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The Holiness-Pentecostal Tradition: Charismatic Movements in the Twentieth Century

written by Vinson Synan/ 이영훈, 박명수 옮김/ 서울말씀사/395면/10,000원


성결운동의 영적 아버지 Wesley의 자취를 찾아

Vinson Synan은 세계적인 오순절주의 신학자로서, 특히 성결-오순절 전통에 대한 연구로 공헌하였다. 원래 그는 The Holiness-Pentecostal Movement in the United States라는 명저를 1971년에 내었는데, 이 책의 수정, 증보판에 해당되는 것이 본서이다. 이 두 책 사이에 눈에 띄는 변화는 책제목을 운동(movement)이라는 말에서 전통(tradition)이라고 고친 점이다.

그 이유는 성결-오순절운동이 단지 스쳐 지나가는 한 운동의 차원을 넘어서, 어엿한 교회사에 있어서의 한 주요 전통으로 당당히 자리 잡았다고 하는 저자의 확신 때문이다.(7) 부제인 Charismatic Movements in the Twentieth Century는 자신들의 뿌리를 성결-오순절운동과 연관시키는 현대 주요 교단들 내의 다양한 은사주의 운동들을 가리킨다.

한 가지 유감스러운 것은 번역된 책제목의 용어가 적당치 않다는 것이다. The Holiness-Pentecostal Tradition이 원제인데, 그렇다면 '오순절-성결'의 순서가 아니라 '성결-오순절'의 순서가 맞다. 본인의 생각에 전통적으로나 신학적으로나 Holiness-Pentecostal Movement라는 용어를 '성결-오순절운동'이라고 번역해 온 관행을 따르는 것이 옳다고 본다.

Synan이 이 책을 통해 강조하고자 하는 핵심은 오순절운동이 근본적으로 John Wesley에 의해 개척되어 성결운동에 참여한 그의 후계자들에게 전수되었던 '제 2의 축복'이라는 감리교적 영성의 수정판이라는 사실이다.(9)

이런 점에서 Synan은 Wesley야 말로 근대 성결운동과 오순절운동의 영적 그리고 지성적인 아버지라고 본다. 저자는 Wesley의 성결론이 어떻게 19세기 미국 성결운동을 거쳐 현대 전통 오순절운동, 은사운동, 그리고 제 3의 물결에 이르기까지 진전되어 왔는지를 상세히 소개하였다.

성결 교리의 확산과 성결론에 대한 논쟁

Methodists가 미국 땅에 이주하게 될 때 온전한 성결의 교리도 따라서 미국 교계에 전파되었다. Thomas Webb, Francis Asbury, Richard Wright 등이 Wesley에 의해 파송을 받아 미국 감리교회(American Methodist Church)를 조직하게 되었다.

그 후 Phoebe Palmer 부인의 '더 쉬운 길'(the shorter way) 사역은 완전의 경험을 단순히 '제단 위에 모든 것을'(all on the altar) 내려놓음을 통해 얻을 수 있다고 하여, Methodists 사상에 있어서 새로운 강조점을 불러일으켰다.

1840년경에 이르러서 완전주의(perfectionism)는 미국의 사회적, 지성적 그리고 종교적 삶에 있어서 가장 중심 되는 주제가 되어갔다. 그래서 성결그룹 뿐만 아니라 1858년에는 장로교에서 William E. Boardman에 의해 [더 높은 그리스도인의 삶](The Higher Christian Life)이, 1859년에는 침례교에서 A. B. Earle에 의해 [믿음의 안식](The Rest of Faith)이 성결의 은혜를 해석할 목적으로 발행되었다.

성결운동가인 J. A. Wood, Inskip 그리고 Osborn 등이 1867년 필라델피아와 뉴저지 바인랜드(Vineland)에서 '크리스천 성결증진을 위한 전국캠프모임연합회'(The National Camp Meeting Association for the Promotion of Christian Holiness)를 개최하였는데, 이 모임은 지속적으로 크게 부흥하였다.

성결 교리의 성공적인 확산과 함께, 1880년대는 또한 성결론에 대한 논쟁의 열기가 뜨겁기도 했다. 감리교 목사인 Atticus Greene Haygood과 Vanderbilt 대학교의 신학자였던 Wilbur F. Tillett는 전통적인 성결론을 비난하였다. 이들의 주장은 순간적 성결의 교리 대신 성결의 점진성을 강조하고 하나님의 능력 대신 '너 스스로 하라'(do-it-yourself)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에 대항하여 Daniel Steele은 [그리스도인의 완전에 대한 옹호](A Defense of Christian Perfection)라는 책과 함께 논쟁의 대열에 참가하였다.

이러한 갈등에 있어서의 큰 전환점이 1894년의 남부 감리교회 총회(General Conference of the Methodist Episcopal Church, South)에서 야기되었다. 이 총회의 선언은 미국 내에 수많은 성결파 교단과 교회가 만들어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그래서 1895년에 나사렛교회(Church of Nazarene)가 창설되었고, 급진적 그룹의 대표적인 것으로는 1895년에 Benjamin Hardin Irwin에 의해 교회가 설립되어 1898년에 교단을 창설한 불세례성결교회(Fire-Baptized Holiness Church)를 들 수 있다.

Irwin은 Fletcher의 표현 중에서 '불타는 사랑의 세례', '성령과 불에 의한 세례', '불세례', '하늘로부터의 능력을 받음'과 같은 말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그는 '성령과 불에 의한 세례' 또는 단순히 '불'이라고 일컫는 성결 체험 이후의 '제 3의 체험'이 있다고 결론지었다.

Irwin은 1895년에 불세례성결연합회(Fire-Baptized Holiness Association)를 설립하였다. 1899년에 Irwin이 캐나다 사람 A. E. Robinson과 함께 발행한 [불붙는 석탄](Live Coals of Fire)이 미국 전역에 배포되기 시작했는데, 이는 성령과 불에 의한 세례가 성결 체험 다음에 일어나는 체험이라는 것을 미국 전역에 소개한 최초의 간행물이었다.

1896년에는 테네시 주에서 성결의 부흥이 일어났는데, 많은 이들이 그들이 기도할 때 방언을 말하게 되었다. 이 그룹의 지도자는 W. F. Bryant였는데, R. G. Spurling이 그와 함께 뭉치게 되었다. 이들은 1902년에 캠프크릭 성결교회(The Holiness Church at Camp Creek)를 조직하였다. 1903년에는 퀘이커교도였던 A. J. Tomlinson이 이들에 가담하게 되었는데, 이들 그룹 중 네 교회가 1906년에 모여 새로운 교단으로서 '하나님의 교회'(The Church of God)를 창설하게 되었다.

1906년 4월 18일 LA의 Azusa 거리에서 있었던 경이로운 영적 사건을 위한 준비는 돌발적인 것이 아니라 사실 1906년 이전부터 잘 갖춰지고 있었다. 이 방언 현상은 우선 1831년부터 Edward Irving의 집회에서, 그리고 런던에서 1875년에 Dwight L. Moody가 YMCA 모임에서 말씀을 전하던 때도 나타났다. 1904년의 웰쉬(Welsh) 지방의 부흥에서는 방언이 아주 일반적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방언을 성령세례 받은 단 하나의 증거라고 최초로 강조하기 시작한 사람은 Charles Fox Parham이었다. 그는 원래 감리교회의 부목사로 사역하다가 제 2차적 축복으로서의 온전한 성결의 가르침을 알게 되었다. 그러다가 그는 1890년대에 좀 더 급진적인 성결운동의 요소들인 '대속사역의 일부분으로서의 신유'와 Irwin의 제 3의 축복으로서의 '성령과 불에 의한 세례'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 후 Azusa 거리 사건의 중심 인물이 된 W. J. Seymour에게 성결이 곧 성령세례라고 주장하는 성결운동의 이론은 잘못되었다고 가르쳤던 것이다.

이 같은 제 2의 축복에 대한 문제는 상당수의 사람들이 비웨슬리안적 배경에서, 특히 침례교회로부터 이 운동으로 전향했을 때 발생했다. 성결 신학에 대해서 배운 적이 없는 이들은 제 2의 축복의 필요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였다.

그 그룹의 지도자가 된 WIlliam H. Durham은 신자 속에 있는 '죄의 잔재'라는 웨슬리의 개념을 부인하면서, 사람은 회심할 때 완전히 성화되며 그 이후의 위기나 제 2의 변화는 필요 없다고 가르쳤다. Durham의 '완성된 사역의 신학'(finished work of theology)은 마침내 1914년 하나님의 성회(Assemblies of God)를 탄생시켰다.(169)

오순절운동에 있어서 하나의 획기적인 전환점은 전국복음주의협회(National Association of Evangelicals)의 역사적 가입 초청이 1943년에 미국의 몇몇 오순절 교단들에게 주어졌다는 사실이었다. 오순절교회들이 NAE에 가입한 것은 교회 역사상 최초로 은사운동이 기존의 주요 교단들에 의해 받아들여진 것을 의미한다는 여론도 있었다.(272)

오순절주의자들이 다른 단체들 속으로 그 세력을 확장한 보다 인상적인 실례는 미국의 수많은 가톨릭교도들 사이에서 방언이 터진 일이었다. 1966년 Duquesne 대학에서 갑자기 일어난 것을 시작으로 해서 1967년까지 이 운동은 급속히 Notre Dame 대학교까지 확산되었다. 가톨릭교도들은 오순절적 성령세례를 받은 후에 자신들의 로자리오 체험, 고해성사, 마리아에 대한 헌신이 더 깊어졌다고 했다.

최근 성행하는 성령운동의 세계적 동향인 제 3의 물결은 1980년 즈음해서 일어났는데, 이들은 영적 은사들을 행하고 표적과 기사를 강조하는 정통 교단 신자들이지만, 오순절 운동이나 은사주의 운동에는 관계없는 자들이다. 이들은 회심 이후의 순간적 성령세례의 체험을 가르치지 않고, 방언을 성령의 많은 은사들 중 하나에 불과한 것으로 이해한다.(349)

성령체험과 오순절 운동에 대한 시각전환

Synan이 이 책에서 매우 심도 있게 다룬 주제 중의 하나는 바로 성령세례에 대한 이해의 차이 그리고 방언과의 관계성에 대해서였다. 20세기 초의 10년 동안에 성결의 교리를 주장하는 교파들은 일반적으로 신학에 있어서는 Arminian적이고 성결론에 있어서는 Wesleyan적이었다. 이들은 모두 성결의 순간적 체험을 성령세례로 보는 전통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런 시각에서 전국성결운동(National Holiness Movement)을 정통적이었다고 본다면, 정통 노선에서 벗어난 가장 큰 이슈는 필경 '불세례'에 대한 교리였다. 이 교리는 현대 오순절운동의 시작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연결고리 역할을 해준다. 즉 성령세례가 성결 체험의 후에 나타나는 다른 체험이라고 가르친 것은 1901년에 Charles F. Parham이 칸사스의 토페카(Topeka)에서 ‘방언이 성령세례의 유일한 성서적 증거로서 없어서는 안 될 요소’로서의 오순절운동을 시작하게 된 교리의 전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또 다른 성령세례 관으로서 케직 사경회의 영향을 크게 받은 영국식 견해에서는, 성령세례란 곧 ‘섬김을 위한 권능’을 부여받는 일이었다. 케직의 교사들은 전통적인 웨슬리안 성결론, 즉 '옛사람의 십자가의 못박힘'이라는 '제거주의적 용어'(eradicationist language)를 약화시키고, 대신 죄성의 '억제'(suppression)에 대해 언급함으로써 소위 억제주의 학파(suppressionist school)를 탄생시켰다.(182)

그런데 1890년대와 20세기 초반까지 이 케직의 용어가 미국 성결운동의 많은 부분에 스며들어서 Parham과 Irwin 같은 이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끼치게 된 것이다.(183)

현대의 은사운동과 제 3의 물결에서의 성령세례관은 또 어떠한가? 대부분의 새로운 은사주의자들이 방언의 불가피성에 대한 고전적 오순절적 견해를 거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 역시 이 일차적 증거를 강조했다. 후에 가서는 일차적 증거가 아닌, 즉 현상들이 수반되지 않는 성령세례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보편화되었다.

그리고 제 3의 물결에서는 전통 오순절주의와 은사주의 운동의 시금석인 성령세례라는 회심 이후의 위기 체험이 있다는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으며, 또한 방언은 성령충만한 신자가 경험할 수도 혹은 경험하지 못할 수도 있는 수많은 은사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본다.(333)

Synan은 오순절운동이 기존 교단들로부터 거부 받던 지난날의 입지로부터 어떻게 현재 기존 교단들 사이에서 힘있게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흥미롭게 관찰하였다. 갱신운동에 대한 가장 부정적인 평가는 20세기 초 오순절주의를 거부했던 성결교회들과 근본주의 교회들에서 일어났다. 예를 들면 C. & MA와 남침례교인들과 나사렛 교인들은 갱신운동을 즉각 거부했다. 루터교에서도 은사주의 운동이 루터교의 신학과 관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거부했다. 연합 감리교회에서도 오순절주의는 "웨슬리의 신학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진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언하는 이들은 감리교회에서 환영을 받았다. 가장 극적인 사례로서 Oral Roberts가 감리교단에 의해 받아들여진 사건은 20세기 중반 미국 사회에서 새롭게 일어나고 있는 오순절주의에 대한 수용적 분위기를 시사해준다. 그런가 하면 성결교파 사이에도 비록 기존의 부정적인 태도는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지속되고 있었으나, 새로운 포용의 요소가 이 운동의 젊은 지도자들 사이에서 발견되고 있었다.(268)

이같이 오순절 운동에 대한 새로운 포용적 관심이 일어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Synan은 다음 다섯 가지 점을 들어 설명하였다; 1) 오순절 진영의 성장률이 속도를 더해가면서 오순절운동에 대한 재평가가 전통 교단들 사이에 새로운 공감대를 유발시켰다. 2) 수많은 미국의 오순절주의자들이 눈에 띄게 중산 계급으로 성장한 사실이다. 3) 1948년 즈음하여 Oral Roberts 등의 신유운동가들의 천막 집회에는 수천 명의 군중이 몰려들었다. 로버츠는 이제 막 일어나기 시작한 텔레비전 산업을 통한 개척자적인 목회를 시작하여 전국적인 유명 부흥사가 되었다. 4)Demos Shakarian에 의해 1952년에 설립된 국제순복음실업인연합(Full Gospel Businss Men's Fellowship International)의 영향이었다. 5)새로운 오순절주의자들의 대변자로서 또한 촉매자로서 역할을 감당했던 David J. du Plessis의 영향이었다.(278)

Synan은 이 책에서 성령세례 체험의 교회사적 전통성을 힘 있게 강조하였다. 책제목에도 나타났듯이 저자가 '전통'(tradition)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또 다른 이유는 회심 이후에 성령세례를 받는다는 성결-오순절운동의 기본 전제가 교회사에서 서방교회의 견신례(Confirmation)와 그 기원이 같다는 점을 들고 있다. 사제가 견신례를 받는 사람에게 안수할 때 성령이 임한 것은 실제적일 뿐만 아니라, 성례전적인 제 2의 축복(second blessing)과 매우 유사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제 2의 축복 전통은 가톨릭과 성공회의 신비주의적 전통으로부터 웨슬리의 완전 성화의 체험을 거쳐, 성결운동 및 케직운동 그리고 근대 오순절운동의 출현으로까지 이어지는 하나의 분명한 노선이라는 것이다.(8)

그렇다면 오순절파들이 성령세례라고 부르는 것의 핵심은 최소한 초대교회의 오순절 사건 이후 8세기 동안 교회의 공식적 예전의 일부분이었다고 볼 수 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신약교회가 성령의 권능과 은사 가운데 경험했던 것들을 오순절파들이 현대 교회를 위해 재발견한 것이 된다.(9) 이처럼 오순절운동은 신자들에게 그들 자신이 성령 받았다는 사실을 보증해 줄 강력한 표현을 제공해 주었다는 점에서, 성결운동에서 제공할 수 없었던 것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Synan은 역설하였다.(145)

기독교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오순절 운동

오순절운동은 전에 [세속도시](The Secular City)를 통해 믿음의 상실에 대한 글을 썼던 하버드 대학 교수 Harvey Cox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1994년 Fire From Heaven: The Rise of Pentecostal Spirituality and the Reshaping of Religion in the Twenti-first Century라는 중요한 저서를 발간하였다. 적어도 그에게는 전 세계적으로 급성장하고 있는 오순절주의와 은사주의 운동이 주를 이루어 기독교가 다시 생명력을 회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고 Synan은 평했다.(270)

Synan은 20세기 수십 년 동안 교회 지도자들이 오순절주의가 기독교의 세 가지 유형의 하나가 되었음을 인정해 왔다고 역설했다. 특히 남인도의 Leslie Newbegin 감독의 예를 드는데, Newbegin은 기독교의 세 가지 주된 유형을 관찰하였고, 각각 그리스도의 몸을 구성하는 데 있어 확실한 공헌을 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에 의하면, 하나는 가톨릭 전통으로서, 이는 연속성, 정통성, 그리고 교회 생활에 있어 성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편 개신교 전통은 성경 중심성과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리고 오순절주의자들은 이와 같은 처음의 두 가지 역사적인 신앙의 표현들에다가 성령의 은사를 통해 교회 내에서 성령의 현재적인 활동에 대한 강조를 덧붙였다. 즉 교회는 현대 세계에서 강력한 세력이 되기 위해 이 세 가지 강조점을 모두 필요로 했다는 것이다.(356-357)

서평을 마치면서, 본인은 Synan이 인용한 위와 같은 Newbegin의 견해에 동의하면서 한 가지 더 부언하기 원한다.

가톨릭과 개신교와 오순절주의와의 만남이 풍성한 교회의 생명을 이룸에 상호 기여했다고 할 것 같으면, 이 세 전통이 앞으로 헬라 정교회(Greek Orthodox Church)와의 만남을 친숙히 한다면, 정교회는 보다 더 성숙한 교회상, 즉 theosis의 활성화를 이루는 교회와 성도들의 영성을 이룸에 반드시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본다.

네 물줄기가 모여 하나의 큰 강을 이루어 하나님의 땅을 비옥케 하기 위하여!

글/ 배본철(성결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