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면 무슨 일을 해도 꼭 실패하는 사람이 나온다. 사랑을 해도 꼭 주연의 들러리로서 짝사랑만 하다가 마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 그러한 역은 왜 필요한 것일까? 그러한 역은 시청자들의 마음을 조리게 하고 안타깝게 한다. 그리고 사랑에 실패했던 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래서 그 역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세상에 그분의 뜻을 펴 나가시기 위해서는 인생에서 실패하는 역을 맡는 사람도 필요한 것이다. 그래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주 안에서의 실패는 실패가 아니라 성공적인 삶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자신의 실패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는데 사용되어졌기 때문인 것이다.
그 예를 성경에서 들자면 호세아 같은 선지자의 삶이 그렇다. 그는 고멜이라는 음탕한 여인과 결혼을 하여 수시로 집나가는 그 여인을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서 집으로 다시 데리고 들어와야 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의 결혼 생활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의 메세지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하셨다. 너희들이 우상을 섬기며 영적 간음을 하였다 해도 나는 이처럼 너희들을 사랑하니 내게로 돌아오라는 말씀이였던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메세지를 전하기 위하여 호세아의 결혼은 실패한 결혼생활이 되어야 했던 것이다. 나는 이러한 성경의 위인들의 삶을 보며 현대의 청년들이 가져야할 진정한 신앙은 성공적인 삶 뿐만아니라 실패하는 삶을 통해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줄아는 진정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모두가 세상에서의 성공만이 인생을 인생답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실패를 하면 수치스러운 일로 여긴다. 그러한 영향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파급되어서 예수 믿는 사람은 무슨 일에서든지 성공을 해야한다는 오직 성공지향적인 삶을 강조하는 경향이 많다. 사업을 해도 잘 되어야만 하고 가정도 평안 해야만 하고… 이러한 생각들은 우리로 성공만을 위해서 질주하게 하고 실패를 당하면 주저 앉게 만든다. 목회 같은 성스러운 일을 해도 교인 수가 많은 목회를 하기 위하여 전력을 하며 교인 수가 적으면 실패한 것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목회자들도 가끔 있다. 그들은 교인이 많은 목회자를 만나면 “나는 이 정도 밖에 안되는 사람입니다”고 말을 한다. 그러나 교인의 수가 성공과 실패를 결정지어 주는 것은 물론 아니며 그것이 인간적으로 실패라 할찌라도 하나님이 그 실패가 필요해서 주셨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므로 진정한 목회자는 하나님이 나의 목회의 실패가 필요하셔서 이렇게 그의 뜻을 드러내시려 한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스티브 멕베이가 쓴 “은혜의 영성”이라는 책을 읽고 느낀 바가 컸다. 그는 8살때 신앙생활을 시작했고 10살 되던 해에 목사가 되는 소명을 받았다. 그리고 16살 때는 설교를 시작했고 19세에 목사가 되었다. 그때부터 그의 사역은 놀랍게 잘 되어만 갔다. 그는 점차 명성을 갖게 되어서 몇 곳의 교회로부터 청빙을 받아 목회지를 옮기게 되었는데 가는 곳마다 놀라운 부흥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애틀랜타의 어느 교회로부터 청빙을 받아 그곳으로 목회지를 옮겨 가게 되었다. 그리고 이전 처럼 최선을 다하여 여태까지 사용했던 모든 방법을 통하여 목회를 시작하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목회가 예전 같지 않고 너무나 힘이들었다. 교인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고 점점 줄어 드는 것이었다. 그는 이러한 현상이 믿어지지 않아서 계속 노력을 하여 보았지만 교회는 점점 약해져만 갔다. 그런 상황에서 그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게 되었다. 그는 하나님 앞에 머리를 숙이고 울부짖기 시작했다. “하나님 이번에는 나를 버리신 것인가요? 왜 나의 목회가 이렇습니까? 저는 이런 일을 절대로 용납할 수 없습니다”고 때를 썼다. 그때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응답은 참으로 간단한 것이었다.
“내가 먼저 원하는 것은 이 교회의 성장이 아니라 바로 너 자신이다.”
그는 이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말하는 성공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그날 밤에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성공을 통해서만 영광을 받고자 하시지 아니하고 실패를 통해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원하셨던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에서 나의 삶도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삶에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 나의 뜻대로 이루어졌을 때에야 가능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무엇인가 내가 꿈꾸고 열망하던 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나는 그것을 용납하지 못하고 실패로만 여길 때가 많았던 것이다. 내가 너무 이기주의였던 것이다. 그래서 나도 그날 밤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심을 하여 보았다. 그동안 너무 성공만을 위해서 달려왔는데 이제부터는 주님이 주시는 실패도 성공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며 살겠다는 의지를 갖게 된 것이다. 내가 최선을 다하였음에도 나에게 좌절이란 것이 오고, 사람들에게 인정을 못받는 사태가 벌어져도 하나님께서 그 실패를 통해서 이루실 일이 있으시다는 것을 생각하며 주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을 보면 주님의 사도들이한결 같이 인간적으로 보면 비참하게 이 세상에서 최후를 마친 것을 볼 수 있다. 어떤이는 형틀에서 목이 베어지고 어떤이는 피부를 벗기게 하는 형벌로 죽고 어떤 이는 평생을 밧모섬이라고 하는 곳에서 지내야 했다. 그들은 이 땅에서 실패한 인생들 처럼 비참히 죽어 갔다. 그러나 그들은 한결같이 기쁨으로 자기들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었다. 왜 그랬을까? 그들은 그들의 그런 비참한 삶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가 된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예수님 조차도 그러한 삶을 사셨다. 인생들이 저주의 상징이라고 하는 십자가 위에서 죄인들과 함께 형벌을 받으셨다. 그 당시 예수님은 수 많은 군중들로부터 희롱과 멸시 그리고 모욕을 당하셨다. 그는 이사야서에 기록된대로 저주 받은 인생이 된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길을 묵묵히 가셨다. 왜냐하면 그 길이 하나님이 인생을 구원할 도구가 됨을 아셨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내가 원하는 성공만을 성공으로 보아서는 안되고 주님을 위해 기꺼이 실패도 받아드리는 삶이 되어야하겠다.
얼마난 멋진 삶인가? 그리고 얼마나 확실히 하나님을 증명하는 길이 되겠는가? 실패 속에서도 하나님을 인정하며 찬양하는 그 모습은 오고 오는 모든이들에게 하나님이 하나님이심을 증명하는 길이 됨을 확실히 믿어 의심치 않는바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주 안에서의 실패는 실패가 아니라 성공적인 삶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자신의 실패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는데 사용되어졌기 때문인 것이다.
그 예를 성경에서 들자면 호세아 같은 선지자의 삶이 그렇다. 그는 고멜이라는 음탕한 여인과 결혼을 하여 수시로 집나가는 그 여인을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서 집으로 다시 데리고 들어와야 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의 결혼 생활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의 메세지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하셨다. 너희들이 우상을 섬기며 영적 간음을 하였다 해도 나는 이처럼 너희들을 사랑하니 내게로 돌아오라는 말씀이였던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메세지를 전하기 위하여 호세아의 결혼은 실패한 결혼생활이 되어야 했던 것이다. 나는 이러한 성경의 위인들의 삶을 보며 현대의 청년들이 가져야할 진정한 신앙은 성공적인 삶 뿐만아니라 실패하는 삶을 통해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줄아는 진정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모두가 세상에서의 성공만이 인생을 인생답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실패를 하면 수치스러운 일로 여긴다. 그러한 영향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파급되어서 예수 믿는 사람은 무슨 일에서든지 성공을 해야한다는 오직 성공지향적인 삶을 강조하는 경향이 많다. 사업을 해도 잘 되어야만 하고 가정도 평안 해야만 하고… 이러한 생각들은 우리로 성공만을 위해서 질주하게 하고 실패를 당하면 주저 앉게 만든다. 목회 같은 성스러운 일을 해도 교인 수가 많은 목회를 하기 위하여 전력을 하며 교인 수가 적으면 실패한 것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목회자들도 가끔 있다. 그들은 교인이 많은 목회자를 만나면 “나는 이 정도 밖에 안되는 사람입니다”고 말을 한다. 그러나 교인의 수가 성공과 실패를 결정지어 주는 것은 물론 아니며 그것이 인간적으로 실패라 할찌라도 하나님이 그 실패가 필요해서 주셨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므로 진정한 목회자는 하나님이 나의 목회의 실패가 필요하셔서 이렇게 그의 뜻을 드러내시려 한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스티브 멕베이가 쓴 “은혜의 영성”이라는 책을 읽고 느낀 바가 컸다. 그는 8살때 신앙생활을 시작했고 10살 되던 해에 목사가 되는 소명을 받았다. 그리고 16살 때는 설교를 시작했고 19세에 목사가 되었다. 그때부터 그의 사역은 놀랍게 잘 되어만 갔다. 그는 점차 명성을 갖게 되어서 몇 곳의 교회로부터 청빙을 받아 목회지를 옮기게 되었는데 가는 곳마다 놀라운 부흥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애틀랜타의 어느 교회로부터 청빙을 받아 그곳으로 목회지를 옮겨 가게 되었다. 그리고 이전 처럼 최선을 다하여 여태까지 사용했던 모든 방법을 통하여 목회를 시작하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목회가 예전 같지 않고 너무나 힘이들었다. 교인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고 점점 줄어 드는 것이었다. 그는 이러한 현상이 믿어지지 않아서 계속 노력을 하여 보았지만 교회는 점점 약해져만 갔다. 그런 상황에서 그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게 되었다. 그는 하나님 앞에 머리를 숙이고 울부짖기 시작했다. “하나님 이번에는 나를 버리신 것인가요? 왜 나의 목회가 이렇습니까? 저는 이런 일을 절대로 용납할 수 없습니다”고 때를 썼다. 그때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응답은 참으로 간단한 것이었다.
“내가 먼저 원하는 것은 이 교회의 성장이 아니라 바로 너 자신이다.”
그는 이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말하는 성공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그날 밤에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성공을 통해서만 영광을 받고자 하시지 아니하고 실패를 통해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원하셨던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에서 나의 삶도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삶에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 나의 뜻대로 이루어졌을 때에야 가능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무엇인가 내가 꿈꾸고 열망하던 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나는 그것을 용납하지 못하고 실패로만 여길 때가 많았던 것이다. 내가 너무 이기주의였던 것이다. 그래서 나도 그날 밤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심을 하여 보았다. 그동안 너무 성공만을 위해서 달려왔는데 이제부터는 주님이 주시는 실패도 성공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며 살겠다는 의지를 갖게 된 것이다. 내가 최선을 다하였음에도 나에게 좌절이란 것이 오고, 사람들에게 인정을 못받는 사태가 벌어져도 하나님께서 그 실패를 통해서 이루실 일이 있으시다는 것을 생각하며 주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을 보면 주님의 사도들이한결 같이 인간적으로 보면 비참하게 이 세상에서 최후를 마친 것을 볼 수 있다. 어떤이는 형틀에서 목이 베어지고 어떤이는 피부를 벗기게 하는 형벌로 죽고 어떤 이는 평생을 밧모섬이라고 하는 곳에서 지내야 했다. 그들은 이 땅에서 실패한 인생들 처럼 비참히 죽어 갔다. 그러나 그들은 한결같이 기쁨으로 자기들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었다. 왜 그랬을까? 그들은 그들의 그런 비참한 삶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가 된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예수님 조차도 그러한 삶을 사셨다. 인생들이 저주의 상징이라고 하는 십자가 위에서 죄인들과 함께 형벌을 받으셨다. 그 당시 예수님은 수 많은 군중들로부터 희롱과 멸시 그리고 모욕을 당하셨다. 그는 이사야서에 기록된대로 저주 받은 인생이 된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길을 묵묵히 가셨다. 왜냐하면 그 길이 하나님이 인생을 구원할 도구가 됨을 아셨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내가 원하는 성공만을 성공으로 보아서는 안되고 주님을 위해 기꺼이 실패도 받아드리는 삶이 되어야하겠다.
얼마난 멋진 삶인가? 그리고 얼마나 확실히 하나님을 증명하는 길이 되겠는가? 실패 속에서도 하나님을 인정하며 찬양하는 그 모습은 오고 오는 모든이들에게 하나님이 하나님이심을 증명하는 길이 됨을 확실히 믿어 의심치 않는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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