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은 짧은 기독교 역사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활발한 선교활동을 펼치고 있는 나라로, 해외에 흩어져 사는 한인들은 고국보다 더 뜨거운 열정으로 선교에 앞장서고 있다.
교회는 이민사회서 가장 중요한 한인커뮤니티다. 한국에서 하와이 이민을 처음 모집할 때 인천에 있는 교회가 중심이 되었으며, 1965년 이후 새로운 이민법에 따라 미국으로 이주한 이들도 교회를 중요한 사회활동 공간으로 생각했다.
교회를 통해 고국의 소식을 듣고, 교회에서 교제하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공항에 내린 첫 순간부터 교회의 안내를 받아 집을 구하고, 직장을 구하고, 자동차를 등록하고, 자녀들을 취학 시키는 등 생활 전반적인 것까지 친형제보다 더 친절히 교회는 도움을 줬다.
교회와 사회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존재다. 교회의 사회정치 참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던 부정적으로 바라보던 지금까지 교회가 부패했을 때 사회도 부패했었다. 교회가 건강할 때 사회도 건강했다.
본지는 이처럼 중요한 기능을 감당하고 있는 뉴욕지역 40개 교회의 담임 목회자를 만나, 북한 선교·비인가 신학교 문제·청소년 사역·교회의 사회적 책임·뉴욕교계의 부흥 등 다양한 이슈들에 대한 목회자들의 의견을 들어 보았다.
세 번째로 한민교회(독립교단) 김정국 목사를 만났다.
-올해로 평양 100주년을 맞았다. 진정한 부흥이란 무엇일까?
부흥은 한자를 그대로 풀이한다면 다시 일으킨다는 뜻이다. 다시라는 의미는 과거부터 해오던 것이 침체되거나 잘못된 것을 일으켜 원상태로 할 뿐 아니라 더 발전적으로 한다는 것이다.
부흥이라고 하면 눈에 보이는 가시적으로 교인수가 증가하는 양적인 면을 많이 생각하게 되는데, 교인들의 영적인 성장을 보는 질적 증가도 중요하다. 그러나 양적 증가 없이 질적 성장은 힘들기에 상관관계가 있다. 가장 좋은 성경속의 모델은 안디옥교회다.
성경에 비춰봤을때 핍박 받을 때 교회는 부흥됐다. 사도행전 2장 47절을 보면 칭송받으니 구원받은 이들을 더하게 하셨다. 우리는 칭송받는 일만 하면 된다. 곧 교회가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칭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과거 일제 강점기 기독교인은 1.5%에 불과했지만, 독립운동당시 33인중 16명이 기독교인이었다. 지금은 교회를 존경스럽게 대하지도 않는다. 그만큼 교회가 힘이 없어져 전도도 잘 안 된다. 현재 한국은 카톨릭은 증가하고 개신교 신자들은 떨어지고 있는데, 이것은 심각한 문제다.
동시에 교회는 핍박의 대상도 되어야 한다. 사도행전을 보면 1차·2차·3차 박해가 나오는데, 박해를 통해 부흥이 일어났다.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가르치는 게 쉽지 않았지만 날마다 고난을 받고 핍박을 받았지만, 내적으로 결속되고 기도와 말씀에 힘쓰다 보니까 결국 부흥됐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가 칭송과 핍박을 받을 때 진정한 부흥이 온다. 역사적으로도 그렇다. 세계 기독교 2천년 역사를 보더라도 신앙의 자유가 보장됐을 때 교회가 타락하고 세속화 돼 부흥이 안됐지만, 박해를 받을 때 교회가 생동감을 가지고 부흥됐다.
또한 경건생활과 전도생활을 통해 부흥이 일어난다. 경건생활을 통해 칭송과 칭찬을 받아야 하고, 전도를 통해 핍박을 받아야 한다. 가만히 있으면 핍박은 안 오지만, 예수를 믿으라고 하면 핍박을 받는다. 바울 사도도 전도를 했기에 엄청난 고난을 당했다.
수평이동을 통한 교인수 증가는 부흥이 아니다. 전도는 말씀을 전하는 것인데, 다른 교회에 다니는 친한 사람들을 데려오는 것은 전도가 아니라 인도다. 인도는 안내 역할뿐이다.
경건생활은 소극적으로는 비난 대상이 아닌 상태에서 적극적으로 칭송의 대상이 되도록 한다. 그러면 전도의 문이 열린다.
뉴욕교계에 바라는 부흥이 있다면?
내가 뉴욕서 오랫동안 목회를 했는데, 우선 나 자신부터 변화가 와야 된다고 본다. 평신도 못지않게 지도자들도 문제가 많다. 신이 목사가 된 것이 아니라, 인간이 목사가 된 것이니 철저히 회개해야 한다.
교회 정화 없이 진정한 부흥은 없다. 평양대부흥도 회개 운동을 통해 일어난 것이 아닌가? 사람이라면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다. 그때 회개해야 하는데, 회개하지 않으면 부흥은 없다.
교회의 일부 지도자들이 정치하는 것을 보며 걱정이 된다. 이런 것을 고쳐야 하는데, 의지가 약하다.
한국의 경우, 교파를 초월해 총회장 선거를 하면 많은 돈을 쓴다. 이것이 대표적인 타락성이다. 심지어 총회장 되는데 30억을 쓰기도 한다. 일제 치하나 공산치아에서는 핍박을 받으니 총회장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명예나 감투 때문에 수십억을 써 가면서도 하려고 한다. 이는 영적으로 죽은 것으로, 아주 심각하다. 총회를 참석해보면 투표할 때는 100% 참석해 숨죽이고 결과를 본다. 그런데 중요한 교육이나 선교에 대한 부분들에 대해 토의할 때는 많이 빠져나간다. 오로지 관심이 투표뿐이다.
-최근 뉴욕 내 비인가 신학교에 대한 문제가 지적된 바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뉴욕의 한인 신학교 운영방침이 일률적이지 않다. 운영하는 구성원들에 따라서 비교적 괜찮은 신학교도 있지만, 커리큘럼이나 수업일수, 과목을 비교하면 한국의 신학교와는 부족한 형편이다.
육신의 생명을 책임지고 있는 의사도 4년 동안 공부를 하고 레지던트 거쳐 전문의가 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 다른 차원의 생명인 영을 다루고 책임을 지는 자가 성직자인데, 의사보다도 훨씬 철저하게 길러야 한다. 그렇기에 현재의 신학교 교육은 문제가 있다.
또 한 가지는 한인인구와 현재 세워진 교회 수를 볼 때 신학교의 수가 너무 많다는 점이다. 교역자가 필요해 신학교가 세워지고 학생이 수급되는 게 아니라, 교단의 요구에 의해 세워진 신학교가 적지 않다. 신학교가 많아지면 자기학교 신학생들을 많게하기위해 억지로 끌어들이게 돼 사명감 없는 이들이 신학생들이 되는 경우가 생긴다. 그들이 평신도 지도자로 남으면 괜찮은데, 교역자가 되면 문제가 된다.
교회가 필요해 목사가 수급되는 게 아니라 목사의 필요에 의해 교회가 만들어지고 있다. 그러다보니 교회 자립을 위해, 전도를 통한 교회 성장이 아니라 다른 교회 교인들을 인도하며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이에 대한 문제는 목회자가 바뀌지 않는 한 해결하기 힘들다. 목회자는 교계 전체를 보는 안목이 필요하다. 뉴욕에 교인이 어느 정도이며, 교회가 어느정도 필요한지에 대해 교역자는 얼마큼 있으면 돼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야 한다.
비관적으로 보면, 교단확장이나 학장·교수를 하고 싶다는 명예욕이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으면 해결의 실마리는 풀리지 않는다. 특히 영리를 목적으로 불법적으로 학교를 운영해 목사 안수를 남발하는 곳은 빨리 퇴출시켜야 한다. 자격 없는 학생들을 불러 숫자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숫자가 적더라도 신학을 하겠다는 사명감을 가진 이들을 위해 투자해서 커리큘럼을 짜고 강사를 세우는 게 필요하다.
-교회내 청소년들이 줄어들고 있다. 이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대응 방안은?
세속문화가 기독교 문화보다 더 영향력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문제는 청소년 뿐 아니라 어른들도 마찬가지인데, 특히 청소년들의 귀와 눈을 세속문화가 다 빼앗아 가버렸다. 세속문화가 발달하지 않았던 50년대 60년대는 어떤 면에서는 교회가 앞섰다. 교회는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찬양을 만들었으며, 아이들은 교회서 재미있는 놀이도 하고, 성극도 했다. 아이들이 학교나 집에서 볼 수 없었던 것을 교회에서 보니까 많이 왔었다. 그런데 지금은 반대다. 자기 집이 훨씬 편하다. 가만히 앉아서 텔레비전을 보고 게임도 하고 그러다보니 교회에 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세속문화에 대항하는 기독교 문화를 잘 개발해야 한다. 이것에 대해 뜻있는 이들이나 대형 교회들이 투자를 해 기독교 문화를 좀 더 발전시켜야 한다. 또한 세속적인 것과 교회가 너무 멀리 있기에 중간다리 역할이 필요하다. 한민교회는 새롭게 건물을 짓고 있는데 이벤트나 프로그램들을 만들어 믿지 않은 이들이 쉽게 교회 문을 드나들 수 있도록 만들 방침이다.
또 교회 지도자들이 교회의 본질적 문제에 대해 잘 알려줘야 한다. 자녀들에게 '건강해라, 돈 잘 벌어라, 축복받아라' 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천국과 지옥에 대해 알려줘야 한다. 현세적인 부분만 강조한다면 교회를 다닐 필요가 없다. 옛날 부흥사들은 천국과 지옥에 대해 강조했는데, 지금 그에 대해 말하면 뒤떨어지는 설교를 한다고 한다.
연령에 맞는 기독교육·윤리교육은 그들의 신앙을 지켜줄 것이다. 수준에 맞게 창조론에서 종말론까지, 교리교육을 해야 한다. 성경에 근거한 강력한 윤리교육을 강조해야 한다. 동시에 그들의 감성에 호소하는 영감 있는 메시지를 전달해 그들의 영을 완전히 깨부숴야 한다. 아이들을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어린 영혼들을 도와 달라' 하는데, 아이들이 나이만 어리지 영까지 어린 것은 아니다.
청소년들이 구원의 확신을 갖고 있으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타지 대학에 가도 스스로 교회를 찾아간다. 아이들이 기독교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고, 세상에 재미난 것이 많은데 왜 따분하게 교회에 앉아있겠는가?
내적으로 신앙교육을 철저히 시켜야 한다. 다른 방법이 없다.
교회는 이민사회서 가장 중요한 한인커뮤니티다. 한국에서 하와이 이민을 처음 모집할 때 인천에 있는 교회가 중심이 되었으며, 1965년 이후 새로운 이민법에 따라 미국으로 이주한 이들도 교회를 중요한 사회활동 공간으로 생각했다.
교회를 통해 고국의 소식을 듣고, 교회에서 교제하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공항에 내린 첫 순간부터 교회의 안내를 받아 집을 구하고, 직장을 구하고, 자동차를 등록하고, 자녀들을 취학 시키는 등 생활 전반적인 것까지 친형제보다 더 친절히 교회는 도움을 줬다.
교회와 사회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존재다. 교회의 사회정치 참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던 부정적으로 바라보던 지금까지 교회가 부패했을 때 사회도 부패했었다. 교회가 건강할 때 사회도 건강했다.
본지는 이처럼 중요한 기능을 감당하고 있는 뉴욕지역 40개 교회의 담임 목회자를 만나, 북한 선교·비인가 신학교 문제·청소년 사역·교회의 사회적 책임·뉴욕교계의 부흥 등 다양한 이슈들에 대한 목회자들의 의견을 들어 보았다.
세 번째로 한민교회(독립교단) 김정국 목사를 만났다.
-올해로 평양 100주년을 맞았다. 진정한 부흥이란 무엇일까?
부흥은 한자를 그대로 풀이한다면 다시 일으킨다는 뜻이다. 다시라는 의미는 과거부터 해오던 것이 침체되거나 잘못된 것을 일으켜 원상태로 할 뿐 아니라 더 발전적으로 한다는 것이다.
부흥이라고 하면 눈에 보이는 가시적으로 교인수가 증가하는 양적인 면을 많이 생각하게 되는데, 교인들의 영적인 성장을 보는 질적 증가도 중요하다. 그러나 양적 증가 없이 질적 성장은 힘들기에 상관관계가 있다. 가장 좋은 성경속의 모델은 안디옥교회다.
성경에 비춰봤을때 핍박 받을 때 교회는 부흥됐다. 사도행전 2장 47절을 보면 칭송받으니 구원받은 이들을 더하게 하셨다. 우리는 칭송받는 일만 하면 된다. 곧 교회가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칭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과거 일제 강점기 기독교인은 1.5%에 불과했지만, 독립운동당시 33인중 16명이 기독교인이었다. 지금은 교회를 존경스럽게 대하지도 않는다. 그만큼 교회가 힘이 없어져 전도도 잘 안 된다. 현재 한국은 카톨릭은 증가하고 개신교 신자들은 떨어지고 있는데, 이것은 심각한 문제다.
동시에 교회는 핍박의 대상도 되어야 한다. 사도행전을 보면 1차·2차·3차 박해가 나오는데, 박해를 통해 부흥이 일어났다.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가르치는 게 쉽지 않았지만 날마다 고난을 받고 핍박을 받았지만, 내적으로 결속되고 기도와 말씀에 힘쓰다 보니까 결국 부흥됐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가 칭송과 핍박을 받을 때 진정한 부흥이 온다. 역사적으로도 그렇다. 세계 기독교 2천년 역사를 보더라도 신앙의 자유가 보장됐을 때 교회가 타락하고 세속화 돼 부흥이 안됐지만, 박해를 받을 때 교회가 생동감을 가지고 부흥됐다.
또한 경건생활과 전도생활을 통해 부흥이 일어난다. 경건생활을 통해 칭송과 칭찬을 받아야 하고, 전도를 통해 핍박을 받아야 한다. 가만히 있으면 핍박은 안 오지만, 예수를 믿으라고 하면 핍박을 받는다. 바울 사도도 전도를 했기에 엄청난 고난을 당했다.
수평이동을 통한 교인수 증가는 부흥이 아니다. 전도는 말씀을 전하는 것인데, 다른 교회에 다니는 친한 사람들을 데려오는 것은 전도가 아니라 인도다. 인도는 안내 역할뿐이다.
경건생활은 소극적으로는 비난 대상이 아닌 상태에서 적극적으로 칭송의 대상이 되도록 한다. 그러면 전도의 문이 열린다.
뉴욕교계에 바라는 부흥이 있다면?
내가 뉴욕서 오랫동안 목회를 했는데, 우선 나 자신부터 변화가 와야 된다고 본다. 평신도 못지않게 지도자들도 문제가 많다. 신이 목사가 된 것이 아니라, 인간이 목사가 된 것이니 철저히 회개해야 한다.
교회 정화 없이 진정한 부흥은 없다. 평양대부흥도 회개 운동을 통해 일어난 것이 아닌가? 사람이라면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다. 그때 회개해야 하는데, 회개하지 않으면 부흥은 없다.
교회의 일부 지도자들이 정치하는 것을 보며 걱정이 된다. 이런 것을 고쳐야 하는데, 의지가 약하다.
한국의 경우, 교파를 초월해 총회장 선거를 하면 많은 돈을 쓴다. 이것이 대표적인 타락성이다. 심지어 총회장 되는데 30억을 쓰기도 한다. 일제 치하나 공산치아에서는 핍박을 받으니 총회장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명예나 감투 때문에 수십억을 써 가면서도 하려고 한다. 이는 영적으로 죽은 것으로, 아주 심각하다. 총회를 참석해보면 투표할 때는 100% 참석해 숨죽이고 결과를 본다. 그런데 중요한 교육이나 선교에 대한 부분들에 대해 토의할 때는 많이 빠져나간다. 오로지 관심이 투표뿐이다.
-최근 뉴욕 내 비인가 신학교에 대한 문제가 지적된 바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뉴욕의 한인 신학교 운영방침이 일률적이지 않다. 운영하는 구성원들에 따라서 비교적 괜찮은 신학교도 있지만, 커리큘럼이나 수업일수, 과목을 비교하면 한국의 신학교와는 부족한 형편이다.
육신의 생명을 책임지고 있는 의사도 4년 동안 공부를 하고 레지던트 거쳐 전문의가 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 다른 차원의 생명인 영을 다루고 책임을 지는 자가 성직자인데, 의사보다도 훨씬 철저하게 길러야 한다. 그렇기에 현재의 신학교 교육은 문제가 있다.
또 한 가지는 한인인구와 현재 세워진 교회 수를 볼 때 신학교의 수가 너무 많다는 점이다. 교역자가 필요해 신학교가 세워지고 학생이 수급되는 게 아니라, 교단의 요구에 의해 세워진 신학교가 적지 않다. 신학교가 많아지면 자기학교 신학생들을 많게하기위해 억지로 끌어들이게 돼 사명감 없는 이들이 신학생들이 되는 경우가 생긴다. 그들이 평신도 지도자로 남으면 괜찮은데, 교역자가 되면 문제가 된다.
교회가 필요해 목사가 수급되는 게 아니라 목사의 필요에 의해 교회가 만들어지고 있다. 그러다보니 교회 자립을 위해, 전도를 통한 교회 성장이 아니라 다른 교회 교인들을 인도하며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이에 대한 문제는 목회자가 바뀌지 않는 한 해결하기 힘들다. 목회자는 교계 전체를 보는 안목이 필요하다. 뉴욕에 교인이 어느 정도이며, 교회가 어느정도 필요한지에 대해 교역자는 얼마큼 있으면 돼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야 한다.
비관적으로 보면, 교단확장이나 학장·교수를 하고 싶다는 명예욕이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으면 해결의 실마리는 풀리지 않는다. 특히 영리를 목적으로 불법적으로 학교를 운영해 목사 안수를 남발하는 곳은 빨리 퇴출시켜야 한다. 자격 없는 학생들을 불러 숫자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숫자가 적더라도 신학을 하겠다는 사명감을 가진 이들을 위해 투자해서 커리큘럼을 짜고 강사를 세우는 게 필요하다.
-교회내 청소년들이 줄어들고 있다. 이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대응 방안은?
세속문화가 기독교 문화보다 더 영향력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문제는 청소년 뿐 아니라 어른들도 마찬가지인데, 특히 청소년들의 귀와 눈을 세속문화가 다 빼앗아 가버렸다. 세속문화가 발달하지 않았던 50년대 60년대는 어떤 면에서는 교회가 앞섰다. 교회는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찬양을 만들었으며, 아이들은 교회서 재미있는 놀이도 하고, 성극도 했다. 아이들이 학교나 집에서 볼 수 없었던 것을 교회에서 보니까 많이 왔었다. 그런데 지금은 반대다. 자기 집이 훨씬 편하다. 가만히 앉아서 텔레비전을 보고 게임도 하고 그러다보니 교회에 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세속문화에 대항하는 기독교 문화를 잘 개발해야 한다. 이것에 대해 뜻있는 이들이나 대형 교회들이 투자를 해 기독교 문화를 좀 더 발전시켜야 한다. 또한 세속적인 것과 교회가 너무 멀리 있기에 중간다리 역할이 필요하다. 한민교회는 새롭게 건물을 짓고 있는데 이벤트나 프로그램들을 만들어 믿지 않은 이들이 쉽게 교회 문을 드나들 수 있도록 만들 방침이다.
또 교회 지도자들이 교회의 본질적 문제에 대해 잘 알려줘야 한다. 자녀들에게 '건강해라, 돈 잘 벌어라, 축복받아라' 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천국과 지옥에 대해 알려줘야 한다. 현세적인 부분만 강조한다면 교회를 다닐 필요가 없다. 옛날 부흥사들은 천국과 지옥에 대해 강조했는데, 지금 그에 대해 말하면 뒤떨어지는 설교를 한다고 한다.
연령에 맞는 기독교육·윤리교육은 그들의 신앙을 지켜줄 것이다. 수준에 맞게 창조론에서 종말론까지, 교리교육을 해야 한다. 성경에 근거한 강력한 윤리교육을 강조해야 한다. 동시에 그들의 감성에 호소하는 영감 있는 메시지를 전달해 그들의 영을 완전히 깨부숴야 한다. 아이들을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어린 영혼들을 도와 달라' 하는데, 아이들이 나이만 어리지 영까지 어린 것은 아니다.
청소년들이 구원의 확신을 갖고 있으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타지 대학에 가도 스스로 교회를 찾아간다. 아이들이 기독교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고, 세상에 재미난 것이 많은데 왜 따분하게 교회에 앉아있겠는가?
내적으로 신앙교육을 철저히 시켜야 한다. 다른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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