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문(중동 지역 전문가, 인터서브 선교회 소속)
한동안 3자 입장에서 이라크 전후 과정을 지켜보던 한인들에게 당혹스런 사건이 발생했다. 김선일 씨의 납치 사건으로 인해 교계는 물론 사회 전반에서 파병을 둘러싼 찬반 양론이 게세게 대립되고 있다.
교계에서도 김선일씨 무사 귀환을 위한 기도회를 개최하면서 다양한 의견들을 말하고 있다.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한 국익논리는 위험하며, 유사 사건을 원천적으로 방지하기 위해 이라크 파병 계획을 즉각 철회할 것을 주장하는 자유진영과, 파병 찬반을 떠나 김씨와 유족 보호에 집중하여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는 보수인사들의 주장이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번과 같은 피랍 사건은 예고된 것이었다는 점이다. 지난 해 12월 초에 발생한 오무전기 관계자 피격 사건때도 동일한 우려가 터져나왔다. 그렇다고 이번 사건의 책임을 개인에게 돌릴 수는 없다. 오무전기 때도 언론과 정부에서는 무모한 기업가나 근로자의 일탈 행동으로 몰고가는 분위기였다.
문제는 개인이 발생시켰다고 말할 수 없다. 그동안, 아니 최소한 지난해 여름까지 한국인들이 이라크를 오가는데 큰 위협을 느끼지 않았다. 이라크를 오가는 모든 외국인들이 느끼는 차량무장강도(알리바바)들의 습격에 대한 긴장감이 있었지만 그것이 한국인만이 겪는 그런 문제는 아니었다. 이라크 어디를 가도 한국인들은 크게 위협을 받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한국 정부의 파병 결정이 정해지고 이것이 이라크인들에게도 알려지면서 한국인에 대한 반응은 냉담해지고, 반한 감정이 증가되어 갔다.
정부가 이런 분위기를 만들어 놓고 한국인들에게 이라크를 떠나라고 강권하는 것으로 한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정부의 책임을 다하였다고 볼수는 없을 것 같다. 여론 수렴의 기회도 없이 우선 정해놓고 국민을 설득하려는 식의 일방주의가 이번과 같은 어려움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이라 할 것이다.
사실 한국 정부의 파병 논의 과정이나 파병 전개 과정을 보면 참 상황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무시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키르쿠크가 위험하다는 반대 여론이 높아지자 급하게 나자프로 파병지 변경 가능성이 언론을 통해 흘러나왔다. 정말 나자프로 파병지 변경이 결정되었다면 아마도 한국은 부끄러움을 무릎쓰고 다른 곳으로의 파병지 변경을 시도했을 것같다. 나자프는 지금도 시아파가 거세게 미군의 통치를 둘러싸고 저항하고 있는 저항의 성지가 아닌가...그렇다고 아르빌이나 두훅 등의 이라크 북부 쿠르드 지역이라고 안전지대로 예단하기는 무리가 있을 것이다. 잠재적인 종족 분쟁의 중심지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일단 파병은 결정된 것이니 어떻게든 진행되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 같은 것이 집행과정에서 무리한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닐는지...
이라크는 최소한 두 개의 큰 전환점을 맞이하게 될 것 같다. 한국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7월 1일부터 본격화된다는 이라크 임시 정부의 출범 이후, 그것은 안정화의 첫단계가 아니라 분쟁과 갈등의 다극화의 시발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일단 임시 정부의 출범과 활동에 회의를 품고 저항하는 조직들이 시아파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울러 미국은 권력을 이양했지만, 이라크에서 완전히 발을 뺄 가능성이 전무하기에 이들을 몰아내려는 저항세력의 무장 저항도 끊이지 않을 것이다. 이제처럼 미군 몰아내기 전선이 임시 정부 반대 투쟁과 반미 투쟁이라는 또하나의 전선이 구축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아울러 한국군의 추가 파병은 점점 악화되어가는 반미 정서와 맞물려 미국을 지원하고 지지하는 강력한 세력으로 한국이 인식될 가능성이 크다. 감정적, 이념적 반한 움직임이 증폭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선교현장도 9.11을 겪으면서 많은 변화가 생겼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이슬람 바로 알기기 아주 작게나마 있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여유 공간을 안겨주었다는 점이다. 대립과 갈등, 무시와 정죄를 통한 선교가 아닌 하나님의 관심의 땅,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으로서의 이슬람권과 무슬림을 대하는 태도가 증가되었다는 점은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이런 갈등의 공간에 한국은 여러면에서 준비된 민족임이 틀림없다. 식민통치와 분단, 독재와 민주화 과정, 경제 발전과 분배와 균형 등 이슬람권이 이제와서 겪고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이미 겪은 민족이라는 점과 복음으로 새로운 소망을 찾은 민족이라는 점 등도 이 지역 사람들을 이해하고 품는데 중요한 바탕이 되고 있다.
이런 근본적이고 중요한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정서로, 하나님의 관심을 품고 이 땅의 사람들을 다양하게 섬기는 면에서는 여전히 부족한 느낌이다. 아직까지 우리들은 서구형 선교 모델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선교현장의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그 필요에 적절하게 대응하는 면에서도 서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국인 선교사들은 이슬람권의 무슬림들을 비롯한 현지인들을 체험적으로,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사람들이라는 장점이 현실 속에 드러날 수 있기를 소망한다.
한동안 3자 입장에서 이라크 전후 과정을 지켜보던 한인들에게 당혹스런 사건이 발생했다. 김선일 씨의 납치 사건으로 인해 교계는 물론 사회 전반에서 파병을 둘러싼 찬반 양론이 게세게 대립되고 있다.
교계에서도 김선일씨 무사 귀환을 위한 기도회를 개최하면서 다양한 의견들을 말하고 있다.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한 국익논리는 위험하며, 유사 사건을 원천적으로 방지하기 위해 이라크 파병 계획을 즉각 철회할 것을 주장하는 자유진영과, 파병 찬반을 떠나 김씨와 유족 보호에 집중하여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는 보수인사들의 주장이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번과 같은 피랍 사건은 예고된 것이었다는 점이다. 지난 해 12월 초에 발생한 오무전기 관계자 피격 사건때도 동일한 우려가 터져나왔다. 그렇다고 이번 사건의 책임을 개인에게 돌릴 수는 없다. 오무전기 때도 언론과 정부에서는 무모한 기업가나 근로자의 일탈 행동으로 몰고가는 분위기였다.
문제는 개인이 발생시켰다고 말할 수 없다. 그동안, 아니 최소한 지난해 여름까지 한국인들이 이라크를 오가는데 큰 위협을 느끼지 않았다. 이라크를 오가는 모든 외국인들이 느끼는 차량무장강도(알리바바)들의 습격에 대한 긴장감이 있었지만 그것이 한국인만이 겪는 그런 문제는 아니었다. 이라크 어디를 가도 한국인들은 크게 위협을 받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한국 정부의 파병 결정이 정해지고 이것이 이라크인들에게도 알려지면서 한국인에 대한 반응은 냉담해지고, 반한 감정이 증가되어 갔다.
정부가 이런 분위기를 만들어 놓고 한국인들에게 이라크를 떠나라고 강권하는 것으로 한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정부의 책임을 다하였다고 볼수는 없을 것 같다. 여론 수렴의 기회도 없이 우선 정해놓고 국민을 설득하려는 식의 일방주의가 이번과 같은 어려움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이라 할 것이다.
사실 한국 정부의 파병 논의 과정이나 파병 전개 과정을 보면 참 상황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무시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키르쿠크가 위험하다는 반대 여론이 높아지자 급하게 나자프로 파병지 변경 가능성이 언론을 통해 흘러나왔다. 정말 나자프로 파병지 변경이 결정되었다면 아마도 한국은 부끄러움을 무릎쓰고 다른 곳으로의 파병지 변경을 시도했을 것같다. 나자프는 지금도 시아파가 거세게 미군의 통치를 둘러싸고 저항하고 있는 저항의 성지가 아닌가...그렇다고 아르빌이나 두훅 등의 이라크 북부 쿠르드 지역이라고 안전지대로 예단하기는 무리가 있을 것이다. 잠재적인 종족 분쟁의 중심지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일단 파병은 결정된 것이니 어떻게든 진행되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 같은 것이 집행과정에서 무리한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닐는지...
이라크는 최소한 두 개의 큰 전환점을 맞이하게 될 것 같다. 한국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7월 1일부터 본격화된다는 이라크 임시 정부의 출범 이후, 그것은 안정화의 첫단계가 아니라 분쟁과 갈등의 다극화의 시발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일단 임시 정부의 출범과 활동에 회의를 품고 저항하는 조직들이 시아파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울러 미국은 권력을 이양했지만, 이라크에서 완전히 발을 뺄 가능성이 전무하기에 이들을 몰아내려는 저항세력의 무장 저항도 끊이지 않을 것이다. 이제처럼 미군 몰아내기 전선이 임시 정부 반대 투쟁과 반미 투쟁이라는 또하나의 전선이 구축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아울러 한국군의 추가 파병은 점점 악화되어가는 반미 정서와 맞물려 미국을 지원하고 지지하는 강력한 세력으로 한국이 인식될 가능성이 크다. 감정적, 이념적 반한 움직임이 증폭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선교현장도 9.11을 겪으면서 많은 변화가 생겼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이슬람 바로 알기기 아주 작게나마 있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여유 공간을 안겨주었다는 점이다. 대립과 갈등, 무시와 정죄를 통한 선교가 아닌 하나님의 관심의 땅,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으로서의 이슬람권과 무슬림을 대하는 태도가 증가되었다는 점은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이런 갈등의 공간에 한국은 여러면에서 준비된 민족임이 틀림없다. 식민통치와 분단, 독재와 민주화 과정, 경제 발전과 분배와 균형 등 이슬람권이 이제와서 겪고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이미 겪은 민족이라는 점과 복음으로 새로운 소망을 찾은 민족이라는 점 등도 이 지역 사람들을 이해하고 품는데 중요한 바탕이 되고 있다.
이런 근본적이고 중요한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정서로, 하나님의 관심을 품고 이 땅의 사람들을 다양하게 섬기는 면에서는 여전히 부족한 느낌이다. 아직까지 우리들은 서구형 선교 모델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선교현장의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그 필요에 적절하게 대응하는 면에서도 서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국인 선교사들은 이슬람권의 무슬림들을 비롯한 현지인들을 체험적으로,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사람들이라는 장점이 현실 속에 드러날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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