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마.음.은.. .연.약.하.고..
상.처.받.기..쉽.습.니.다..
-장 바니에의 우울증편지 중

"속상하고 힘든 일이 있었다면 우울한 게 당연한 것 아닌가요?" 지치고 힘들어 보이는 얼굴이면서도, 남의 일 얘기하듯이 H자매가 툭 내뱉은 말입니다.

워낙에 정신과에 대한 편견이 강한 우리나라에서도 '우울증'이라는 이름은 비교적 접하기 쉬운 편이라고 생각됩니다. 오늘은 이렇듯 흔하게 들려오는 이름, 우울증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먼저 우리가 쉽게 쓰는 용어부터 정리를 해 봅시다. 기분(mood)은 지속적인 내적 감정 상태를, 정통(affect)은 감정의 외적 표현을 뜻하는 말입니다. 인간의 지속적인 내적 감정 상태의 장애가 있을 때 이를 기분 장애(우울증, 조울증 등을 넓게 칭하는 이름)라고 부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넓은 범위의 감정을 경험합니다.

감정은 정상적일 수도 있고, 우울할 수도 있으며, 고양될 수도 있습니다. 로봇이 아닌 다음에야 한번도 기분이 울적해 본 적이 없다고 하면 오히려 그게 이상하겠죠. 감정의 종류와 범위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으나 조절이 가능합니다.

우울증은 정서 장애에 속하는 정신과적 질병입니다. 우울증을 앓게 되면 조절감을 상실하고 고통을 경험하게 됩니다. H자매는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하다가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해보려고 직장을 접은 뒤 2년 째 접어들고 있었습니다.

"예전부터 한 번 정신과에 가 봐야겠단 생각을 해 봤어요. 하지만 이렇게 정말 오게 될 줄은 몰랐죠." H자매가 병원에 오게 된 것은 사실 우울한 기분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뭘 해도 재미가 없긴 했지만 쉽게 지치고 입맛도 별로 없고, 늘 피곤한 느낌에 막연한 불안감이 있어서 어딘가 몸에 고장이 난 게 아닌가 내과에 먼저 갔었습니다.

내과 의원에서는 이것저것 검사를 쭉 해본 뒤에 별 이상이 발견되지 않자 정신과에 한 번 가보면 어떻겠냐고 조심스럽게 H자매에게 권했습니다.

병명에 '우울'이 들어가 있는 만큼 제일 흔하게 나타나는 증상으로 우울감을 생각할 수 있지만, 우울증 환자가 자신의 우울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흔하게 나타나는 증상으로는 에너지와 흥미의 상실(97%), 불안(90%), 죄책감, 집중력 감퇴(84%)등이 있습니다. H자매처럼 입맛이 없어질 수도 있지만 많이 먹고 체중이 불어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불면(80%) 증상 역시 흔하지만 더 많이 자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죽음이나 자살에 대한 생각도 나타나고 월경 불순, 성욕 감퇴, 알코올 남용, 신체적 이상(변비, 두통)을 호소합니다. 행동 수준, 지적 능력, 언어의 변화가 관찰되면,대인.사회.직업 기능의 손상이 나타납니다.

영적으로는 양극단적인 현상으로 나타나는데, 하나님을 회피하거나 혹은 영적인 일에 지나치게 매달리기도 합니다. 아무튼 뚜렷하게 표현할 수는 없지만 평상히 경험하는 감정과 분명히 다르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흔히 경험하는 '우울감'과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뜻입니다.

진찰실에서 만난 H자매는 힘이 없어 보이고, 말하는 속도도 느릿느릿 했습니다. 막상 얘기를 꺼내기 시작하자, H자매의 현재 상황이 좀 더 구체적으로 드러났습니다.

"10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학교로 연락이 왔죠. 일하시다가 현장에서 사고로 돌아가셨다고, 그 뒤로 제 삶은 완전히 뒤바뀔 수 밖에 없었어요. 어머니가 살림을 책임지셔야 했고, 7살 먹은 남동생을 돌보는 건 제 책임이 되었죠. 상을 치른 뒤 학교에 처음 가던 날, 막연히 힘들어 엄마 앞에서 울었어요, 힘들다고. 그때 어머닌 단호하게 얘기하셨어요. 네가 힘들어하면 아무도 도와줄 수가 없다, 네가 이겨내고 일어나야 한다고. 그 뒤론 아빠가 보고 싶어도 삶이 힘들어도 눈물을 보이지 않았어요." 말투는 여전히 건조하고 시큰둥했지만, 얘기하는 H자매의 뺨으로 눈물이 조용히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대학 다니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어요.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가 떠나갈 때 상처 입을 거란 생각에 마음을 사렸는데, 그 사람은 달랐죠. 처음 만났을 때부터 전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될 걸 알고 있었어요."

문제는 둘의 만남이 지속되어 결혼 얘기가 나온 뒤에 나타났습니다. 남자 친구의 부모님은, 아버지가 없이 자란 데다 특별히 내세울 것이 없는 H 자매를 탐탁치 않게 여겼고. 끝내 남자친구는 자매를 포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충격으로 자매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습니다.

"남자친구는 언제가 잊혀지겠죠. 하지만 더 두려웠던 것은 '나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데 왜 이렇게 갈수록 무기력해지나?'하는 생각이었어요. 베스트셀러 '상한 감정의 치유(데이빗 시메즈)'에 나오는 얘기처럼, "사단은 우리에게 나타나는 감정적인 우울증 현상을 영적인 패배로 바꾸어 놓으려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울증만큼 편견이 많은 병도 없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모든 우울증은 사타나으로부터 온다는 사람들, 우울증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죄가 심각한 상실의 조건을 만드는 일이 흔하기에, 종종 죄와 우울증 사이에는 연관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울증은 어디까지나 상실의 결과일 뿐, 죄의 직접적인 결과라고만 말할 수는 없습니다. 성도가 우울증에 대항할 수 있는 기도의 능력은 병을 치유하기 위한 중요한 요소입니다. 하지만 고생하는 사람들로부터 현대 의학과 기독교 상담이 제고하는 놀라운 치료를 제거하지 말아야 겠습니다.

또, 우울증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버리셨기 때문에 생긴다는 생각은 어떻습니까? 우울증은 오히려 우리가 하나님께 등을 돌림으로 야기될 수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들은 가뜩이나 짓눌려 있는 우울증 환자들의 마음에 도움을 주기는 커녕 고통만 가중시킬 것이 분명합니다.

우울증...여러 가지 얘기가 분분한 만큼, 각자에게 갖는 의미도 그렇게 다양하리라 생각합니다. 왜 이러한 고통이 있어야 하는가, 생각할 수도 있을 겁니다. 어떠한 요인으로 우울증이 오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의 우울증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결과적으로는 유익이 될 수 있다는 것, 쉽게 받아들이실 수 있으신가요?

이에 대해서는 또 다른 지면이 준비되어야 할 만큼 복잡
한 주제라고 생각하기에, 짤막한 얘기 두 가지만 언급하고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선지자 엘리야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승리의 갈멜산이 아니라 우울에서 회복되던 호렙산에서 그분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시대의 유명한 기독교 저술가이며 예수회 사제이자 심리학자인 헨리 나우웬 역시 우울증에 시달렸습니다. 나중에 그는 자신의 우울했던 시간을 돌아보면서, "우울의 시기는 깊은 정화의 시간이며 새로운 내적 자유와 창의력을 얻는 기간이 되었다. 우울증은 나에게기대하지 않은 선물'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글/ 문지현 정신과 전문의(동화신경정신과의원부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