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량
(Photo : 기독일보) 정인량 목사

나는 노바의 ESL 교과서에 실린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운동'으로 마틴 루터 킹 목사를 처음 알게 되었다. 킹 목사는 미국 흑인들의 애환이 서린 남부지방 출신으로 애틀랜타에서 출생하고 맴피스에서 암살당하여 영원한 남부인이 되었다. 그는 침례교 목사로 여러가지 타이틀로 불리우나 '흑인을 위한 민권운동가'라 하는 것이 가장 정확할 것이다. 또한, 당시 흑인으로서는 상당한 교육을 받은 사람으로 보스턴 대학에서 신학박사와 하버드 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증조부때 부터 목사였던 가문은 그를 어려서부터 흑인 민권운동 의식이 싹트게한 모판이 되기에 충분하였다. 경찰의 인종 차별에 항의하는 부친의 모습은 어린이였던 루터 킹에게 옳지 않은 것을 보면 굴종하거나 침묵하지 말고, 정당하게 항의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었던 것이다. 이와 더불어 보스턴과 하버드의 자유주의 신학은 그로하여금 근본주의 신학에서 벗어나 인간의 영적인 구원에만 관심을 갖는 종교는 사멸하게 된다고 믿고 기독교적인 사회참여를 강조하는 진보적 리더쉽을 가지게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 흑인들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과격 흑인 이슬람 지도자인 말콤 엑스와 궤를 같이 하지 않고 처음부터 비폭력적 흑인운동을 주도 하였다. 그가 미국 흑인인권운동에 헌신하게 된 계기는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운동이었다. 로자 리 루이즈 매콜리 파크스(Rosa Lee Louise McCauley Parks)라는 흑인 여성이 1955년 12월 1일, 앨라배마 주 몽고메리에서 백인 승객에게 자리를 양보하라는 버스 운전사의 지시를 거부하였고, 결국 이것 때문에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 사건은 382일 동안 계속된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으로 이어졌고 이 운동은 인종 분리에 저항하는 큰 규모로 번져 나아갔다.

이때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여기에 참여하게 되고 결국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인권과 권익을 개선하고자 하는 미국 민권 운동의 시초가 되었던 것이다. 그는 앨라배마 버밍햄에서 열린 항의 데모 때 체포되어 일주일동안 구치소의 독방에 투옥되었고 그 해 워싱턴 대행진때 링컨 기념관 앞에서 I Have Dream ! 이란 유명한 연설을 하게된다. 이 연설은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취임 연설과 함께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명연설로 유명하다. 이 연설을 계기로 케네디 대통령은 인권법안과 차별금지 법안을 의회에 제출, 통과하였던 것이다. 뿐아니라 킹 목사는 노벨 평화상까지 수상하는 영예를 누리게 되었던 것이다.

다음은 그가 1963년 8월에 행한 연설 전문중에 발췌이다. "...나의 친구인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립니다. 고난과 좌절의 순간에도, 저는 꿈을 가지고 있다고. 이 꿈은 아메리칸 드림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꿈입니다. 저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 이 나라가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것을 자명한 진실로 받아들이고, 그 진정한 의미를 신조로 살아가게 되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언젠가는 조지아의 붉은 언덕위에 예전에 노예였던 부모의 자식과 그 노예의 주인이었던 부모의 자식들이 형제애의 식탁에 함께 둘러앉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언젠가는 불의와 억압의 열기에 신음하던 저 황폐한 미시시피주가 자유와 평등의 오아시스가 될 것이라는 꿈입니다. 나의 네 자녀들이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에 따라 평가받는 그런 나라에 살게 되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오늘 저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그는 꿈의 선동가로 살다가 그 꿈을 저지하려는 백인 우월주의 총탄에 희생되었다. 그러나, 그 아무도 그 꿈을 앗아가지는 못하고 그의 꿈은 세대와 세대를 거쳐 면면히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