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에서 음악은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는가? 우리에게 감동과 기쁨, 때론 눈물과 슬픔을 선사하는 음악의 시작에 관해 성경에서는 창세기4장을 통해 말씀하고 있다. 아벨을 쳐죽인 가인은 에녹을 낳고 에녹은 이랏을, 이랏은 무후야엘, 무후야엘은 므드사엘을 낳는다. 그리고 므드사엘이 라멕을 낳은 후, 라멕은 아다에게서 유발을 낳는다. 그리고 그 유발이 모든 수금과 퉁소잡는 자의 조상이 되는 것이다. 즉 간단히 설명하자면 음악의 시작은 가인의 자손에게서라는 것이다. 즉, 음악은 아벨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가인적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가인적인 성향을 띠던 음악은 출15장에서부터 다른 성격으로 변화되기 시작한다. 모세를 불신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을 쫓던 애굽의 군사들은 모두 수장되고 만다. 하나님을 불신했던 죄많은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사랑과 그 구원의 능력을 감사하던 이스라엘 백성의 입에서 노래가 나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음악이 찬양으로 바뀌어지는 순간이다. 가인적이던 음악이 구원의 감격에 기뻐하는 사람에게 찬양으로 바뀌어지는 것이다. 여타 종교 가운데에서 가장 노래를 많이 부르는 종교가 바로 기독교이다. 기독교 안에는 하나님의 일방적 은혜와 사랑으로 인한 구원이 있고 그 구원은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우리 가운데 값없이 주어진 것이기에 우린 그 구원에 감사하고 눈물흘리며 찬양을 하는 것이다.

기독교에 있어서 찬양, 혹은 노래라는 것은 이러한 의미를 지닌다. 다시 정리하자면, 음악이 찬양으로 바뀌는 것은 구원을 믿고 깨달을 때인데 그 믿음은 들음에서,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 것이다. 즉, 말씀이 없어서 구원의 메세지를 선포하지 못한다면 음악은 음악에 그칠 뿐이다.

진정한 교회의 부흥을 이루고자 한다면 결코 음악으로는 안된다. 화려한 기능과 뜨거운 분위기가 교회의 부흥을 약속하지 않는다. 진정한 교회의 부흥은 찬양을 필요로하며 이 찬양은 바로 "예수가 그리스도요 우리의 구원자"라는 메세지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본말의 도치는 단순간의 부흥을 약속할지는 모르지만 결코 장기간의 성장과 성숙을 약속하지는 않는다. 노래를 부르기 전에 꼭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것이 찬양인지 노래인지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