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정명 목사. 사람들은 그를 끈질긴 집념의 목회자라고 부른다. 벌써 십년이 되어가는 주일 마라톤 반대 활동 때문이다. 그는 주일 마라톤 요일 변경에 관해 아래와 같이 말한다.

"마라톤은 좋지요. 엘에이의 모든 커뮤니티가 참여하는 축제이니 말입니다. 오히려 지원해 주고 한인 크리스천들도 적극 참여해서 화합하면 좋지요. 그래서 다른 인종 커뮤니티를 이해하게 되고 하나될 수 있다면 더 좋은 것이 있겠어요? 그런데 그게 왜 하필 주일이어야만 하느냐가 문제입니다"

그의 요지는 간단했다. 4.29 폭동이 12주년을 맞은 현재 인종 간의 화합과 이해는 엘에이의 중요한 현안이다. 그리고 마라톤은 엘에이가 인종과 문화를 넘어 하나될 수 있는 축제이다. 그러나 그 마라톤은 주일에 개최되기에 문제라는 것이다.

"미국은 기독교의 나라이고 법에도 예배하고자 하는 사람은 예배를 드릴 권리가 명시돼 있어요. 그런데 마라톤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기관에서 개최하는 행사입니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행사로 인해서 예배드릴 권리가 침해 받는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날 예배에 참석하지 못하는 성도들과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목회자들의 심정적 고통과 답답함을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다른 요일이나 공휴일에 개최한다면 아마 나부터라도 적극적으로 나가서 뛸 겁니다"

현재 마라톤 변경을 위해 송 목사는 여러가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엘에이 메트로에 참여해서 시당국에 한인교회들의 고충을 전달하고 공식적인 변경 요청을 했다. 그리고 한인교회들만이 아니라 흑인교회, 라티노 교회, 천주교회와도 연대해서 요일 변경을 위한 청원서를 제출할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요즘 엘에이교회협의회에 분주히 다니면서 타 커뮤니티와 연대해서 마라톤 요일을 변경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그는 오는 5월 19일 윌셔 종교지도자 모임에 나가서 마라톤 문제에 관해 브리핑 하고 지지를 요청할 계획도 갖고 있다.

"하루 아침에 되진 않겠죠. 끊임없이 여론화하고 모든 크리스천들이 이 문제에 나서 준다면 결국 이 주일 마라톤 문제는 결국 해결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송정명 목사는 마라톤 요일 변경으로 인한 집념에만 불타는 목회자는 아니다. 한편으로 소탈하고 따뜻한 아버지 같은 목사다. 그는 자신의 목회 철학을 간단히 요약한다.

"2세가 이땅의 주인이 되는 목회"

정체성 없이 표류하는 이땅의 한인 1.5, 2세들이 신앙을 기초로 해서 한인의 당당한 자부심을 갖고 미 주류 사회로 진출하게 하는 목회. 그것이 그가 주창하는 목회 철학이다. 2세 문제는 모든 한인 목회자들이 동감하는 현안이다. 그는 다음과 같은 대안을 내어 놓는다.

"1.5세가 1세와 2세의 다리가 되어 2세들에게 한인의 자부심을 심어 주고 세계선교에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목회 방식과 단기선교 등의 실질적 프로그램이 필요하겠죠. 그리고 2세들이 타 민족 커뮤니티와 유대관계를 맺고 선교를 추진할 수 있는 포용력을 갖게 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을 위해서는 1세 목회자들의 관심이 필요합니다. 2세들의 요구는 간단합니다. '우리에게는 멘토가 필요합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1세 목회자들이 2세 사역에 깊은 관심을 갖고 신앙적 멘토가 되어서 그들을 양육하고 지원해 주어야 합니다. 2세들의 신앙적 멘토가 되지 못했던 우리부터 부끄러움을 갖고 단순히 개교회 차원을 탈피해 2세 사역을 구체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해야 할 것입니다"

그는 원래 한국에서 방송국 성우였다. 그의 목소리만 들어 봐도 그가 얼마나 성우로서 적격인지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는 그의 목소리를 하나님을 위해 쓰기로 결단하게 됐다. 아버지의 죽음을 겪으면서 그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게 돼 목사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성결대를 졸업하고 76년에 이민와서 동양선교교회 수석부목사로 있던 중 미주평안교회로 부임한 그는 온갖 어려움이 있었지만 기도하는 가운데 평안교회 성전이 개축되었을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고 회고한다.

마라톤 요일 변경에 불타는 집념의 소유자에서 2세들을 위해 고민하는 아버지, 그리고 소탈한 웃음을 지닌 인생의 선배까지 다양한 모습을 가진 송정명 목사. 그의 다양한 모습 속에서 인터뷰는 끝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