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들과 지내다 보면 그들의 자신에 찬 모습이 매우 보기가 좋다. 그리고 마치 세상을 곧 정복할 것만 같은 패기가 있어보여 좋다.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살아 나가는 것 같아도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금방 시험을 받아 떨어져 나가는 것을 종종 본다. 나는 그런 것을 보며 무엇이 그토록 패기가 넘치던 청년들을 넘어지게 하는 것일까를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그것은 성령의 충만이 이루어 지지 않을 때 벌어지는 일임을 알게 되었다.
성령의 충만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청년들 뿐만 아니라 장년들도 문제 속에 휘말리게 된다. 성령이 주관하는 삶이 아닌 곳에는 언제나 문제만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문제 속에서 시달릴 때마다 우리는 성령의 충만을 사모하며 주님 앞으로 나와야 한다.
나는 이러한 사실을 필립 켈러가 쓴 양과 목자라는 책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느끼게 되었다. 필립켈러에 의하면 양처럼 많은 벌레에 시달리는 동물이 없다고 한다. 특히 여름철에는 양을 괴롭히는 곤충들이 그렇게 많다고 한다. 쇠 파리, 발뒤꿈치 파리, 코파리 등 많은 파리들이 양을 괴롭히는데 그 중에서도 코파리가 제일 위협적인 존재라고 한다. 코파리가 나타나면 양은 금방 위험을 느끼고 이리저리 뛰어 다닌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양은 먹이도 먹지 않고 방황을 하여 살이 쪽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코파리가 양의 코 주변의 축축한 곳에 알을 까면 그 애벌레는 양의 머리로 들어가서 치명적인 상처를 주게 된다는 것이다. 일단 양의 몸에 벌레가 들어가면 양은 너무 괴로와서 나무나 바위에 자기의 머리를 들이 박고 상처를 만들기 일쑤라고 한다. 그리고 급기야는 눈이 멀거나 죽음에 이르기까지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목자는 여름철이 오면 양들을 벌레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양의 머리에 유황과 타르를 섞어 만든 기름을 발라 준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그 기름은 양의 온몸으로 퍼지게 되고, 참으로 신기한 것은 더 이상 벌레들이 양을 괴롭히지 못하게 된다는것이다. 또한 필립 켈러에 의하면 양들에게는 피부병인 옴병이 머리에 잘 걸리게 된다고 한다. 그런데 양들은 사랑의 표시로 서로 머리를 비벼대는 것을 좋아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어서 옴병은 삽시간에 온 양떼에게로 퍼져가게 되고 많은 양들이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 때도 목자는 기름약을 양의 머리에 발라 주는데 신기하게도 옴병이 물러 간다는 것이다.
필립켈러는 이러한 목자의 경험을 들어서 시편 23편 5절의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라는 말씀을 다음과 같이 해석을 하였다. 우리는 수 많은 벌레에게 시달리는 양과 같이 문제 속에 살고 있다고 했다. 마귀가 주는 시험들을 포함해서 많은 시련들이 인생들을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시험 속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사람들은 안간힘을 쓴다. 어떨때는 잘 살아 보려고 노력도 하지만 그것이 여의치 않다. 그렇게 되면 인생은 앞날을 생각할 때 두려움이 생기고 염려 속에서 방황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잠시나마 잊기 위하여 술이나 drug을 사용한다. 그러나 그것은 고통을 해결하기 위하여 나무나 바위에 머리를 부딪치는 양의 행동처럼 자신을 해치는 것일 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자가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의 기름을 부음 받으면 그 모든 어려움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되는 것이다.
시편 23편을 쓴 다윗은 목동 출신이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안다. 그가 그런 시를 하나님에게 신앙의 고백으로 쓸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러한 목동의 체험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쉽게 알 수 있다. 다윗은 양이 기름약이 없이는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생명을 지킬 수도 없는 것 같이, 양과 같이 문제 많은 우리 인생이 성령의 도움이 없이는 한 순간도 살 수 없음을 고백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성령의 기름을 부어 주시는 하나님을 목자로 삼는다면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을 하였다. 그 말은 성령의 기름 부음을 받으므로 우리 인생들은 우리를 괴롭히는 모든 문제로 부터 벗어 날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에게는 언제나 성령의 충만함이 필요하다.
예수님은 이러한 이유로 수가성의 사마리아 여인에게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4:13,14)고 하셨다. 그 말씀은 사람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기 전까지는 세상이 주는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고, 그래서 평안도 가질 수 없고, 언제나 불만족과 염려, 걱정 속에서 살아 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고, 그러한 문제들을 해결 받기 위해서는 성령의 충만함을 부음 받아야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께 항상 구해야 할 것은 성령의 충만함인 것이다. 성령의 충만함은 우리가 구할 때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고, 매일 같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기 위해서는 매일 같이 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청년들이 신앙 생활을 잘하다가 시험을 받아 넘어지는 경우를 보면 계속적인 기도 생활을 통하여 성령의 충만함을 유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성령이 충만할 때는 모든 것이 은혜롭게 진행 되지만 성령의 충만함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는 모든 것이 문제의 근원이 될 수 있음을 나는 분명히 안다. 어떤 경우를 보면 어떤 청년들은 한때는 죽음을 불사하고 주님을 따르겠다고까지 결단해 놓고서 아주 작은 사소한 것을 가지고도 시험에 빠지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런 모습을 보면 우리가 결정한 것도 우리 마음대로 실행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가 결정한 것을 실행하게 하는 것도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 모습은 마치 하나님이 주신 힘을 잃어버린 삼손의 모습과도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의 신(성령)의 도우심이 없는 삼손은 블레셋의 노예로 전락이 되었다. 우리는 이러한 삼손의 모습에서 성령의 충만함이 없이는 노예와 같이 연약하게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실감해야 될줄로 믿는다. 그러므로 이러한 연약한 우리의 형편을 보면서 청년이든지 장년이든지 성령의 충만함을 항상 구해야 한다. 그래서 하루 하루를 문제없이, 시험에 빠져 사는 일 없이, 그리고 모든 일에 능력 있게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다.
성령의 충만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청년들 뿐만 아니라 장년들도 문제 속에 휘말리게 된다. 성령이 주관하는 삶이 아닌 곳에는 언제나 문제만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문제 속에서 시달릴 때마다 우리는 성령의 충만을 사모하며 주님 앞으로 나와야 한다.
나는 이러한 사실을 필립 켈러가 쓴 양과 목자라는 책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느끼게 되었다. 필립켈러에 의하면 양처럼 많은 벌레에 시달리는 동물이 없다고 한다. 특히 여름철에는 양을 괴롭히는 곤충들이 그렇게 많다고 한다. 쇠 파리, 발뒤꿈치 파리, 코파리 등 많은 파리들이 양을 괴롭히는데 그 중에서도 코파리가 제일 위협적인 존재라고 한다. 코파리가 나타나면 양은 금방 위험을 느끼고 이리저리 뛰어 다닌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양은 먹이도 먹지 않고 방황을 하여 살이 쪽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코파리가 양의 코 주변의 축축한 곳에 알을 까면 그 애벌레는 양의 머리로 들어가서 치명적인 상처를 주게 된다는 것이다. 일단 양의 몸에 벌레가 들어가면 양은 너무 괴로와서 나무나 바위에 자기의 머리를 들이 박고 상처를 만들기 일쑤라고 한다. 그리고 급기야는 눈이 멀거나 죽음에 이르기까지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목자는 여름철이 오면 양들을 벌레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양의 머리에 유황과 타르를 섞어 만든 기름을 발라 준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그 기름은 양의 온몸으로 퍼지게 되고, 참으로 신기한 것은 더 이상 벌레들이 양을 괴롭히지 못하게 된다는것이다. 또한 필립 켈러에 의하면 양들에게는 피부병인 옴병이 머리에 잘 걸리게 된다고 한다. 그런데 양들은 사랑의 표시로 서로 머리를 비벼대는 것을 좋아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어서 옴병은 삽시간에 온 양떼에게로 퍼져가게 되고 많은 양들이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 때도 목자는 기름약을 양의 머리에 발라 주는데 신기하게도 옴병이 물러 간다는 것이다.
필립켈러는 이러한 목자의 경험을 들어서 시편 23편 5절의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라는 말씀을 다음과 같이 해석을 하였다. 우리는 수 많은 벌레에게 시달리는 양과 같이 문제 속에 살고 있다고 했다. 마귀가 주는 시험들을 포함해서 많은 시련들이 인생들을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시험 속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사람들은 안간힘을 쓴다. 어떨때는 잘 살아 보려고 노력도 하지만 그것이 여의치 않다. 그렇게 되면 인생은 앞날을 생각할 때 두려움이 생기고 염려 속에서 방황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잠시나마 잊기 위하여 술이나 drug을 사용한다. 그러나 그것은 고통을 해결하기 위하여 나무나 바위에 머리를 부딪치는 양의 행동처럼 자신을 해치는 것일 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자가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의 기름을 부음 받으면 그 모든 어려움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되는 것이다.
시편 23편을 쓴 다윗은 목동 출신이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안다. 그가 그런 시를 하나님에게 신앙의 고백으로 쓸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러한 목동의 체험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쉽게 알 수 있다. 다윗은 양이 기름약이 없이는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생명을 지킬 수도 없는 것 같이, 양과 같이 문제 많은 우리 인생이 성령의 도움이 없이는 한 순간도 살 수 없음을 고백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성령의 기름을 부어 주시는 하나님을 목자로 삼는다면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을 하였다. 그 말은 성령의 기름 부음을 받으므로 우리 인생들은 우리를 괴롭히는 모든 문제로 부터 벗어 날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에게는 언제나 성령의 충만함이 필요하다.
예수님은 이러한 이유로 수가성의 사마리아 여인에게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4:13,14)고 하셨다. 그 말씀은 사람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기 전까지는 세상이 주는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고, 그래서 평안도 가질 수 없고, 언제나 불만족과 염려, 걱정 속에서 살아 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고, 그러한 문제들을 해결 받기 위해서는 성령의 충만함을 부음 받아야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께 항상 구해야 할 것은 성령의 충만함인 것이다. 성령의 충만함은 우리가 구할 때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고, 매일 같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기 위해서는 매일 같이 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청년들이 신앙 생활을 잘하다가 시험을 받아 넘어지는 경우를 보면 계속적인 기도 생활을 통하여 성령의 충만함을 유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성령이 충만할 때는 모든 것이 은혜롭게 진행 되지만 성령의 충만함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는 모든 것이 문제의 근원이 될 수 있음을 나는 분명히 안다. 어떤 경우를 보면 어떤 청년들은 한때는 죽음을 불사하고 주님을 따르겠다고까지 결단해 놓고서 아주 작은 사소한 것을 가지고도 시험에 빠지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런 모습을 보면 우리가 결정한 것도 우리 마음대로 실행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가 결정한 것을 실행하게 하는 것도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 모습은 마치 하나님이 주신 힘을 잃어버린 삼손의 모습과도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의 신(성령)의 도우심이 없는 삼손은 블레셋의 노예로 전락이 되었다. 우리는 이러한 삼손의 모습에서 성령의 충만함이 없이는 노예와 같이 연약하게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실감해야 될줄로 믿는다. 그러므로 이러한 연약한 우리의 형편을 보면서 청년이든지 장년이든지 성령의 충만함을 항상 구해야 한다. 그래서 하루 하루를 문제없이, 시험에 빠져 사는 일 없이, 그리고 모든 일에 능력 있게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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