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일 급작스런 자살로 많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준 한국의 인기 탈렌트 정다빈씨가 자살 전날인 지난 9일 새벽 4시 40분에 자신의 홈페이지에 애절한 기도문을 올려, 자살 전 고인이 심한고통 상태에 빠져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큰 충격을 안겨준 것은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알려진 그가 왜, 어떻게 자살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자살을 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하는 충격과 함께 오는 혼란이 우리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합니다.
고인은 "은혜"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하나님, 정말 얼마 만에 주님을 불러 보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그동안 얼마나 나태해져 있었는지...모르겠습니다"라며 "지금 이 순간 주님은 저를 돌아보게 하시고 이렇게 글을 쓰게 하십니다...왜 그러시는지 알지 못하지만...종전까지 뭉쳐있던 아픔과 슬픔들이 지금 녹아 내립니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고인은 극심한 외로움을 겪고 있어 정신 장애에까지 이르렀던 것을 다음과 같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지금 저는 너무도 못 돼지고 사나워지고...주님을 외면한 채...방황하고 있습니다"라며 "아마 주님께서 오늘 지독한 외로움에 괴로워하는 저의 신음소리를 들으신거겠죠. 아...살아계신 주님이 제게 귀 기울이고 있다는 걸 못나고 못난 생각에 찌들어 있는 제가 잠시...잊었나봐요."
고인은 "주님이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저를 안아주십니다. 주님의 놀라우신...감히 상상도 못할 사랑 받고 있습니다. 자격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감사합니다... 주님 만이 치유하실 수 있는거군요... 애써 발버둥쳐도 아프기만 했었는데...주님만이 아시고...주님만이...고쳐주시는군요.." 하고 자신의 마지막을 그렇게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이러한 유서를 대하면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질문이 있습니다. 이렇게 주님께 애틋한 사랑을 고백하는 사람이 어찌 자살을 할 수 있는가? 의구심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시베리아에서 선교할 때, 그곳에 겨울만 되면 찾아오는 "겨울 우울증"에 대해 들은 적이 있습니다. 거의 6개월씩 추운 날씨와 더불어 눈에 덮힌 풍경과 함께 을씨년스런 모습을 오래동안 바라보며 겨울을 나는 시베리아 사람들은 거의 모든 사람이 예외없이 겨울 우울증에 시달린다고 합니다. 소위 SAD(Seasonal Affective Disorder)라고 불리기도하고 Winter Blue라고 불리기도 하는 겨울 우울증은 일조량이 적어지는 늦가을에 시작돼서 해가 길어지는 봄까지 지속되는 질환으로 식욕감퇴, 심한 우울증, 만성 피로감, 그리고 성욕감퇴로 나타나는 경우가 심해 그 증상이 다양하다는 것입니다.
Inside Out이라는 책에서 저자는 인간의 욕구를 세가지로 나누어서 설명합니다. 근본적인 욕구, 기본적인 욕구, 그리고 일상적인 욕구입니다. 일상적인 욕구는 의식주에 관련된 것으로 평범하게 모든 사람이 추구하는 욕구이며, 기본적인 욕구는 사회적인 동물로서, 이웃과 친구가 필요한 인간의 욕구를 말하며, 근본적인 욕구는 하나님과의 교통이 없는 외로움을 말하고 있습니다.
정 다빈씨의 경우, 근본적인 욕구가 채워졌음에 불구하고 기본적인 욕구를 극복할 수 없었던 영적 장애 증상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case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하나님과의 원활한 교통은 모든 것을 극복하게 하지만 정 다빈씨의 경우, Christian fellowship의 결여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가를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극도의 외로움은 만남을 통해 해소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만남, 믿음의 형제 자매들과의 만남을 통해 해소하는 것이 건강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지름길임을 알려줍니다.
홀로 외로움에 눈물을 흘리고 계신 분은 안 계십니까?
나의 아픔에 동참하고, 나의 모든 것을 이해해주고 받아주는 사람이 없다고 자기 스스로를 결박하고 계신 분은 안 계십니까? 여러분의 사연을 들어줄 분이 필요하지는 않으십니까? 여기 나눔의 장이 있습니다. 비록 만족스럽지 못하고, 흠이 많고, 타박도 많고, 말도 많지만, 그래서 오히려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교회, 믿음의 공동체로 오셔서 여러분의 외로움을 토로하십시오.
직접적인 언어로 토로하지 않아도 됩니다. 다른 말로 하시더라도 외로움을 해소하십시오. 그리고 올 겨울에는 책 한권을 읽으십시오. "그대 만난 뒤 삶에 눈떴네"(레이첼 나오미 레멘 著)을 읽으십시오. 그리고 기도와 묵상을 나누는 small group, 속회, 동아리 그룹에 속하십시오. 요한 웨슬레 목사님의 표현이 생각납니다. Christian conference is a means of grace(그리스도인들의 나눔은 은혜의 수단입니다) 18세기 때 쓰던 conference라는 단어는 회의를 말하지 않고 교제, 나눔을 의미합니다.
은혜의 수단을 동원하십시오. 이웃과 나누십시오. 그들이 다가오기 전에 내가 먼저 손 내미십시오. 오늘도 은혜의 지평선이 새롭게 열립니다.
고인은 "은혜"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하나님, 정말 얼마 만에 주님을 불러 보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그동안 얼마나 나태해져 있었는지...모르겠습니다"라며 "지금 이 순간 주님은 저를 돌아보게 하시고 이렇게 글을 쓰게 하십니다...왜 그러시는지 알지 못하지만...종전까지 뭉쳐있던 아픔과 슬픔들이 지금 녹아 내립니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고인은 극심한 외로움을 겪고 있어 정신 장애에까지 이르렀던 것을 다음과 같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지금 저는 너무도 못 돼지고 사나워지고...주님을 외면한 채...방황하고 있습니다"라며 "아마 주님께서 오늘 지독한 외로움에 괴로워하는 저의 신음소리를 들으신거겠죠. 아...살아계신 주님이 제게 귀 기울이고 있다는 걸 못나고 못난 생각에 찌들어 있는 제가 잠시...잊었나봐요."
고인은 "주님이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저를 안아주십니다. 주님의 놀라우신...감히 상상도 못할 사랑 받고 있습니다. 자격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감사합니다... 주님 만이 치유하실 수 있는거군요... 애써 발버둥쳐도 아프기만 했었는데...주님만이 아시고...주님만이...고쳐주시는군요.." 하고 자신의 마지막을 그렇게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이러한 유서를 대하면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질문이 있습니다. 이렇게 주님께 애틋한 사랑을 고백하는 사람이 어찌 자살을 할 수 있는가? 의구심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시베리아에서 선교할 때, 그곳에 겨울만 되면 찾아오는 "겨울 우울증"에 대해 들은 적이 있습니다. 거의 6개월씩 추운 날씨와 더불어 눈에 덮힌 풍경과 함께 을씨년스런 모습을 오래동안 바라보며 겨울을 나는 시베리아 사람들은 거의 모든 사람이 예외없이 겨울 우울증에 시달린다고 합니다. 소위 SAD(Seasonal Affective Disorder)라고 불리기도하고 Winter Blue라고 불리기도 하는 겨울 우울증은 일조량이 적어지는 늦가을에 시작돼서 해가 길어지는 봄까지 지속되는 질환으로 식욕감퇴, 심한 우울증, 만성 피로감, 그리고 성욕감퇴로 나타나는 경우가 심해 그 증상이 다양하다는 것입니다.
Inside Out이라는 책에서 저자는 인간의 욕구를 세가지로 나누어서 설명합니다. 근본적인 욕구, 기본적인 욕구, 그리고 일상적인 욕구입니다. 일상적인 욕구는 의식주에 관련된 것으로 평범하게 모든 사람이 추구하는 욕구이며, 기본적인 욕구는 사회적인 동물로서, 이웃과 친구가 필요한 인간의 욕구를 말하며, 근본적인 욕구는 하나님과의 교통이 없는 외로움을 말하고 있습니다.
정 다빈씨의 경우, 근본적인 욕구가 채워졌음에 불구하고 기본적인 욕구를 극복할 수 없었던 영적 장애 증상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case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하나님과의 원활한 교통은 모든 것을 극복하게 하지만 정 다빈씨의 경우, Christian fellowship의 결여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가를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극도의 외로움은 만남을 통해 해소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만남, 믿음의 형제 자매들과의 만남을 통해 해소하는 것이 건강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지름길임을 알려줍니다.
홀로 외로움에 눈물을 흘리고 계신 분은 안 계십니까?
나의 아픔에 동참하고, 나의 모든 것을 이해해주고 받아주는 사람이 없다고 자기 스스로를 결박하고 계신 분은 안 계십니까? 여러분의 사연을 들어줄 분이 필요하지는 않으십니까? 여기 나눔의 장이 있습니다. 비록 만족스럽지 못하고, 흠이 많고, 타박도 많고, 말도 많지만, 그래서 오히려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교회, 믿음의 공동체로 오셔서 여러분의 외로움을 토로하십시오.
직접적인 언어로 토로하지 않아도 됩니다. 다른 말로 하시더라도 외로움을 해소하십시오. 그리고 올 겨울에는 책 한권을 읽으십시오. "그대 만난 뒤 삶에 눈떴네"(레이첼 나오미 레멘 著)을 읽으십시오. 그리고 기도와 묵상을 나누는 small group, 속회, 동아리 그룹에 속하십시오. 요한 웨슬레 목사님의 표현이 생각납니다. Christian conference is a means of grace(그리스도인들의 나눔은 은혜의 수단입니다) 18세기 때 쓰던 conference라는 단어는 회의를 말하지 않고 교제, 나눔을 의미합니다.
은혜의 수단을 동원하십시오. 이웃과 나누십시오. 그들이 다가오기 전에 내가 먼저 손 내미십시오. 오늘도 은혜의 지평선이 새롭게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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