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이 왜 그 모양이야?

무섭기로 소문 난 한문 과목의 양 선생님께서 나에게 다가오셨다. 교무실에 있던 나는 무슨 일이 있나 하는 마음으로 그 선생님을 주시했다.
양선생님은 불같이 화끈한 성격으로 매도 많이 들고 또 야단도 많이 치는 분이다. 그러나 실력이 뛰어나고 의리에 있어서는 성격처럼 또 뜨거운 분이어서, 아이들은 졸업 후에 이 선생님을 많이 찾아온다.
“아니, 최선생. 애들이 왜 그 모양이야?
나는 한참 연배가 높은 양 선생님의 큰 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나며 되물었다.
“왜요? 양선생님. 무슨 일이 있으셨어요?
사심없이 대화를 잘 나누었던 사이인지라 화가 난 듯한 그분을 대함에도 불편하거나 어색함은 없었다. 아이들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나 하는 생각을 잠시 한 것 뿐.
“최선생 반 애들이 한문 숙제를 거의 안 해왔다구. 게다가 해 온 놈들은 남의 공책에다가 이름을 바꿔 놓고 말야. 이거 이래서야 되겠어?”


선생님을 속이려하다니

현재의 영훈고에 와서 처음으로 나는 1학년 여학생 학급을 담임했었다.
그때 나는 그동안 생각해왔던 열려 있는 수업을 지향했고, 학급운영도 유익하면서도 재미있게 하고자 했다. 모둠일기를 쓰고 생일축하를 하고 서로 긴밀한 관계 속에서 즐겁고 활기찬 학교 생활을 하는 것을 가장 큰 중심으로 삼았다. 아이들은 잘 따라주었으며 매일매일 기쁜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공부도 열심히 잘하고 있었다. 나름대로의 개성을 살리며 그 개성으로 조화롭게 이루어지는 아름다운 학급을 지향했었다. 그런데 숙제를 안 해 오다니. 게다가 남의 공책에다가 이름만 바꾸다니. 그것이 사실이라면 진실과 정의를 내세웠던 담임인 나의 생각에도 당연히 위배되는 것이었다.
“양 선생님.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아이들하고 한 번 이야기 나누어보죠. 정말 선생님 말씀대로 아이들이 그렇게 했다면 당연히 야단 맞아야죠. 아이들하고 이야기 나눈 후 다시 선생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말을 듣고도 양 선생님은 화가 풀리지 않았다. 아이들이 선생님을 속이려 했던 그 사실을 선생님이 알았을 때의 그 배신감. 아마도 양 선생님은 그러한 불쾌감과 허탈감을 맛보고 있는 듯했다.


할 수 있는 숙제가 아니에요

나는 교실로 갔다. 그리고 7교시 자율학습 시간을 통해 모두들 바른 자세로 앉도록 했다. 다소 경직된 나의 모습에 아이들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있었다.
‘한문 선생님이 가셔서 뭐라고 했구만….’ 하고 술렁이는 아이들. 눈치 빠른 우리 아이들이었다. 나는 마음이 좋지 않았다. 숙제를 해오지 않았다면 떳떳하게 야단을 맞고 벌을 받으면 되는 것인데, 우리 아이들은 그 순간을 모면하고자 한다. 그것이 안타까웠다.
“얘들아, 오늘 선생님하고 이야기 좀 하자.”
아이들은 나를 주시했다.
“짐작은 했겠지만 한문 선생님께서 단단히 화가 나셔서 나에게 말씀하시더구나. 너희들 나쁜 놈들이라구 말야. 선생님을 속이려 했다면서? 내 생각에도 너희들이 잘못한 것 같은데 너희들 어떻게 생각하니?”
그 때 비판성이 강한 상희가 외치다시피 말했다.
“선생님. 한문 숙제가 할 수 있는 숙제가 아니에요. 얼마나 많은지 아세요? 그 숙제를 다 하려다가는 다른 공부나 숙제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단 말예요.”
다른 아이들도 동의한다는 눈빛을 나에게 보내고 있었다. 아이들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아예 한문 숙제 한 과목을 포기하고 다른 공부를 하든지, 아니면 야단 맞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하여튼 아이들이 취한 그것은 내가 아이들을 어느 정도 이해한다 하더라도 바른 방법은 아니었다.


운동장에 모두 모여

나는 마음을 정리했다.
물론 한문 선생님께서 과다한 숙제를 내주신 것이 아이들의 현상황을 잘 파악하지 못하고 너무 많게 내신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들 앞에서 선생님을 욕할 수는 없는 일이다. 또한 그것은 교사들끼리의 이야기여야만 했다.
나는 이 아이들을 야단치기로 결심했다. 특히 진실을 주장하고 그렇게 살아가야할 아이들이 숙제를 통해서 선생님을 속이려 했다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지 설명될 수 없는 옳지 않은 것임을 깨우치고자 하였다.
"너희들 아무래도 안되겠다. 반성을 하지 않는구나. 오늘 선생님에게 특별히 혼나야겠어. 모두들 운동장에 집합 해.“
아이들은 무척 당황하고 있었다. 이러한 일은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도 아이들은 내 말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들은 이내 운동장 한 켠에 4열 횡대로 서 있었다.
1학년 여학생들이 운동장에 벌을 서려고 모여드는 것을 바라보는 타 학생들은 재미있다는 듯이 놀리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매우 진지했다. 모두 운동장에 집합이 끝난 상태에 나는 잠시 계단 위에서 아이들이 눈치 채지 않도록 하며 기도했다.
‘하나님. 이 아이들에게 새로운 힘을 주시옵소서….’


이 나쁜 녀석들아

나는 큰 목소리로 말했다.
“이 녀석들. 정말 너희들이 잘못한 게 없단 말이니? 응? 선생님을 속이려고 한 것이 말야. 오늘은 선생님 입장에서 나도 여러분들에게 실망할 것 같아. 어때? 앞으로 다시는 거짓말과 거짓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사람은 오늘 선생님이 때리는 매를 맞도록 해. 그렇지 않고 억울하다든가 매를 맞지 못하겠다고 하는 사람은 옆으로 나와라. 그런 사람은 안 맞아도 좋으니까.”
아이들은 내가 매를 든다는 사실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면서도 꼼짝하지 않고 제 자리에 서서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우리 담임이 저럴 수가’ 하는 의아함과 묘한 감정이었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매를 들고 앞의 여학생부터 손바닥을 한 대씩 힘껏 내리치기 시작했다.
“퍽, 퍽…….”
매가 계속 될수록 아이들은 손을 비비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아픔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 녀석들아, 아프니? 선생님 마음은 더 아파, 이 나쁜 녀석들아!”


불쌍한 아이들

나는 울고 있었다. 아이들의 아픔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입시 지옥이 있는 나라에 태어나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지 못하고 그저 대학만 바라보며 나아가는 우리 아이들. 그리고 억지로 베껴 검사 받아야 하는 과다한 숙제, 성적, 친구와의 고민, 미래의 불투명으로 오는 불안감 등등.
아이들의 아픔이 가슴속에서 일어나며 아이들이 마구 불쌍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흐르는 눈물을 애써 감추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들켜서는 안 될 것 같았다.
“모두들 눈 감고 똑바로 서 있어. 그렇지 않으면 한 대씩 더 때릴지도 몰라….
그러나 아이들 가운데 몇은 이미 흐느끼고 있었고, 매를 멈추었을 때 아이들은 눈을 감은채 거의 모두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서너 계단 위로 올라 선 나는 아이들을 향해 말했다.
“얘들아, 나는 너희들을 누구보다 사랑한다. 오늘은 이런 하고 싶지 않은 방법을 사용했는데…. 많이 아프지? 너희들이 앞으로 살아가면서 오늘의 순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 진실과 정의를 지키는 것 말야. 작은 것 하나부터 우리 그러한 것들을 실천해야 하지 않겠니?”
아이들은 조용히 내 말을 듣고 있었다. 그 때 아이들 뒤편으로 펼쳐진 10월의 가을 하늘이 매우 푸르게 펼쳐져 있음이 내 눈에 들어왔다. 내 가슴이 새로운 희망과 기대로 한껏 부풀어올랐다.

가을 하늘을 쳐다보렴


“얘들아, 눈 감은 상태로 모두 뒤로 돌아 보겠니?”
아이들은 그 자리에서 뒤로 돌았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더 높이. 그래, 자, 이제 눈을 떠 봐. 어서.“
아이들은 영문을 모르면서 시키는 대로 했다. 아이들의 눈동자는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얘들아, 어떠니? 앞에 무엇이 보이니? 저 넓고 푸른 가을 하늘 보이니? 그래, 선생님은 너희들이 저 푸른 하늘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앞에 놓여 있는 여러 문제들과 힘든 상황을 보지 말고 너희들 앞에 푸르게 놓여 있는 저 가을하늘같은 넓은 미래를 향해 노력했으면 좋겠어. 얘들아, 알았지? 힘내라, 응?”
힘주어 이 말을 하는 내 목소리는 이미 간헐적인 울음소리로 바뀌어 있었다. 가을 하늘을 쳐다보는 아이들도 모두 울고 있었다. 말못할 설움들, 힘겨움들, 공부에 대해, 성적에 대한 중압감들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주저앉으며 우는 영미와 혜진이. 엉엉 소리내며 우는 보라, 그리고 훌쩍이는 아이들. 그 아이들을 지켜보는 나의 눈에는 가을하늘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회복의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최관하 교사(영훈고등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