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원역사에서 노동의 중요성은 사막의 수도사들에게서부터 강조되어 왔으며, 이후에 베네딕트의 구율에서도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사막의 수도사들은 최소한의 생계 유지를 위해, 갈대 등 자연물을 이용해 바구니와 지팡이, 이부자리 등 수도생활과 일상사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만들어 사용했고, 이를 매매하기도 했다.베네딕트는 규칙서 제 48장에서 게으름과 한가함은 영혼의 원수라고 지적하면서, 육체노동과 기도 및 독서를 강조했다.베네딕트는 노동의 개념 속에 기도와 독서 같은 정신적인 노동까지 포함했다.

수도원의 역사가 깊어 가면서 노동이 개인과 공동체의 이윤창출과 권력유지를 위해 이용되기도 했다.수많은 여지와 부속된 식구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고도의 재정투자와 관리가 요구되었고, 이런 경우 직접적인 노동참여보다는 재산관리에 많은 수도사들이 투입되기도 했다.동시에 수도원의 설립배경과 강조점의 차이에 따라 노동을 등한시 하기도 했다.

귀족적인 배경으로 시작한 클루니의 경우, 육체노동보다는 기도와 미사 등 개인 및 집단 후원자들을 위한 종교적 의례에 많은 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었다.점증하는 축일과 한 수도원당 최고 만 여명에 이르는 후원자들의 명단은 수도사들이 육체 노동을 생각할 틈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노동은 전통적으로 수도원생활과 기독교 영성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수도원은 기본적으로 자급자족을 원칙으로 했으며, 각 수도사들은 각자의 내응과 능력에 맞게 일정량의 노동을 담당해야 했다.노동은 잡념을 물리칠 수 있는 좋은 도구가 되었으며, 수도원 영성의 주된 적인 게으름을 물리칠 수 있는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베네딕트의 규칙서 이래 수도원은 노동의 의미를 지속적으로 강조했다.수도사들의 노동은 대게 복잡하지 않았고 단조로운 항목들이 많았다.수사들의 노동은 수도원 내부적 요소와 외부적 요소로 구분되었다. 내부적 요소로는 식당 일, 포도주 배급을 위한 일상사를 위한 일 외에도 신발과 의복 만드는 곳, 도서관과 사서의 일, 약초 및 정원가꾸기 등의 일이 있었다.수도원이 커짐에 따라 수도원의 영징의 운영 및 위탁관리, 재정관리등 수도원 외부의 일 안에서도 영적인 훈련과 정신이 여전히 강조되었고, 베네딕트의 경우 일로 인해 수도원밖에 있거나 여행중인 수도사들이 성무 일도나 영적인 훈련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세세하게 규정해 주고 있다.

오늘날에도 Citeaux나 Solesmes 수도원 정원을 걷다 보면 수사들의 노동의 손길과 그 안에 새겨진 기독교 영성의 여러 차원을 발견할 수 있다.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베네딕트는 "자신의 손으로 노동함으로써 생활할 때 비로서 참다운 수도승들이 된다"고 역설했다.중세 수도원의 역사에서 노동의 미덕을 가장 강조한 예를 우리는 시스터시안 수도회와 이 수도회의 대표자인 버나드의 삶에서 볼 수 있다.

청빈과 검소한 삶을 누구보다 강조한 버나드는 귀족화 되어 버린 클루니를 비판하면서 노동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했다.개인적인 노동의 대가가 아닌 왕족과 귀족들의 후원으로 화려하게 성당을 개축한 자신의 절친한 친구이자 St.Denis 수도원장인 Suger에게 보낸 날카로운 편지는 버나드의 노동과 검소한 삶에 대한 인식을 잘 보여준다.

버나드의 노동과 검소한 삶에 대한 강조는 그가 수도원 설립을 위해 선택한 부지들의 위치가 웅변적으로 말해 준다.전인 미답의 지역을 찾아 내륙 깊숙이 들어가 자신들의 노동에 기초하여 수도원을 지었다.귀족들의 후원에 의지해 종교적 예식과 의무를 발전시키며 노동의 중요성을 잃어버린 클루니 수도원의 전통에 반기를 들듯, 버나드 자신은 가족과 추종자들 데리고 깊은 상간 지역으로 들억가 비바람과 눈보라를 맞으며, 넓은 숲 지역을 개간했다.노동에 대한 이러한 강조는 버나드의 삶의 다른 부분들까지 영향을 미쳤다.

시스터시안들은 기존 베네딕트 수사들의 염색한 검은 옷과는 달리 염색하지 않은 옷을 입으면서 염색에 들어가는 돈을 아꼈다.버나드의 대표적인 수도원인 프랑스의 Fontenay수도원의 한적한 위치와 그 안의 검소하고 단조로운 채플건물, 채플 입구의 출입문, 수사들이 공동 잠자리인 기숙사 모습은 오늘날까지 버나드의 노동에 대한 이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오직 우아하게 남아있는 채플 기둥들만이 버나드의 정신을 오늘나라까지 전달해 주고 있다.

Fontenay수도원에서는 잔해와 일부만 남아있는 클루니 수도원의 웅장함과 Fontevrauld수도원에서 풍기는 귀족적인 화려함을 전혀 느낄 수 없다.오직 우직하게 남아있는 채플 기둥들만이 버나드의 정신을 오늘날까지 전달해 주고 있다.

김재현 박사(Boondang Central House, 소장), 자료출처: 영성의 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