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현찬 목사.
(Photo : 기독일보) 심현찬 목사.

1. 우리 '시대의 정신' 포스트모던적 유목성

우리 '시대 정신'을 한마디로, 포스트모던 시대라면, 그 특징의 하나로, 노매디즘(유목성)이 하나의 삶의 유형이다. 한 곳에 머무는 것을 거부한다. 마치 어떤 문화 이론가는 이런 현대인의 삶을 '공항'과 비유한다. 공항에서 인간은 머물기를 거부하고, 어딘가로 계속 떠나고 유랑한다. 이런 현대인의 특징은 우리를 한 곳에 머물기를 거부하고 부정하고 나아가 조롱한다. 주의할 점은, 이 시대의 군상인 우리는 나도 모르게 이런 포스트모던의 '시대의 정신' 속에 함몰되어 살아간다는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생활 속에도 언제 모르게 매우 유목민적인 즉흥성과 속도성, 자기 중심성을 드러낸다. 진지한 영성이나 신학, 목회, 순전한 복음과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대한 열정과 비전에 대해서도 냉소적이다. 목회 현장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한국과 미국 이민 목회 현장에서도, 진지한 영성이나 목회는 상실해버리고, 인스턴트적이고 유흥적이고 본질을 상실한 지 오래다.

2. 백년 간의 고독의 신앙과 목회를 생각하며

1) 마르케즈의 [백년 간의 고독]. 남아메리카의 콜롬비아 작가인 노벨 문학상 수상자 마르케즈(Gabriel García Márquez)의 작품으로, [백 년 간의 고독] (One Hundred Years of Solitude)이 있다. 마술적인 리얼리즘으로, 콜롬비아 소도시의 7세대에 걸틴 이야기를 플롯으로 하고 있다. 나의 관심은 사실 이 작품의 내용이나 문학성 보다는, 그 작품의 이름이다. 이 '백년 간의 고독'을 빌어서 신앙과 목회의 관계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2) 유진 피터슨과 릭 배스와 빙하 이야기. 사실 나는 이 '백년 간의 고독의 목회와 신앙'의 개념은, 유진 피터슨의 책인 [현실, 하나님의 세계] (Christ Plays in Ten Thousand Places)를 읽으면서 마르케즈의 작품 제목이 생각났던 것이다. 피터슨은 이 책의 후기에서, 몬태나의 작가 릭 배스(Rick Bass)에 대해 잠시 이야기한다. 배스와 관련해서 빙하 이야기를 한다. '빙하는 세상에서 강력한 힘이다. 그 어느 것도, 정말 그 어느 것도 빙하는 막을 수 없다. 빙하는 장기간에 걸쳐 축적되어 형성된다. 오늘은 1cm, 어제는 1/4cm, 지난 주는 미세한 가루만큼 쌓이는 그런 과정을 통해. 눈이 두꺼워짐에 따라, 무게의 압박이 커진다. 그러면 얼음이 형성되고, 더 많은 눈이 쌓이고, 더 큰 얼음이 되고, 이런 식으로 한 해가 가고 또 한 해가 지난다. 오랫동안 했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그러나 20m의 두께가 되면 이제 빙하는 움직이기 시작하며, 일단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 무엇도 그것을 막을 수 없게 된다' (582-3). 릭 배스는 이것을 자신의 소명인 글쓰기의 은유로 삼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현대의 속도와의 전쟁에서 상실해버린, 작은 것과 인내의 중요성과 그 영향력을 은유적으로 강조한다.

3) 브래드웰과 가드너의 시간의 법칙. 이런 시간의 법칙과 관련해서, 말콤 브래드웰(M. Bradwell)은 최근에 Outliers라는 책에서, 'The 10,000-Hour Rule'을 강조한다. 월드 클라스의 소위 성공한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약 10,000시간 즉 10년의 전문분야에 투자했다는 것이다. 그 예로 모짜르트, 빌 게이츠, 비틀즈 등을 들고 있다. 물론 이 내용은 사실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미 10여년 전에, 하버드 대학의 교수인 하워드 가드너의 [열정과 기질] (Creating Minds)에서 언급된 '10년의 법칙'을 보다 대중적으로 전달한 것이다. 브래드웰과 가드너의 결론은, 결국 명품은 시간이 걸린다는, 평범하지만 매우 중요한 원리를 재확신시킨다.

4) '백년 간의 고독의 신앙과 목회'를 꿈꾸며: '시대의 정신'인 포스트모던적 유목성을 넘어서. 나는 피터슨의 빙하 이야기와, 브래드웰의 만 시간의 법칙, 가드너의 10년의 법칙 등을 읽고 생각하면서, 마르케스의 '백년 간의 고독'을 생각해보았다. 아니 백년 간의 고독의 신앙과 목회를 생각해 보았다.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현대는 포스트모던의 시대 정신적 특징으로, 유목민적인 삶으로, 우리 주위의 신앙과 목회도 순전한 복음과 목회, 신학에서 변질된 모습을 쉽게 보게된다. 우리는 이제 이러한 '시대 정신'의 물결을 거부하고, 순전한 복음, 순전한 영성과 목회로 회귀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결국은 우리 교회와 연구원이, 이 곳 미주와 한국, 나아가 전세계의 동역자들과 함께, '순전한 교회를 위한, 복음과 지성이 균형잡힌 명품 (포이에마) 리더쉽 양성의 비전'에 주목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조나단 에드워즈와 캘빈, 씨 에스 루이스와 로이드-존즈, 등의 명품 리더들과, 이 시대를 복음적으로 읽어내는 문화 신학에 주목하는 것이다. 나아가 궁극적으로 사도행전과 주님께서 보여준 복음과 하나님의 나라에 주목하는 것이다. 당연히 이 일은 결코 하루 이틀에 걸릴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주위의 칭찬이나 비난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5년, 10년, 100년간 동안에도 누군가 알아주지 않는다고 할 지라도, 당장에 우리의 신앙과 사역에 화려한 열매가 없어보인다고 할 지라도, 오늘도 뚜벅뚜벅 영원을 향하여 살고 심고 뿌리며 경주해야 할 것이다.

나도, 우리 동역자들과 함께, 빙하같은 인생, 신앙과 목회를 경주하고 싶다. 빙하같은 사람, 아빠, 남편과 목회자요 신학자가 되고 싶다. 백년 간의 고독을 인죠이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