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규호
(Photo : 기독일보) 노규호 목사.

몇해 전 인터넷에 회자된 글 내용중에, 한국에서 잘 나가는 어느 회사가 사훈(社訓)을 "河己失音 官頭登可(하기실음 관두등가)"로 내걸고 직원들을 독려했다고 합니다. 조합된 한자어를 소리나는대로 읽어보니 기가 막히면서도 의미있는 "언어 유희"(言語遊戱)였습니다.

이 말은 원래 중국 <사기>의 '이사열전'에서 이사가 진시황에게 "어떠한 백성이라도 물리치지 않아야 천하 통일의 대업을 이룰 수 있다"고 설득하면서 말한 구절을 패러디한 것이라고 하는데요. 사소한 것조차 포용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답니다.

泰山不辭土壤(태산불사토양) 河海不擇細流(하해불택세류)
태산은 흙을 사양하지 않고, 강과 바다는 작은 물줄기를 가리지 않는다.

"河己失音 官頭登可(하기실음 관두등가)"의 한자성어를 억지로 풀어보자면, "흐르는 하천의 물이 자기 소리를 내지 않을 때에야 비로소 넓고 넓은 바다에 이를 수가 있듯이, 자기를 비우는 사람이 높은 지위를 얻을 수 있다."는 의미로 "크게 성공하려는 자는 자기의 주장을 내세우거나 일의 경중을 다룰 것이 아니라, 일의 공정성과 성실만을 생각하고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가 큰 일에도 충성된다"는 말과 유사한 의미를 전하려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일부 사람들이 "왜? 나에게는 이렇게 하찮은 일만 주어지는 것일까? 맨날 다른 사람 뒤치닥거리나 하고,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일만 죽도록 하게 되지?" 혹은 "날마다 불철주야, 정신없이 일하는데, 왜? 내 소득은 이것 뿐이고, 내 인사고가 점수는 형편없는 것일까?" 하며 자신의 주어진 작은 일에 대한 불평과 불만이 가득하고, 작은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등한히 하면서 허황된 생각에 사로잡혀 높은 지위과 고소득만 추구하는 자들을 향해서 든지, 자신의 사명과 책임을 이런 저런 핑계로 성실히 감당하지 않는 사람, 앞장서서 하겠다고 호언장담을 하고 난 후 용두사미(龍頭蛇尾)처럼 흐지부지 꼬리를 내리는 사람, 매사에 자기의 지식과 경험만이 옳다고 주장하며 비판과 부정으로 동료들과의 화합을 깨뜨리는 사람, 다른 사람에게는 무거운 짐을 지우면서 자신은 한 손가락도 꼼짝 안하고 턱과 입으로만 흉내내고도 모세의 자리에 앉아 모든 공치사를 취하려는 자들을 향해 "하찮은 일, 작은 일이라도 하기 싫으면 관둬!"라고 하는 쓴소리일 것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일의 크고 작음이나, 경중에 구애받지 않고, 직책에 관계없이, 어떤 하찮은 일이든지 불평과 불만의 소리를 내지 않고, 주어진 일에 최선의 사명감으로 충성을 다하는 것으로 주변의 모든 이들에게 덕을 세우고 격려하며, 종국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라 생각합니다. 현재 주어진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사람은 앞으로 주어지는 더 큰 일을 감당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나라의 원리입니다.

목회현장도 마찬가지 같습니다. 대형교회라 충성하는 것이 아니고, 보잘 것 없고 연약한 작은 교회라도 최선을 다해 성실히 감당하는 모습이 건강하게 커가는 교회를 이룰 것이라 확신합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누가복음 1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