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량
(Photo : 기독일보) 정인량 목사

내고장 7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 주저리 열리고
먼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 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손을 함뿍 젹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수건을 마련해 두렴

이육사(李陸史)는 한국 안동이 낳은 불세출의 시인이다. 본명은 이원록(李源祿) 또는 이원삼(李源三)인데 육사(陸史)라는 그의 아호는 대구형무소 수감생활 중 수감번호인 264를 음으로 따서 썼다고 한다.

한국의 서정시가운데 육사(陸史)의 청포도만큼 애송되는 시도 드물것이다. 간결하지만 풍성한 시어(詩語)로 한글의 품위를 한끗 고양시킨 아름다운 전원시이다. 이 청포도는 그가 35세 되던 1939년 당시 성가를 높이던 문학지 문장 8월호에 실리므로 한국의 7월을 더욱 풍성케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가 시인으로서 받은 교육이나 훈련은 매우 일천한 것이었다. 고작 조부에게서 한학을 배우고 일본 유학을 통해 일년남짓 신학문에 접했을 뿐이다. 당대의 문필가들이 내노라하는 학벌을 자랑하는 것에 비하면 놀라운 일이 아닐수 없다. 육사를 통해서 시인은 학문을 통해서가 아니라 태생적으로 그 시심(詩心)이 고인 샘물을 안고 태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다만 그의 심혼에 고인 시어들을 시작(詩作)이라는 두레박으로 길어 올리기만하면 되었던 것이다. 하기는 그가 퇴계 이황의 14대손이라고 하니 문장가의 피를 이어 받은 것임에는 틀림없었던 것이기는 하다.

그런데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시가 일제치하에서 조국광복을 염원하는 은유적 시라고 하니 또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마치 윤동주의 서시처럼 말이다. 그는 1925년 10대 후반에 가족이 대구로 이사한 뒤 형제들과 함께 의열단에 가입하였고, 1927년 10월 18일 일어난 장진홍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형인 원기, 동생 원일과 함께 처음 투옥되었다고 하니 그저 보통으로 하는 레지스탕스가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나는 고등학교때 문예반으로 그당시 한창 유행하던 문학의 밤을 몇차례 주도한 적이 있다. 이름도 잊혀지지 않는 "알암 문학회"이다. 어느해 문학의 밤에 당시 고등학생들의 로망이었던 목월선생을 초빙시인으로 모셨던 적이 있다. 때에 선생이 육사의 시를 낭송하면서 그의 애국애족을 말해주지 않았다면 그 이후도 상당히 오랜 기간 육사의 청포도는 그저 내마음 저편 어느곳 전설의 고향의 과수원으로 데려다 주는 아스라한 전원시로 남았을 것이다. 어떤 싸가지없는 식물학자가 육사는 하늘 밑 푸른 바다와 흰 돛단배를 멋있게 대비하였지만 청포도에 하얀 모시수건은 색조화에 있어서는 실패하였다고 했는데 그는 시인의 시상(詩想)까지 과학적 잣대로 검증하려는 오류를 범한것이다.

이러나 저러나 아! 나는 가고싶다 비포장 도로를 털털 거리며 달리는 시골버스를 타고 어느 후미진 산골짜기를 지나면 어느덧 탁트인 전설의 마을이 나타나고 소슬바람에 물결치는 포도나뭇잎들이 합창하는 그 과수원으로 그리고 하얀 세모시 받침에 은쟁반 하나 가득이 담겨진 청포도를 담아오는 7월 처녀의 사뿐한 걸음 속으로 들어가 육사가 노래한 항일 애족과는 상관없는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운 한폭의 그림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