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한인목회연구원(원장 안현준 목사) 8월 정기모임이 5일(월) 메릴랜드 락빌 소재 세계로교회(담임 이병완 목사)에서 열렸다.
이번 모임에서는 이병구 목사(워싱턴침례대학교 교수)가 "성경 해석학을 위한 성경번역의 용례비교"란 주제로 발표했다. 이 목사는 "역본들을 읽을 때마다 '번역은 곧 해석'이라는 점을 실감한다"며, 요한계시록 1장 3절, '예수의 증거'라는 어구, 하나님의 호칭, '편지하기를', 베드로후서 1장 1절 등에 대한 개역 한글 성경과 개역 개정 한글 성경의 번역상의 차이점을 소개했다.
이 목사는 "지식보다는 행함이 강조될 필요가 있는 한국교회의 현실에서 단어 하나의 의미를 다루는 이러한 노력이 중세기 수도사들의 공허한 신학논쟁처럼 보일런지 모르겠다. 그러나 기독론과 성령론에서조차 알파벳 한 두개의 근소한 차이가 큰 신학적 분쟁을 불러일으켰음을 상기하면서 바른 믿음, 바른 신학과 바른 행함은 성경 말씀의 최소 단위이자 사고의 가장 작은 구성요소인 단어 하나의 바른 이해부터 출발한다고 믿는다"며, "한글 성경을 읽는 이들에게 약간의 정보를 제공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가까이 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흐리게 하지 않고 성령의 조명하심으로 더 잘 깨닫게 되는 일에 일조하는 것이 소원"이라고 전했다.
다음은 이병구 목사의 주제 발표 주요 내용이다.
요한계시록 1장 3절에 대해서
개역판은 '읽는 자'는 단수로, '듣는 자들'과 '지키는 자들'은 복수로 표현했다. 개역 개정판은 '읽는 자'와 '듣는 자', '지키는 자'를 모두 단수로 표현했다. 개역판은 오늘날처럼 많은 복사본을 쉽게 구할 수 있다면 교회의 대표가 회중들에게 큰 소리로 낭독할 필요가 없겠지만 그 당시에는 누군가가 낭독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기에 읽는 사람은 단수로, 듣는 사람과 그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들은 복수로 표현한 것이다. 오늘날처럼 개인적으로 성경을 소장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이 두 한글 역본의 차이가 별 의미가 없을 수도 있지만, 이런 작은 차이점을 무시하지 않고 살펴볼 때 성경의 원래 의미와 취지를 보다 풍성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의 증거'라는 어구에 대해서
개역 성경은 헬라어의 '말투리아'를 처음부터 끝까지 '증거'라는 말로 직역해, 이해는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었다. 반면에 개역 개정 성경은 어떤 곳에서는 '예수의 증거'로, 다른 곳에서는 '예수의 증언'으로, 또 어떤 곳에서는 '예수를 증언함'(목적격적 소유격)으로 문맥에 따라 의역을 했다.
하나님의 호칭에 관해서
한글 성경에는 시제 이해를 돕는 부사어들, 즉 '이제는' '지금도' '시방도' '전에도' '옛적에도' '장차' 등의 단어들이 첨가됐다. 문예적인 기교나 문학기법은 표현의 풍부함을 위해서 동일 단어를 반복하는 것보다는 동의어를 사용하는 것을 권장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호칭 혹은 호칭에 준하는 전문용어 또는 기술적인 용어는 일관성과 통일성을 갖춘 표현을 요구한다.
개역 성경은 계1:4에서는 '전에도 계시고'라고 번역했지만 다른 곳들에서는 '계셨고' 등의 분명한 과거적 표현을 썼다. 그 이유는 불문명하다. 11:17과 16:5에서 사용된 한글 어구의 순서가 헬라어 어구와 역순인 것은 문맥과 연결된 신학적 이유 때문인지 아니면 단순히 번역상의 표현기법때문이었는지 확실하지 않다.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셧고 장차 오실 이'라는 하나님의 칭호는 요한계시록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따라서 요한계시록은 종말론만의 책이 아니고 신론의 책이기도 함을 상기하게 된다.
'편지하기를'(편지하라)에 대해서
계2:1, 8, 12, 18; 3:1, 7, 14 에 '편지하라'는 개정판의 번역은 헬라어 성경의 명령법이 드러난 표현이며 문맥상의 의역이다. 헬라어는 2인칭 단수 명령어이기 때문에 직역을 하면 (너는) '기록하라'(쓰라)이다. 영어 역본들은 '쓰라'(write)라는 말로 번역했다. 그런데 그 글쓰는 행동이 특정한 수신자를 대상으로 하여 글을 쓰는 행위이기 때문에 우리 말로 '편지하라'라고 번역한 것이다.
그런데 아시아의 일곱 교회 각각을 향해서 '편지하라'와 '편지하기를'이라는 말로 번역한 동일한 헬라어 명령어를 계1:11에서는 두 역본이 똑같이 '써서'라는 말로, 1:19에서는 '기록하라'는 말로 번역했다.
각 교회가 대상으로 되어 있어서 '편지하라'라고 표현하는 것이 좋을 듯 하나 약간의 아쉬움이 생긴다. 그 이유는 기록되는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정경적 권위에 맞추어-Thomas)를 드러내는 점에서도 '기록하라' 혹은 '쓰라'는 표현이 어감을 더 잘 살리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더 큰 이유는 '기록하라'는 명령어 뒤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그가) 이것들을 말씀하신다'는 어구가 권위와 강조를 겸한 예언적 메시지 선포를 유도하는 구절이기 때문이다. 곧 성자의 말씀이요 성령의 말씀이다.
베드로후서 1:1의 '하나님과 구주'라는 어구에 대해서
'Granville-Sharp rule'이라고 불리워지는 법칙이 있다. 샤프는 '정관사-명사-kai-명사'의 문법 구조에 있어서 두 명사가 단수 인칭의 보통 명사일 경우에 그 두 단어는 항상 같은 대상을 가리킨다고 주장했다. 가령 'the God and Father'는 신약 성경에 많이 나오는데 '하나님 아버지'를 가리킨다.
즉, 벧후 1:11의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와 2:20의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경우처럼 벧후 1:1의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도 '우리 하나님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번역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구절은 디도서 2:13 '우리의 크신 하나님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에 관한 가장 분명한 진술들 중의 하나이다.
문의 : 240-888-9919(원장 안현준 목사), 410-292-9410(총무 손갑성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