실이다.

이방인은 물론 유대인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다. 로마서 3장에서 인간의 죄악에 대한 결론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3:10-12)이다. 재판은 끝났다. 이것이 인간에 대한 최종 판결문이다. 신앙, 문화, 인종적인 배경과 상관없이 인류 전체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으로 판명났다.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을 하나님 앞에서 유죄로 드러내는"(롬3:19) 최종 선고다.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을 인식한다. 하지만 그 하나님을 거부했다. 따라서 누구든 예외없이 하나님 앞에서는 죄인이다. 그리고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인들이 구원받을 길을 열어 놓으셨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인생에 담긴 의미가 상당히 커진다. 그리스도 없이, 심지어 그 이름조차 모르고 살다가 영원한 지옥에 들어갈 운명에 처한 이들이 10억명이 넘는데 어떻게 세상의 성공 신화를 좇으며 시간을 낭비하겠는가?

사형집행 날짜가 다가오는 사형수에게 1분 1초는 생명 그 자체다. 우리가 낭비하는 시간이 그들에겐 생명의 시간이다. 촌각을 다투어 생명의 복음을 전해 주어야 한다. 죽음의 운명에서 생명의 운명으로 바뀌는 것 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 이보다 가치있는 일은 없다. 실로 목숨 바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 복음을 가졌다면 우리에게 머뭇거릴 여유가 없다. 이 시간에도 사형이 집행되고 있다. 촌각을 다투어야 한다. 복음을 전하는 일은 특정한 사람에게만 맡겨진 것이 아니다. 복음을 가진 모든 이들의 사명이다. 그것은 숙명적인 사명이다. 복음을 가진 사람만 사형에 처한 영혼을 살릴 수 있다.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특권이요 축복이다. 이 특권과 축복을 사장시키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요 죽음을 방조하는 범죄 행위와 유사하다. 오늘의 내가 존재하는것은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과 복음을 위한 많은 사람의 희생의 결과다. 다른 사람이 해야할 일이 아니다. 지금 바로 내가 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