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숙

내가 사는 곳은 한적한 마을,
풍경이 닿는 곳마다
단내 나는 포도농원으로 둘려 있다
봄이 오기 전,
농부들은 몸뚱어리만 남겨 두고
포도나무의 마른 가지를 모두 잘라내었다
잔가지 잘려 나간 농원을 바라볼 때마다
허전한 마음 버릴 수 없었는데
어느 사이 가지 끝마다
어린 새 순筍 어여쁘게 돋아나고
원뿔 모양의 꽃을 피우기 위해
덩굴손 뻗어 올리며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다
잘려 나가는 아픔 뒤에 오는
기쁨의 노래를 들어보았는가
더욱 탐스러운 열매를 맺기 위하여
아픔을 견뎌내는 나무들이 부르는 노래 소리를
불필요한 삶의 부분, 싹터오는 탐심
뾰족하게 자라 나오는 교만의 가지
미련 없이 잘라내고 나면
어느덧 소망의 새 순筍은 살아 오르고
하늘빛 그리움 다시 물밀 듯 밀려오는 것을
행복한 마음으로 느낄 수 있다
생生의 한 부분 잘려 나가는
아픔 뒤에 오는 기쁨의 노래를 들어보라
세상이 줄 수 없는 참 평안의 노래
지그시 눈을 감듯 그 아름다운 마음으로 들어보라

해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