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양회나 그 밖의 행사를 하기 전에 반드시 먼저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오리엔테이션(orientation)이다. 오리엔테이션이란 어떤 일의 진로나 방향을 정하는 일을 의미하고 있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불필요하게 보이나 하지 않으면 모든 것에 혼란이 오게되고 되는 일이 없게 된다. 그러므로 모든 일에 있어서 오리엔테이션은 매우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내가 이렇게 오리엔테이션을 강조하여 말하는 것은 우리의 영적인 삶에도 이런 오리엔테이션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 그 방향이나 진로를 정하기 위해 영적인 오리엔테이션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므로 그런 오리엔테이션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그것을 알기 위하여 오리엔테이션이란 말이 어디서 나왔는가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오리엔테이션이란 말은 동쪽을 정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왜 이런 말이 나왔을까 하는 의문은 이스라엘 백성의 솔로몬이 성전을 지은 후의 삶을 보면 알게 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하시기를 백성이 멀리 이방 땅에 포로로 끌려 갔을 때 이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면 그들의 기도를 들으사 다시 고국으로 돌아오게 하시겠다고 하셨고, 염병에 걸렸을 때 하나님께 엎드려 이 곳을 향하여 기도하면 염병을 끝이게 하여 주시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디를 가든지 이 성전이 있는 곳을 향하여 기도를 드리게 된 것이다. 바벨론으로 끌려간 다니엘은 그 곳에서 뜻을 정하여 기도를 하였는데 하루에 세번씩 예루살렘성이 있는 동쪽을 향하여 기도를 하였다. 이것을 우리는 오리엔테이션 즉 동쪽을 정하는 일을 하는 것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역사적인 사실로부터 오리엔테이션이 무엇인지 어떤 결과를 우리의 삶에 가지고 오는지를 알게 된다. 나는 확신하기는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은 아직 우리에게도 유효하다는 것이다. 물론 예루살렘 성전이 갖는 의미는 바뀌었지만 성전 되신 예수님을 향하여 기도할 때 우리의 삶엔 혼돈에서 질서가 잡히게 되고 모든 것에 치료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 무엇보다 먼저 우선으로 두어야 할 것은 성전 되시는 예수님을 향해 기도하는 삶인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삶이 어떻게 꼬였든지 또한 어떻게 망가졌든지 상관 없이 회복의 역사가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나는 얼마전 우리교회를 방문하신 한 목사님을 보면서 옛날 생각을 떠 올리게 되었었다. 그 목사님은 내가 로스엔젤스에 살 때 전도사로 있던 교회의 담임목사님이셨다. 그분 밑에서 나는 전도사로서의 훈련을 받았다. 특별히 기도훈련을 받았다. 목사님은 새벽에 나를 깨우셔서라도 꼭 기도회에 참가하게 하셨고, 금요일에는 따로 불러서 성경봉독하는 것도 가르쳐 주셨다. 어떨 때는 목사님하고 나하고 둘이서 넓다란 예배당에서 철야기도를 한 적도 있었다. 그런 기도 생활을 지금와서 돌이켜 보니 하나님이 그 때의 나의 기도를 모두 다 응답을 하셨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나는 그때에 신학을 하러 미국에 왔으나 내가 꿈꾸던 신학교에 갈 수가 없었다. 법적인 문제도 있었으나 영어를 너무나 몰랐었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께 기도하면 영어도 배울 수 있는 기회도 주시고 길을 열어 주실 것을 믿고 기도했다. 그러면서도 그때 당시로는 그 기도가 이루어진다는 것은 너무나 꿈만 같은 일이였다. 그런데 지금의 나를 놓고 생각해 볼 때 이미 내가 꿈꾸던 그 신학교를 졸업을 한 형편이 되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크신 응답이 아닐 수 없다.
또한 나는 그 시절에 내가 맡았던 학생회를 위하여 기도를 했었다. 아이들이 두세명 밖에 없는 상태에서 거기다가 한국어는 한마디도 못하는 아이들이었는데 나는 어쩔 도리가 없어서 하나님께 한국어를 하는 아이들을 모아 달라고 기도를 드렸다. 밤마다 교회에 가서 빈 의자들을 붙잡고 이 의자의 주인을 우리 교회로 오게 해 달라고 기도를 드렸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그 빈 의자들을 3개월 안에 다 채우시는 역사를 체험 했었다. 그런 경험에서부터 시작하여 나는 그와 같은 기도를 지금도 하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은 지금까지 그런 나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계신다.
그 다음으로 내 기억 속에 남는 기도의 제목은 나와 함께 잠시 로스엔젤레스에서 생활을 하였던 나의 둘째 형님을 위한 기도였다. 나는 그 형님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했고 그가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을 받는 장로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렸었다. 물론 그 때 상황으로는 그렇게 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실정이었었다. 그러나 현재 그 형님은 내가 목회하는 교회에 장로님으로 시무하고 있다. 나는 그 장로님이 단 위에서 대표 기도를 할 때면 그 옛날에 기도하던 생각이 나면서 내 마음에 감동이 온다. 언젠가 한번은 너무 답답하여 교회에 가서 목사님과 기도를 하였었는데 너무나 크게 부르짓는 바람에 우리에게 교회당을 빌려 준 미국인 목사님이 달려 온적이 있었다. 그 목사님은 교회당에서 무슨 큰 소리가 난다는 소식을 듣고 무슨일이 있나 하고 왔다가 내가 기도하는 것을 보고는 돌아가려 했다. 나는 돌아가시는 목사님을 머리를 들고 보다가 나의 코에서 무엇인가가 흐르고 있음을 느끼며 코를 닦는데 피가 흐르고 있었다. 나는 내 형님의 구원과 그의 장래를 위하여 그날 밤 무진 애를 썼던 것 같다. 그 결과 하나님은 나의 기도를 들으사 그 형님을 충성스러운 장로로서 나와 함께 교회를 섬기게 해주셨다. 이런 것을 볼 때 하나님은 항상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것을 부인할 길이 없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앞날에 수 많은 것을 거두고 살 수 있는 기회가 있는 청년들에게 뜻을 정하여 기도하는 것을 매우 강조하고 있다. 무엇인가 뜻을 정하여 기도하면 오늘은 몰라도 시간이 갈수록 그 사람은 그 기도의 열매를 먹으며 살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앞날이 많이 남아 있는 청년들이 기도를 한다는 것은 매우 귀중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청년들을 포함해서 이 시대를 사는 모든 사람들은 기도는 저들의 삶의 방향과 진로를 결정지어 주는 오리엔테이션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기도하면 그가 기도한대로 반드시 자기의 삶이 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자기가 나아 가고자 원하는 방향이 있고 진로가 있으면 기도라는 오리엔테이션을 먼저 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또한 기도를 삶의 오리엔테이션으로 삼은 사람은 그 누가 흔들어도 그가 나아가는 길에서 절대로 방해를 받지 않는다. 그 증거로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며 살았던 다니엘은 나라가 수 없이 바뀌고 수 많은 사람들이 그를 쓰러뜨릴려고 모함을 했으나, 그는 여전히 자기의 자리를 지키어 냈다. 그 이유는 두말할 것도 없이 그는 매일 하루에 세번씩 하나님 앞에서 오리엔테이션을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단이 우리를 쓰러뜨릴려고 우는 사자 같이 돌아 다니는 이 세상에서 항상 오리엔테이션을 하므로 비전을 이루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 그 방향이나 진로를 정하기 위해 영적인 오리엔테이션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므로 그런 오리엔테이션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그것을 알기 위하여 오리엔테이션이란 말이 어디서 나왔는가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오리엔테이션이란 말은 동쪽을 정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왜 이런 말이 나왔을까 하는 의문은 이스라엘 백성의 솔로몬이 성전을 지은 후의 삶을 보면 알게 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하시기를 백성이 멀리 이방 땅에 포로로 끌려 갔을 때 이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면 그들의 기도를 들으사 다시 고국으로 돌아오게 하시겠다고 하셨고, 염병에 걸렸을 때 하나님께 엎드려 이 곳을 향하여 기도하면 염병을 끝이게 하여 주시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디를 가든지 이 성전이 있는 곳을 향하여 기도를 드리게 된 것이다. 바벨론으로 끌려간 다니엘은 그 곳에서 뜻을 정하여 기도를 하였는데 하루에 세번씩 예루살렘성이 있는 동쪽을 향하여 기도를 하였다. 이것을 우리는 오리엔테이션 즉 동쪽을 정하는 일을 하는 것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역사적인 사실로부터 오리엔테이션이 무엇인지 어떤 결과를 우리의 삶에 가지고 오는지를 알게 된다. 나는 확신하기는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은 아직 우리에게도 유효하다는 것이다. 물론 예루살렘 성전이 갖는 의미는 바뀌었지만 성전 되신 예수님을 향하여 기도할 때 우리의 삶엔 혼돈에서 질서가 잡히게 되고 모든 것에 치료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 무엇보다 먼저 우선으로 두어야 할 것은 성전 되시는 예수님을 향해 기도하는 삶인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삶이 어떻게 꼬였든지 또한 어떻게 망가졌든지 상관 없이 회복의 역사가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나는 얼마전 우리교회를 방문하신 한 목사님을 보면서 옛날 생각을 떠 올리게 되었었다. 그 목사님은 내가 로스엔젤스에 살 때 전도사로 있던 교회의 담임목사님이셨다. 그분 밑에서 나는 전도사로서의 훈련을 받았다. 특별히 기도훈련을 받았다. 목사님은 새벽에 나를 깨우셔서라도 꼭 기도회에 참가하게 하셨고, 금요일에는 따로 불러서 성경봉독하는 것도 가르쳐 주셨다. 어떨 때는 목사님하고 나하고 둘이서 넓다란 예배당에서 철야기도를 한 적도 있었다. 그런 기도 생활을 지금와서 돌이켜 보니 하나님이 그 때의 나의 기도를 모두 다 응답을 하셨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나는 그때에 신학을 하러 미국에 왔으나 내가 꿈꾸던 신학교에 갈 수가 없었다. 법적인 문제도 있었으나 영어를 너무나 몰랐었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께 기도하면 영어도 배울 수 있는 기회도 주시고 길을 열어 주실 것을 믿고 기도했다. 그러면서도 그때 당시로는 그 기도가 이루어진다는 것은 너무나 꿈만 같은 일이였다. 그런데 지금의 나를 놓고 생각해 볼 때 이미 내가 꿈꾸던 그 신학교를 졸업을 한 형편이 되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크신 응답이 아닐 수 없다.
또한 나는 그 시절에 내가 맡았던 학생회를 위하여 기도를 했었다. 아이들이 두세명 밖에 없는 상태에서 거기다가 한국어는 한마디도 못하는 아이들이었는데 나는 어쩔 도리가 없어서 하나님께 한국어를 하는 아이들을 모아 달라고 기도를 드렸다. 밤마다 교회에 가서 빈 의자들을 붙잡고 이 의자의 주인을 우리 교회로 오게 해 달라고 기도를 드렸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그 빈 의자들을 3개월 안에 다 채우시는 역사를 체험 했었다. 그런 경험에서부터 시작하여 나는 그와 같은 기도를 지금도 하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은 지금까지 그런 나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계신다.
그 다음으로 내 기억 속에 남는 기도의 제목은 나와 함께 잠시 로스엔젤레스에서 생활을 하였던 나의 둘째 형님을 위한 기도였다. 나는 그 형님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했고 그가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을 받는 장로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렸었다. 물론 그 때 상황으로는 그렇게 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실정이었었다. 그러나 현재 그 형님은 내가 목회하는 교회에 장로님으로 시무하고 있다. 나는 그 장로님이 단 위에서 대표 기도를 할 때면 그 옛날에 기도하던 생각이 나면서 내 마음에 감동이 온다. 언젠가 한번은 너무 답답하여 교회에 가서 목사님과 기도를 하였었는데 너무나 크게 부르짓는 바람에 우리에게 교회당을 빌려 준 미국인 목사님이 달려 온적이 있었다. 그 목사님은 교회당에서 무슨 큰 소리가 난다는 소식을 듣고 무슨일이 있나 하고 왔다가 내가 기도하는 것을 보고는 돌아가려 했다. 나는 돌아가시는 목사님을 머리를 들고 보다가 나의 코에서 무엇인가가 흐르고 있음을 느끼며 코를 닦는데 피가 흐르고 있었다. 나는 내 형님의 구원과 그의 장래를 위하여 그날 밤 무진 애를 썼던 것 같다. 그 결과 하나님은 나의 기도를 들으사 그 형님을 충성스러운 장로로서 나와 함께 교회를 섬기게 해주셨다. 이런 것을 볼 때 하나님은 항상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것을 부인할 길이 없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앞날에 수 많은 것을 거두고 살 수 있는 기회가 있는 청년들에게 뜻을 정하여 기도하는 것을 매우 강조하고 있다. 무엇인가 뜻을 정하여 기도하면 오늘은 몰라도 시간이 갈수록 그 사람은 그 기도의 열매를 먹으며 살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앞날이 많이 남아 있는 청년들이 기도를 한다는 것은 매우 귀중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청년들을 포함해서 이 시대를 사는 모든 사람들은 기도는 저들의 삶의 방향과 진로를 결정지어 주는 오리엔테이션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기도하면 그가 기도한대로 반드시 자기의 삶이 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자기가 나아 가고자 원하는 방향이 있고 진로가 있으면 기도라는 오리엔테이션을 먼저 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또한 기도를 삶의 오리엔테이션으로 삼은 사람은 그 누가 흔들어도 그가 나아가는 길에서 절대로 방해를 받지 않는다. 그 증거로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며 살았던 다니엘은 나라가 수 없이 바뀌고 수 많은 사람들이 그를 쓰러뜨릴려고 모함을 했으나, 그는 여전히 자기의 자리를 지키어 냈다. 그 이유는 두말할 것도 없이 그는 매일 하루에 세번씩 하나님 앞에서 오리엔테이션을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단이 우리를 쓰러뜨릴려고 우는 사자 같이 돌아 다니는 이 세상에서 항상 오리엔테이션을 하므로 비전을 이루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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