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세규 목사.
(Photo : 기독일보) 장세규 목사.

자주 만나 긴밀하게 많은 일을 의논한 변호사가 있습니다. 나이 많으신 노 변호사입니다. 한 지역에서 30년 동안 한 분야 일을 했습니다. 변호사에게 법률 지식이나 개인적인 능력보다는 더 중요하게 여기는 다양하고 풍성한 경험을 가진 분이었습니다.

과거에 사업이나 구호 활동 등을 통해서 꽤 많은 유대인들과 친분을 나눈 적이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유대인 변호사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2차 세계 대전 막바지에 유럽에서 미국으로 대거 이주한 유대인 이민 1세대의 자녀 세대입니다. 주류 사회에 배경도 없고 롤 모델도 없는 이민 1세대에게 신분 상승의 유일한 길은 자녀 교육이었습니다. 40년대에 대규모로 이민온 유대인들도 자녀 교육에 모든 것을 걸었고 놀랄 정도로 많은 숫자가 미국의 최고 학부에 들어 갔습니다. 그 중에서도 배경이나 후견인 없이 자신의 길을 개척할 수 있는 길로서 자녀들을 법대에 많이 보냈습니다. 60년대는 유대인 2세들이 대규모로 법조계에 진출한 시절입니다. 지금 70대의 유대인 변호사들이 바로 그 당시 이민 1세의 자녀들입니다.

유대인 2세 변호사들은 그 후에 배출된 3세, 4세의 젊은 유대인 변호사들에 비해서 신앙 생활 하는 비율이 높습니다. 소위 종교적인 유대인(religious jews)로서 안식일이면 자녀들을 챙겨서 회당에 출석하고 절기를 철저히 지키는 사람들입니다. 자주 만나 가까워졌던 노 변호사도 유대교 신앙생활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 시절 주류 사회에서 격리된 채 회당을 중심으로 유대인 사회 안에서 자랐기 때문에 미국의 주류 사회 기준에는 어색한 배경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사이 사이 개인적인 이야기도 나누고 가볍게 유대교와 기독교에 얽힌 역사적인 이야기들과 현대 법률 제도의 배경 등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는 동안 상당히 가까워졌습니다. 서로 신뢰하고 가까워지면서 점차 개인적인 이야기들도 늘었습니다. 개인적인 이야기들 가운데 점차 자신이 출석하고 있는 회당의 이야기들도 묻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회중이 갈라져서 싸운 이야기, 이사회 내부의 분쟁과 알력, 회당의 "평신도" 지도자로서 존경 받던 분이 "시험"이 들어서 회당을 떠나고 아예 타주로 이사 간 이야기 등을 듣게 되었습니다. 회당의 랍비와 "평신도"와의 갈등, 건축이나 큰 프로젝트를 할 때마다 생기는 크고 작은 갈등 등을 작은 조각들로 듣을 수 있었습니다.

인간 사회는 다 똑같습니다. 사람이 모인 곳은 서양 사람이든, 동양 사람들이든 다 똑 같습니다. 민족이 달라도 이민 사회는 이민 사회로서 똑 같습니다. 똑 같은 아시아 사람들이어도 수십개의 민족이 서로 인종이 다른 것처럼 살아가듯이 백인들도 다 하얗게 보일지라도 자기들끼리는 서로 다른 인종처럼 살아갑니다. 그저 멀리 보면 다 아름다워 보이고, 가까이 가면 누추한 것이 더 잘 보일 뿐입니다. 속 사정을 잘 모르면 남이 다 행복해 보이는 것이고 속 사정을 잘 아는 "우리"는 더 불행해 보일 뿐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시간이 흘러서 경험이 쌓인다는 것입니다. 사람 모인 곳에서 생기는 수 많은 불편한 일들 때문에 놀라고 힘들어 하는 것은 그런 일을 처음 당해 보았기 때문입니다. 세월이 흐르면 놀라지 않게 될 뿐입니다.

성경에 담긴 지혜를 가장 잘 요약한 표현 중의 하나가 "해 아래 새 것이 없나니" 입니다. 하늘 아래 인간 사에서 새 것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어린 생각이고, 어리석은 행동일 뿐 아니라 새 것을 찾는다는 노력조차도 이 전에 다 해 보았던 오래 된 것일 뿐 입니다. 정죄와 비난으로 급히 몰아가는 어설픈 판단을 내려 놓고 있는 그대로를 용납하고 사랑하고 감싸고 지켜 줄 뿐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 마저도 해 아래 새 것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