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9월, 한국에서는 '서울기독교-영화축제'가 열린다. 기독교적 가치를 담은 단편영화 경선으로 새로운 기독교 영화 및 감독을 발굴하겠다는 취지의 이 행사에서는, 기독교영화 발전을 위해 가능성있는 장편 영화에 기독교영화축제기금 2천만원을 사전 제작지원하기도 한다.

올해로 2회를 맞는 이같은 '기독교영화축제'의 개최는 한국 기독교 문화 혹은 기독교인들의 문화의식이 성큼 발전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예술과 테크놀로지의 결합인 영화는 엄청난 자본잠식력을 가지고 있어 선뜻 투자하기가 어려운 분야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한국 기독교계에서도 불과 2-3년 전만해도 영화를 위해 기독교내의 자본을 모은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 돈이 있으면 해외선교에 더 돈을 써야 하지 않겠냐는 암묵적인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씨씨엠이 활성화된 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점을 상기해본다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지원은 고사하고 기타와 드럼을 '신성한' 예배당에 들여놓는 것 자체를 '불경건'하게 생각했던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러나 한국의 기독교문화는 몇 년 사이 놀랍게 성장해서, 씨씨엠 음반 시장은 일반 가수들조차도 이따금씩 노려대는 꽤 쓸만한 시장으로 성장했다.

그런데, 미주 한인기독교 사회, 그 중에서도 세계의 중심이라는 프라이드를 가지고 있는 뉴욕의 한인기독교 사회는 어떠한가. 씨씨엠이 가장 먼저 시작된 나라 미국에 살며, 세속문화의 중심인 헐리우드에서조차 기독영화를 만들어 엄청난 선교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을 가장 먼저 보면서도, 우리의 문화적 감각은 우리 조국에 비해 한참이나 저 밑에 있다. 양질의 출판을 해낼 수 있는 기독교 출판사 하나, 기독음반 제작사 하나, 기독용품 제작사 하나 변변히 없는 오늘의 현실은 참으로 씁쓸한 것이다. 누가 책이나 음반을 내려고 하면 으례 한국에 가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다. 초청장 하나 만드는 것도 시간이 있으면 한국으로 보낸다. 십자가 하나도 한국에서 수입해온다.

물론 한국과 미국의 물가차이 때문에 그런 것이기도 하겠지만, 그만큼 이 뉴욕사회에 기독교 문화와 그것을 둘러싼 경제활동이 활성화되어 있지 않다는 얘기다. 그리고 그것은 비단 기독문화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기독교를 중심으로 한 한인 문화계 전반에 걸친 문제점이다.

이는 "왜 우리는 이것밖에 안되느냐?"고 자탄하거나 누군가를 질책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조국을 떠나와 새로운 사회에 정착하기 위해 밤낮으로 일해 한인타운을 만들고 한인사회를 이만큼 성장시켜놓은 1세들, 또 교회 중심의 사회를 만들고 400만 뉴욕,뉴저지 한인인구를 위해 600여개의 교회를 세운 기독교 지도자들은 최선을 다했다. 그들의 노력으로 먹고사는 기본적인 생활(육)의 문제, 하나님의 말씀위에 서는 기본적인 교회(영)의 토대가 세워졌으니 이제 그 뒤를 잇는 이들은 오늘날의 코드인 문화(혼)의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다.

얼마전 '문화선교사'라는 이색적인 이름으로 한국에서 파송된 이영식 선교사는 현재 미주 한인교회의 문화발전을 위해 열심히 공연을 하고 있다. 뉴욕 교계에서도 5월 들어 '교회음악세미나'니, '청소년 댄스경연대회'니, '워십 투게더'니하는, 그저 관람하는 음악회 차원을 떠나 문화를 함께 향유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문화 관련 행사들이 많았다. 미주땅에 문화 선교를 일으키려는 성령의 바람인 것만 같다.

미주 문화사역의 땅. 아직 유명한 씨씨엠 가수 하나 없는 척박한 땅이지만, 훗날 수많은 영혼들의 마음의 문을 열어 수많은 생명을 살리게 될 이 땅. 이 땅을 차지할 용기있는 개척자들이 필요하다. 당장 영광의 열매를 따지 못한다 하더라도 눈물로 씨를 뿌리는 이들, 썩어지는 한 알의 밀알이 되고자 하는 이들, 모든 달고 시원한 열매는 그런 이들의 희생을 거름으로 해 성장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