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도 목사周(주)나라 유왕은 자기 아내 ‘포사’를 한번 멋있게 웃겨 즐거움을 주기 위해서 전국에 봉화를 올렸다. 산 위에 봉화불이 올라간 것을 본 주나라 내 제후들은 앞다퉈 군대를 동원하여 왕궁으로 집결하였다. 봉화는 국가가 위급할 때에 즉 전쟁이나 큰 재난이 일어나 군대나 사람을 모으기 위한 신호이기 때문이다.

심각하고 당황한 표정으로 왕 앞에 모인 제후들은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왕은 잔치판을 벌여놓고 제후들의 표정을 보며 왕후와 함께 배꼽을 잡고 웃는 것이 아닌가? 제후들을 골려줌으로 자신들의 재미거리로 삼기 위해 봉화를 올린 왕과 왕후를 바라보는 심정은 분노와 허탈 그 자체일 것인데. 제후들의 심정과 상관없이 이 기발한 아이디어를 낸 ‘석부’라는 간신에게 유왕은 천금의 상금을 하사하였다.

이것이 “千金買笑”의 어원이다. 얼마 후 오랑캐 군사 15,000여 명이 주나라를 침범해 왔다. 당황한 왕은 봉화를 급히 올렸지만 지난번에 속아 웃음거리가 되었던 제후들은 움직여주질 않았다. 결국 유왕은 적군들의 칼에 죽임을 당하였고 ‘포사’라는 왕후는 오랑캐 두목의 첩이 되고 말았다.

일시의 즐거움이나 한때의 편리함과 유익에 현혹되어 즐겨 거짓됨을 발하고, 자기의 거짓에 속은 상대방을 오히려 순진하고 어리석은 무능한 인간으로 치부해 버리고, 소수이기는 하겠지만 자녀에게도 은근히 무언으로 거짓과 요령을 가르키고 부추키는 악한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위의 고사와 유사한 ‘양치기 소년’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결국 양치기 소년은 사자의 밥이 되었고 유왕은 죽임을 당하고 포사는 오랑캐 두목의 노리개가 된 거짓의 결말에 대하여는 주변에 힘주어 알리고 있는지 궁금하다.

‘탈무드’에는 거짓말을 하여도 용서받을 수 있는 두가지가 있다고 재미있게 적고 있다. 첫째는 이미 누군가가 사 버린 물건에 대하여 의견을 구할 때에 설령 그 물건이 나빠도 훌륭하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 둘째는 친구가 결혼했을 때에는 반드시 부인은 미인이며 행복하게 살 것이라는 거짓말을 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필자가 보기에 격려와 위로의 차원이기는 하지만 굳이 추천할 거짓말은 못되는 듯하다. 이 세상은 거짓으로 가득차 있다. 비지니스의 현장에서, 법정과 의회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쏟아지는 서적들 속에서도 거짓은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거짓은 사회의 대기를 오염시켜 영적으로 혼탁한데, 사람들은 거짓된 허구 속에서 살아가면서, 인간은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필요 악이라 자위하며, 설사 싫어도 거부하지 못하며 순응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거짓을 말하는 것은 고등 지능을 가진 인간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지능이 가장 낮은 새들도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 새의 활동을 면밀히 관찰하는 동물심리학자들의 일치된 연구 결과이다. 먹이를 발견한 새가 그 먹이를 독점하기 위해 먹이가 있다는 신호를 안 보내고 반대 신호를 보낸다는 것이다. 또 숫컷이 암컷을 독차지하기 위해서도 거짓 신호를 보낸다는 것이 학자들의 결론이다. 이렇게 볼 때 인간이나 동물이나 거짓은 살아가기 위한 본능적 행위라고도 말할 수는 있겠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에게, 인간의 본능처럼 여겨지기에 이해하여야 한다는 면죄부는 줄 수 없는 법이다. 특히 자라는 어린아이들에게 성경에 나타나 있는 거짓이 가져다 주는 고통과 그 결말에 대하여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어린이들은 진실을 말하는 경우에 때론 인정을 받지 못하거나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에 거짓말을 하게된다고 한다.(일부 부모가 부추기는 경우도 흔히 봐왔지만) 어떤 아이가 어머니에게 형을 미워한다고 말할 때 어머니는 그 아이에게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야단을 친다. 그러면 그 아이는 그 후 자기가 거짓인줄 알면서도 형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어머니는 동생을 껴안고 입을 맞추며 과자를 사준다.

그러면 그 아이는 앞으로 어떻게 처신하며 살아갈 것인가? 그는 세상과 자기 어머니는 거짓말장이를 귀여워해 준다고 여길 것이다. 어린이가 정직하게 자라기 위해서는 자기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어린이들은 자기가 표현한 감정에 부모가 어떻게 반응하는 가에 따라 정직이 최선의 것인지 아닌지를 배우게 된다.

어릴 때부터 성인들의 고도의 처세술을 가르쳐 ‘애 어른’을 양산해내는 사회에서 도덕적으로 크게 기대할 것이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복수의 神인 ‘네메시스’는 거짓을 행하는 자를 향하여, 당신의 적수가 당신을 불신하고, 당신을 관망하는 주변이 당신을 불신하고, 당신의 편이라 생각되던 사람들로 불신을 받게되고, 당신의 친구가 당신을 불신할 것이라 저주하였지만, 성경은 더 나아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는 길(계21:8)임을 말씀하신다. 아이에게 어려서부터 거짓없는 순수한 삶의 유익을 가르쳐야 될 줄로 믿는다.(dahn1957@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