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한인목회연구원(원장 안현준 목사) 6월 정기모임이 4일(화) 여정크리스찬휄로우십교회(담임 최윤환 목사)에서 열렸다.
이날 모임에서는 최윤환 목사가 "골로새 교회와 그 지형환경"이라는 제목으로 연구 자료를 발표했다. 골로새라는 도시는 라오디게아와 히에라볼리에 가까우며(골4:13), 함께 초대 기독교 교회의 중심지였다.
최 목사는 화산지대였던 골로새 지역의 작고 둥근 연못들, 단애로 흘러 내려오는 온천물과 옥외온천장, 야외극장 등을 설명한 후, "골로새 출신으로 바울의 제자가 된 에바브라(골 1:7, 4:12)의 사역으로 크리스천 공동체가 생겨났다. 하지만 당시 골로새는 아폴로, 헤라클레스, 풀로토 등 우상숭배하는 헬라인들의 뿌리가 워낙 깊고, 보수적 유대인들의 세력이 강해 유대적 의식주의, 천사숭배, 동방의 신비주의에 오염되어 이단적 성향을 띠었을 것으로 보인다"며, "이런 시대적 상황이 이곳에서 사역했던 집사 필립이 AD 80년경 네 딸과 함께 순교를 당하는 배경이 됐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또한, 최 목사는 "에바브라가 세운 골로새 교회 교인으로는 빌레몬, 오네시모, 아킵보 등이 있었다. 빌레몬의 종이었다가 로마로 도망했으나 바울을 만나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 오네시모. 바울은 오네시모를 골로새로 돌려 보내면서 빌레몬이 그를 처벌하지 말도록 간절히 요청하는 내용의 빌레몬서를 썼다. 사도 바울은 빌레몬서에서 '주인도 하나님 앞에서는 종이요, 종도 하나님 앞에서는 자유인'이라고 갈파하면서 인류문명을 바꿔놓는 보편적 가치로서의 역동적인 자유와 평등사상의 기초를 제공하기도 했다. 오네시모는 그 후 종의 신분에서 벗어나 에베소의 주교까지 올라 복음전파에 힘썼다"며, "골로새 지역을 탐방하면서 바울의 가르침을 깊게 되새겨 볼 수 있었다"고 전했다.
세미나 이후 열린 임시총회에서는 신안건이 다뤄졌다. 정인량 목사의 명예회원 요청 건은 만장일치로 통과됐으며, 이광훈 목사(성마가연합감리교회)와 한태일 목사(경향가든교회)의 신입회원 영입 건도 통과됐다.
문의 : 240-888-9919(원장 안현준 목사), 410-292-9410(총무 손갑성 목사)
<골로새교회와 그 지형환경 최윤환 硏究 編資 자료>
파무칼레(Pamukkale)_ 신약성경 골로새서_
<히에라볼리(Hierapolis)>_골4:13. ancient Phrygia
<사대>에서는, 멀리 가물가물 동쪽으로 보이던,
1840m <리코스>산 중턱 斷崖_ 376m 산 아래 멀리서 볼 땐_ 하얀 목화 성처럼 보인다.
그래서 Cotton Castle_ Pamukkale.
하얀 단애(斷崖)_ 壯觀_ 하얀 고드름 매달린 듯하다.
작고 둥근 연못들이 층층이. 겨울 성에가 겹친 듯. 동화 속, 別世界와 있는 듯. 자연의 조화.
발아래, 찬찬한 석회물을 서서 내려다보면 우유 빛_ 손으로 떠 보면_ 미낀미낀,
약간 코발트색도 비쳐나오는 물.
단애로 흘러 내려오는 온천물_ 다량의 석회질. 물 흐르면서, 석회질이 침전_ 2,3일 지나면 하얗게. (빈병, 석고상 이곳에 담가뒀다가, 이틀 후 꺼내면 하얀 성에가 껴, 아름다운 작품이 되어 나옴) 대낮_하얀 색갈. 오후_파란 색깔. 석양_ 붉은 낙조. 壯觀을 이룬다.
원래 이 지역이 화산지대. 수차례 지진을 거듭해 붕괴.
1094년_ 셀주크터키군~비쟌틴제국 간 전쟁터.
옛 도시가 지하에 묻혀, 폐허로.
1970년대 개발. 온천. 하얀 단층에 자연 빛 신비.
옥외온천장_ 지하에 묻힌 옛 교회 위에 조성된 온천.
대 지진으로 옛 교회가 지하에 묻혀, 거기 온천물이 솟아, 특별한 의미가 되새겨지는 장소.
온천 바닥에는_ 이오니아식 부서진 거대한 둥근 기둥 석,
나둥그러져 널려 있어, 조금 깊은 곳은 어른 키만큼.
섭씨35도쯤. 좀 쌀쌀한 날엔 기분 좋을 만큼 쯤 따듯.
바닥에 깔린, 옛 교회기둥 딛고 설 땐_ 옛 교회 건물이 묻혀있음 상상하면, 큰 감화가 느껴온다.
약효도 탁월해, 이 지방 사람들은_ 약수 보내 준 신화의 <헤라클레스> 숭배.
온천을 나서면 <아폴로신전. 지하세계의 神이란 <풀로토>.
지금도 독가스를 뿜고 있다는 풀로토늄 땅굴로 부른다. 그리고 야외극장.
<성 필립>이 순교_ <마티리움>_ 옛 유적지 내려다보는 산기슭에 위치.
이스라엘의 사마리아, 가이사랴, 또 예루살렘에서 활약했던 집사<필립>이, 어떻게 이곳에 왔으며, 어떻게 지내다가 순교 당하게 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히에라볼리>는 AD.50 중반_ 사도바울_ 2차전도 여행 시, <에베소>에 3년간 머물러,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 모두 <주의말씀>을 듣도록 복음 전파에 힘썼던 시기.
이웃의 <골로새>출신, 또 바울의 제자가 된 <에바브라(Epaphras)>(골1:7.4:12)의 사역으로 크리스챤 공동체가 생겨났다. 하지만, 당시, 이곳 아폴로. 헤라클레스. 풀로토 등 우상 숭배하는 헬라인들의 뿌리가 워낙 깊고, 또 보수적 유대인들의 세력 또한 강해, AD.80년경, 집사<필립>은 여기에서 사역하다가_ 4딸과 함께 순교 당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내려온다.
사도바울이 골로새서를 썼을 때, 이곳<히에라볼리>에서 반나절 거리에 있는 <골로새>와, <라오디게아>의 그리스도인들에게_ 올바른 믿음에 대해서 서한 끝머리에 한마디로 언급하고 있는 것 보아서, <필립>의 순교와 무관치 않았으리라는 것, 짐작해 본다.
<히에라볼리>_ <프리기아(Phrygia)왕국시대 이래 많은 유대인들 거주.
주로 자주색물감 취급한 상권 석권. 이곳 그리스도인들은 <에바브라>가 걱정했듯이_ <골로새>와 <라오디게아>그리스도인들과는 달리, 유대적 의식주의, 천사숭배, 동방의 신비주의에 오염되어, 이단적 성향을 띠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하여 집사<필립>의 순교를 가져 온 배경이 되었을 것. 그래서 5c경 건립 됐던 집사<필립>의 묘가 안장 됐던 <마티리움>교회당도_ 이곳에 빈번하게 일어났던 대지진과 전쟁 통에 파괴정도 심하였고, 교회당 발굴 때, 유해발굴은 못 되었지만, 유품들은 <밧모섬>의 요한수도원에 소장 되어 있다.
(이곳 나와, 산등성이 위에 올라서서 <히에라볼리>의 옛 유적지를 내려다보다가, 집사<필립>이 외치고 있는 말이 귓가에 들려오는 듯 하였다_ '후세 사람들아! 자, 나를 보아라. 우상을 믿고, 나를 핍박했던, 죽은자들아! 자- 나를 보아라!' 라고..)
<골로새서>
<라오디게아>_ <히에라볼리>에서 10Km 되는 곳. <데니즐리>로 나오다가 중간 쯤 되는 곳의 <호나즈> 푯말이 있는 방향으로 5분쯤, 밀밭 사이 올라가 나온다.
中間史에서의 시리아의 <안티오커스 II>가 자기 부인 이름 따서 도시건설.
로마 설변가(說辯家) <씨세로>(BC.106~BC.43)>가_ 한 때 총독. 정치 문화의 중심지.
지금은 거의 밭으로 변해, 한 뼘 되는 밀밭으로 무성히 자라고 있다.
옛날 polis가 있던 자리에_ 몇몇 유적과, <히에라볼리>의 온천물 끌었던, 로마시대 水路가 남아 있다. 동방의 7교회 하나였던 교회 터는 지금 분명 확인이 없다.
<히에라볼리>. <라도디게아>. <골로새>_ 모두 <리쿠스(Lycus River)>(골4:13)계곡의 화산지대에 위치해 빈번히 지진으로 완전히 파괴된 상태모양.
우리나라 경주고분처럼, 둔덕이 여기저기 펼쳐진 들판. 양떼 모는 초라한 목동 풍경. <골로새>유적 팻말 못 찾음. 사도바울이 이곳에 방문했었느냐? 확인은 없다. <에베소>에서 두란노서원 2년생활 포함해, 3년 동안 체류할 당시, 이곳에 교회를 세운 <골로새>사람_ <에바브라>를 교화시켰고, 그를 통해_ 이곳 사람들을 그리스도인으로 이끌었으며, <에바브라>의 청으로 골로새서 썼음은 알고 있는 사실.
사도바울이 빌레몬의 종이었다가, 로마로 도망했으나, 바울을 만나서_ 그의 신실한 제자가 된 <오네시모>, 이곳으로 돌려보내면서, 그를 처벌하지 말도록 요청하는 간절한 내용의 빌네몬서를 썼다는 것. 잘 아는 사실.
사도바울은_ 빌네몬서에서; '주인도 하나님 앞에서는 종이요, 종도 하나님 앞에서는 자유인'이라고 갈파. 갈라디아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셨으니,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할례자나 무할례자나, 그리스도 안에서는 하나> 주 예수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는 메시지를 남겨 놓았다. 이것이 그 후, 인류문명을 바꿔놓는 보편적 가치로서의 역동적인 자유와 평등사상의 기초를 제공하였다는 점에서 그의 신앙적 위대성이 더욱 돋보여지게 한다.
사도바울의 메시지_ <라오디게아. 골로새. 히에라볼리> 사람들에게 전달했던 <오네시모>_ 그 후, 종의 신분에서 벗어나, <에베소>의 주교까지 올라, 복음전파에 힘썼다. 이 모두, 위대한 바울의 가르침 때문이라고 말함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비록 지금, 당시의 교회 유적을 구체적으로 볼 수는 없어도 이 <골로새>탐방으로, 그분의 가르침을 되새겨 보게 되었음만으로도, 결코 이 탐방은 결코 허행이 아니었음을 마음 깊이 새겨 놓는 여행이었음을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