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량
(Photo : 기독일보) 정인량 목사

인류문명사에 있어 가장 위대한 인물들이 속출한 시기는 단연코 18세기일 것이다. 문학에 괴테, 철학에 칸트, 음악에 모짜르트를 그 대표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음악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위대한 음악가들이 수없이 탄생하였다. 고전음악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바흐와 헨델에 이어 하이든과 모짜르트와 베토벤이 탄생한 세기였던 것이다.

모짜르트 해석의 대가(大家) 칼발트에 의하면 괴테와 모짜르트는 동시대의 사람이었지만 한번도 만난 적이 없다고 한다. 그리고 괴테가 문학, 동식물학, 심지어는 의학과 음악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 걸친 박학다식한 천재임에 비하여 모짜르트는 음악외에는 문외한이었다. 일예로 모차르트가'제비꽃'이라는 가곡을 작곡했으나 그것이 괴테의 시인 줄 몰랐다. 그러나 괴테는 모차르트의 음악을 그 무엇과도 비길 데 없다고 찬사를 보냈으며, 자신의 '파우스트'를 음악으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은 모차르트뿐이라고 믿었을 정도였다. 이런 사실은 모짜르트의 음악에 대한 편집증을 이해한 괴테의 너그러움이 돋보이는 것이다. 칼발트는 모짜르트의 자유에 미쳐 괴테의 전일성 즉 그의 전인격적이고 다방면에 걸친 빛나는 천재성을 깍아내렸지만 괴테의 모짜르트에 대한 이해는 모짜르트에게는 찾아볼 수 없는 관용성인 것이다.

어떤 익살꾼이 다음과 같은 상상으로 괴퇴와 모짜르트의 만남을 유쾌하게 각색하였다. "괴테님! 모차르트님은 만난 적이 있었지요? 예. 모차르트가 7살 때 만났습니다. 제가 14살 때... 아마 모짜르트가 하이델베르크를 방문했을 때일 겁니다. 그때 어린 모짜르트가 앙트와네트 공주에게 청혼을 해서 웃음바다가 되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촌평했다. "그때 마리앙트와네뜨가 모짜르트와 결혼했다면 아마 세계사는 다시 쓰여져야 할 것이다. 왜냐면 그녀가 루이 16세에게 시집가서 프랑스혁명 때 처형당할 일도 없었을 것이니까" 아주 유쾌한 반전이 있는 유모어이다.

아주 작은 사료(史料)에 불과하지만 이런 힌트속에 찾을수 있는 지혜는 이 세상을 살아갈때 괴테가 모짜르트를 이해한 것처럼 그 누군가에 의해 한없이 넓은 마음으로 이해받는다는 것 만큼 용기백배할 일은 없다는 것이다. 진흙 속에 진주를 발견하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 진주의 흙을 털어내고 광을 내고 세상에 소문을 내주고 하는 일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모름지기 지도력은 괴테와 같은 관용성있는 이해에서 나온다. 모짜르트가 모짜르트가 된 것은 하이든과 베토벤과 괴테가 그를 알아 봐주고 아끼고 이해한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