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량
(Photo : 기독일보) 정인량 목사

T.S. 엘리엇의 원명은 토머스 스턴스 엘리엇(Thomas Stearns Eliot)이다. 워낙 이름이 길어 보통 T.S. 엘리엇이라 부른다. 그는 1888년 9월 26일 미국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의 부유한 가정에서 출생하여 1927년 39세 되던 해에 영국에 귀화하였다. 그러므로 그의 신분은 미국계 영국인이라고 불러야 합당할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벽돌회사 사장으로 성공한 사업가였지만 그의 어머니 샬럿은 시인이자 사회 운동가로 엘리엇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유복한 가정환경은 그가 어려서부터 최고의 교육을 받는 데 부족함이 없어 사립명문 스미스 아카데미를 거쳐 하바드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프랑스 솔본느와 독일의 마르부르크 그리고 영국의 옥스포드에서 계속 공부하였으니 그의 천재성은 아마도 반쯤은 부모 덕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가 이런 순탄한 학문정진을 통해 별다른 인생의 쓴 맛을 모르고 지내면서 인생의 근본적인 고뇌를 담은 황무지와 같은 대 서사시를 쓸 수 있었다는 것은 그가 살았던 시대의 절박성의 표출인 것이다. 그의 대표작 황무지는 5부작 500행이 넘는 장편시로 형이상학적 난해시에 속해 영문학도들은 그 누구라도 한번쯤 도전하고 싶은 열망을 불러일으키는 박학다식한 암호코드가 숨겨져 있다.

그중 1부작 " 죽은자의 매장"이란 제목하에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후 4월을 표현하는 숙어처럼 사용되고 있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기억과 욕망을 뒤섞고/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든다./겨울은 따뜻했었다./대지를 망각의 눈으로 덮어주고/가냘픈 목숨을 마른 구근으로 먹여 살려주었다. "

(April is the cruelest month, breeding/Lilacs out of the dead land, mixing/Memory and desire, stirring/Dull roots with spring rain./Winter kept us warm,/covering/Earth in forgetful snow, feeding /A little life with dried tubers)

그의 철학공부는 황무지라는 정신세계를 도출하였고 그것도 만물 소생의 계절, 부활의 계절을 가장 잔인한 달로 몰아갔던 것이다. 그의 예단이 적중했음일까? 한국의 4월은 한때 잔인하다 못해 피를 먹어야 살아나는 대지의 아우성으로 젊은 순교자들의 피를 수없이 요구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해마다 4월이 되면 엘리엇의 잔인한 4월이 애송되고 그리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보내곤 했다.

정말 나의 청춘 4월은 언제나 회색빛 하늘이었다. 화사한 개나리나 벛꽃 그늘마저 최루탄가스로 스러져 간 무수한 봄날들이었다. 그리하여 젊은날이 덧없이 가고 노년이 스물스물 찾아와 겨우 엘리엇의 4월의 시혼을 황무지 속에 영원히 잠재우는가 싶었는가 했던터에 천안함 사건이 터져 이번에는 대지를 넘어 아들같은 수병들의 피로 서해바다를 붉게 물들게 했던 것이다. 과연 엘리엇은 20세기 이후를 잔인한 4월로 도배질하려고 했던 것일까? 그의 4월은 영원한 황무지로 남겨질 것인가! 아니다. 결단코 아니다. 비록 중동에서 아프리카에서 극동에서 계속 전쟁의 포성이 울린다해도 대지는 라일락을 피워낼 것이다. 왜냐면 4월은 생명의 계절이며 부활의 계절이기 때문이다. 그가 헤맸던 종교적 방황은 그에게 이런 답을 주지 못했던 것이리라! 예수 만난 나의 4월에는 무수한 생명의 움이 돋고 힘차게 줄기가 뻗고 뿌리는 대지의 슬픔을 잠식하며 힘차게 뻗어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