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인권
(Photo : 기독일보) 안인권 목사.

호구지책으로 만족하는 인생이 아닌, 발전적이고 보다 다른 차원의 삶에 대한 열망이 있는 사람들은 변화의 필요성에 대해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러나 정작 변화를 위한 행동 개시가 늦춰지는 경향이 있다. 변화의 필요성에는 전적으로 동의 하지만 변화를 위한 행동 개시는 미뤄지고 있다. 이후 발생할지 모르는 사태 악화에 대한 불안감을 극복하지 못해 기존의 상태를 붙잡고 놓지 못하는 것이다. 또 하나, 현재까지의 익숙해진 삶의 패턴을 벗어나는 것이 쉽지 않은 이유는 불편함 때문이다. 딱 오늘 하루만 예전처럼 익숙하고 마음 편한 상황에서 지낸다고 해서 큰일날 것도 없다는 것을 당신 자신은 잘 알고 있다. 나아가 그렇게 며칠을 더 미룬다고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도 잘 알고 있다.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정확히 말하면, 편안함에 안주하려는 생각이 당신을 잡고 있다는 얘기다. 변화의 시작은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고통스럽다. 이와같은 '시간 끌기' 전략에 말려들게 되면 결국 변화는 시작도 못한 채 인생이 끝나고 만다. 애연가들에게 흔히 발견되는 현상이다. 담배를 피운다고 해서 하루 이틀 사이에 갑자기 죽는 것도 아니고, 조만간 꼭 끊겠다고 결심하지만 이 결심을 실행하는 일은 죽기보다 더 힘들다.

그러나 의사가 폐암 말기 환자의 폐 사진을 보여주며 일주일 안에 담배를 끊지 않으면 당신도 폐암에 걸려 사망할 확률이 90 퍼센트가 넘는다고 말한다면 어떨까? 이러고도 담배를 안 끊을 강심장은 없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변화를 지금 당장 실천하지 않아도 점진적 죽음에 대한 결과가 실제로 보일 때까지는 충분히 개입할 시간이 있다는 믿음 때문에 변화를 게을리 하다 결국은 타이밍을 놓치고 만다. 미루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간이 다가 왔을 때는 당신이 조직에서 퇴출되는 순간이 된다. 따라서 어떻게 성공적으로 긴장감을 창출할 수 있는지는 변화를 시작하는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이다. 긴장감 창출을 가로막는 몇 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 책임자들의 해피 토크이다. '우리는 지금보다 더 어려운 일도 버텨 왔으니 이까짓 일로는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는 근거없는 낙관으로 무장되어 있을 때 긴장감 창출이 어려워진다. 온도가 비등점까지 육박한 현실에 대한 무책임한 낙관, 근거없는 낙관은 살인 방조와 같다. 둘째, 실제로 눈에 보이는 위기 징후가 부재한 경우이다. 특히 잘 되고 있는 경우라면 긴장감 창출은 더 어려운 문제이다.

변화는 우리만 잘 한다고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대부분 변화의 원인은 우리와 상관없이 밖에서 발생하여 안으로 파고든다. 따라서 언제 올지 모르는 변화의 쓰나미에 쓰러지지 않기 위해서는 평소 경기가 좋고 상황이 좋을 때 준비를 해야 한다. 이런 정도는 누구나 알고 있다 하더라도, 현재 상황이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미래의 변화를 준비하도록 구성원들을 독려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성공한 기업이나 개인의 특징은 상황이 좋을 때 변화에 대한 위기감 창출에 성공했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만큼 변화를 읽을 줄 아는 리더의 역할이 중요하다. 셋째, 성과에 관련된 것들이다. 냄비 안에서 서서히 삶아져 죽어가는 개구리가 되고 있는 개인과 기업들을 보면 공통적으로 성과 지표들이 지나치게 낮게 잡혀 있거나, 성과가 왜곡되어 있다. 지난 해보다 이익률이 10퍼센트 증가 했다는 성과지표를 언급하지만 이는 5년전에 비해서는 30퍼센트 감소한 결과일 수도 있다. 성과의 왜곡은 변화에 대한 도전보다 기존의 일에 매달려 바쁘게 시간을 보내게 한다. 성공한 개인과 기업들은 변화를 위한 긴장감 창출과 위기를 잘 구별해 낸다.

긴박감은 다가올 위기에 대비하는 생산적 신호인 반면 위기는 이미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를 말한다. 시간상으로 간단히 설명하면, 상당기간 긴박감을 통한 변화의 신호를 무시하다 보면 긴박감은 발등의 불인 위기로 바뀌게 된다. 평소 긴박감의 신호를 잘 수용하지 못하고 낙관적으로 버티는 사람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처럼 위기를 숙명으로 감내해야 한다. 평소에 자신에게 중요하지만 긴급하지 않아 보이는 일인 톱 가는 일을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겨울이 반드시 온다는것을 알고 있지만 땔나무를 준비하기 위해 필요한 톱날을 세우는 일을 시급하게 생각하지 않고 차일 피일하다 어느덧 찬바람이 불고 눈발이 날리는 겨울이 닥친 것이다. 평소에 톱날을 세우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은 사람들은 상황이 좋을 때도 긴박감의 신호를 감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경기가 좋을 때 다가올 위기를 감지하고 톱을 갈기 때문에 있는 충분한 자원의 여유를 가지고 누구보다 더 날이 선 톱을 가지고 어려운 상황을 이겨나갈 준비를 할 수 있다. 또한 이들은 좋을 때 변화를 준비하기 때문에 시행착오를 만회할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있다.

반면 톱날 세우는 일을 게을리한 사람은 경기가 상투를 치고 하강하는 순간부터 변화를 시작하기 때문에 성공적 변화의 결정적 시기를 놓치게 된다. 좋을 때는 좋은 세월을 다같이 누리지만 나빠지면 준비 못한 실수로 실패의 운명을 거부할 수 없게 된다. 상황은 저점에서 고점으로 고점에서 저점으로 끊임없이 움직인다. 변화는 변수가 아니라 상수다. 영적 변화는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는 절대적인 상수이다. 거듭나지 않으면 결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육신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변화의 기회가 주어진 시간이다. 일생동안 많은 위기가 찾아온다. 그 위기들이 승리의 기회가 되고 성공의 기회가 되는 것은 평소 긴장을 늦추지 않는 것에 달려 있다. 그날에 대한 준비는 상식이다. 대부분이 알면서 준비할 기회를 놓치는 이유는 마귀의 시간 끌기 작전에 말려 들어 갔기 때문이다. 알고 있다는 것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도 치명적인 이유가 된다. 오늘 하루만 쉬고 내일부터 하자고 스스로 다짐한 것이 벌써 한 달이 지났고 일 년이 지났으며 10년이 지났다. 어떤 사람은 임종이 가까이 오고 있다. 마귀는 우리의 결심에 대해서 동의한다. 그러나 오늘은 쉬고 내일부터 시작하라고 나를 위해서 말한다. 나를 위해서하는 마귀의 말에 더 이상 속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