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으로

1973년 7월, 아버지와 나는 청교도 정신과 개척 정신이 이룩한 세계 최고의 부자나라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누님 한 분은 결혼으로, 여동생 둘은 학업차, 어머니는 그 여동생들을 돌보러 이미 미국으로 건너가신 후였다. 한국에 남아있던 아버지와 나는 미국과 한국 두 살림을 꾸리는 것을 버거워하다가 심사숙고 끝에 미국으로 건너가 그 곳 식구들과 살림을 합치기로 결정하고 미국 영주권을 얻었다.

비즈니스와 신앙, 내게는 하나

광활한 대륙, 기회의 나라에 도착한 나는 남다른 감회를 갖고 이 세계 최고의 나라에서 나의 이상과 야심의 날개를 활짝 펼쳐보리라고 다짐했으나, 미국의 현실은 내가 그리던 것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뉴욕 맨해턴 뒷골목은 지저분했고, 알코올 중독자, 마약 중독자, 각종 범죄가 우글거렸다. 나는 일단 뉴욕의 하층 노동판에라도 끼어들어 밥벌이라도 해내야 했기에 같은 아파트에 사는 어느 한국 사람의 소개로 택시 운전을 하게 됐다. 하나님의 돌보심 때문이었는지 뉴욕의 길을 익히는 기간동안 만난 손님들은 다들 길을 모르는 나를 이해주었고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간증했다. 그들이 유명인이든, 소시민이든 가리지 않았다. 택시 운전 중 만난 어떤 유대인은 “너는 하나님이 도와주셔서 겨우 택시 운전사가 됐느냐?”며 “우리 하나님을 당신 같은 이방인들이 함부로 얘기하지 말라”고 상처를 주기도 했지만, 8개월간의 택시 운전수 생활을 통해 나는 어떤 상황도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됐다.
다음으로 얻게 된 직업은 아버지께서 일하시던 이시즈카 마쓰모토 공인 회계사 사무소의 보조 회계사였다. 미숙한 영어에 회계, 경리 업무에는 전혀 경험이 없었지만, 야간에 대학에서 회계학 공부를 한다는 조건부로 취직이 된 것이다. 나는 회계사 사무실을 출입하는 많은 고객들에게 성실하게 업무를 처리해주면서 한편으론 하나님에 대한 신앙 간증 전도를 하기 시작했다. 손님들은 나의 이런 간증 전도에 대부분 긍정적으로 반응해주었다. 그러나, 이시즈카씨의 동업자로 들어온 포머란츠라는 유대인 공인 회계사는 “비즈니스와 신앙을 구별해달라”며 내게 전도 금지 명령을 내렸다.

You are now street Preacher!

마음이 답답해진 나는 퇴근 후 상가가 줄지어 있는 42번가 그랜드 센트럴 역 근처를 배회했다. 크리스마스를 얼마남지 않은 탓인지 사람들은 매우 바빠보였다. 무심히 사람들을 쳐다보다 그 가운데 실의에 빠진 채 앉아있는 한 흑인 거지를 발견했다. 동냥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혼자 쭈그리고 앉아 있던 그는 훗날 나와 절친한 친구사이가 된 어네스트라는 이름의 거지였다. 원래는 작가지망생이었던 그는 과로로 병이 들어 일을 못하는 사이 렌트비를 못내 집에서 쫓겨난 후 거지가 된 것이었다. 그에게 동정심이 인 나는 매일 매일 그를 만나 하나님의 사랑을 전했다. 그의 마음이 조금씩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문제는 매일 그를 만날 때마다 1불씩, 2불씩 주는 것을 알고 내게 다가오는 거지들이 하나씩, 둘씩 늘어나는 것이었다. 회계사 사무실로부터 받는 월급을 몽땅 내놓고, 그동안 모아 은행에 저축해뒀던 3천불까지 다 쓴 후에도 구제사업은 끝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사무실 복도의 엘리베이터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이에게 간증전도를 했다가 회사에 그 사실이 알려져 파면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냥 지나가는 사람인 줄 알았던 그가 부사장 포머란츠씨의 고객이었던 것이다.
회사에서 파면되고 착잡한 심정으로 귀가한 나는 밤새 뒤척이다 밤늦게 잠이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You are now street Preacher(너는 이제부터 거리의 전도사다!)” 하나님의 목소리였다. 더 생각할 것도 없었다. 나는 이후 맨해턴 14가부터 72번까지 매일 사람들을 만나 간증 전도를 시작했다. 전도하다가 거리에서 거지들을 만나면, 그들은 내가 파면된 것을 알고 한결같이 나를 위해 기도한다는 말을 전해왔다. 그들에게 건네주는 돈도 일제히 안 받겠다고 말했다. 눈물이 핑 돌았다.
이같이 시작된 거리의 전도사 생활은 3개월간 이어졌다. 어떤 날은 하루에 70명을 만나기도 했다. 전도에는 많은 성과가 있었으나 재정은 바닥나 조금씩 빚이 늘어나고 있었다. 미래가 암담한 날들이었다. 그러나, 그동안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보이지 않는 손길로 나를 위한 특별한 선물을 준비하고 계실 줄이야..
-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