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가 많은 병의 원인이 된다는 얘기를 우리는 듣고 있다. 그러면 스트레스는 모두 나쁜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스트레스가 없는 생활은 매우 지루할 것이다. 스트레스는 우리에게 괴로움을 주기도 하지만 생활의 활력을 주기도 한다. 즉, 긍정적 스트레스와 부정적 스트레스가 있다는 말이다. 긍정적 스트레스는 일종의 자극으로, 일을 하거나 성취욕을 돋구어 주는 힘의 근원이자 정열이다. 어떤 일을 효과적으로 실행하기 위하여 어느 정도의 긴장감, 에너지와 추진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만약 이런 것들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무기력하고 생동력이 없게 될 것이다.

문제는 부정적 스트레스다. 적당한 긴장이 해로운 스트레스로 빠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그때 그때 생겨나는 스트레스를 누적 시키지 말고 삶의 활력소로 활용하는 생활의 지혜와 습관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한다.

아스퀴스(Asquith) 부인이 쓴 추억(Memoirs)이라는 책에서 저자는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녀는 아버지의 소유인 광활한 초원을 가로지르며 말을 타곤 하였다. 어느 날 그녀는 아아치형 다리 아래에 이르러 말에서 내리게 되었는데 거기서 한 방랑자가 않아 있는 것을 보고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다음에 당신이 가야할 길을 어떻게 결정하나요?” 그가 대답했다. “항상 바람을 등에 맞으며 간단다.” 이것이 바로 방랑자들의 선택이다. 그들은 바람이 그들의 등 뒤에서 불기를 원한다. 그래야 걷기가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순례자는 다르다. 순례자는 방향을 미리 정해 놓고 걷는다. 분명한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는 그 길에 바람이 맞부딪혀와도, 거센 바람으로 인하여 얼굴이 따갑고 발걸음을 떼어 놓기가 힘이 들어도 정해진 목표를 향하여 인내하며 힘을 다해 걸어가는 것이 순례자의 행로이다. 연이 날아오르는 것은 연이 바람을 피하지 않고 바람을 타고 오르기 때문이다.

순례의 여정에 불어오는 시련의 바람, 고독의 바람이 싫다고 돌아서 버리면 걷는 것은 쉬워질 수 있으나 방향은 완전히 달라진다. 곧 방향을 상실하고 바람따라 떠도는 방랑자의 인생으로 전락하고 만다. 온 몸에 활력을 가득 채우고 붉게 물들이며 피를 뺨으로 보내는 것은 우리 얼굴에 와 부딪히는 바람이다. 때로 고독해도, 고통스러워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길, 천성으로 향하는 그 길, 우리 주님 앞서 가신 그 십자가의 길을 걸어 갈 때 우리 삶에 건강한 영성이 형성되고, 우리의 인격이 성화되며, 삶의 질이 승화되는 복된 순례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로마서 5: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