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가 어떻게 살다가 일생을 마칠 것인지를 결정해야만 한다. 평생 어떤 일을 하다가 저 세상으로 갈 것인지. 바람과 같이 지나는 인생이며, 헛되고 헛된 일들로 점철된 시간들이며, 강건해야 80이라는 인생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그날 그날을 연명하듯 살 것인가? 우리의 삶을 돌아보자. 그냥 환경이 이끄는 대로 떠내려가고 있지 않은가를……. 강물에서 그냥 떠내려가는 물고기는 죽은 물고기뿐이다.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지나온 삶을 점검하고 앞으로의 계획을 세워 본 지가 얼마나 되었는가? 정신을 쏙 빼놓는 놀이동산의 놀이기구와도 같은 삶은 우리를 눈앞에 닥친 것 외에는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휘두르고 있지는 않은가? 뭔가 의미 있는 일에 내 인생을, 내 시간을 투자해야 하지 않을까?

위대한 사람들에게는 삶의 주변의 크고 작은 일이 그다지 중요하지는 않았고 죽음의 위협이 그들의 사명감을 꺾지 못했다. 그들의 시선은 자신이 이 시대와 역사를 위해 해야 할 일에 고정되어 있었다.

가령 나의 개인적 용무보다 집안 전체의 또는 회사나 조직 전체의 성쇠가 더 크지 않은가? 조국을 빼앗긴 시대를 사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영화보다 국가를 위한 헌신이 더 큰 일이고 우리는 그렇게 조국을 위해 신명을 바친 사람들을 우리 국가나 민족이 존재하는 한 기억한다.

어느 날 큰일을 하나 발견했다. 삶을 바쳐도 전혀 아깝지 않은 정말로 크고 위대한 일을……. 전 세계를, 전 역사를, 전 우주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사업이 하나 있었고 그 일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업, 모두 죽어야만 할 것이 결정되어 있는, 모든 인류를 구하시고 사단을 멸하시는 그 사업에……. (우리는 자신의 삶이나 사업에 하나님을 동원하거나 참여시키려는 시도는 많이 하지만, 자신이 하나님의 사업에 뛰어들어 하나님을 도우려는 자세는 매우 박약하다.)

그리고 약속을 하나 받았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기껏 대통령이나 왕 수준의 약속이 아니다. 창조주의 약속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노력할 의무가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있다. 그러면, 그 나라는 언제 오리이까?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땅 끝까지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24:14)” “저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마24:31)”

선교란,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내 주변 또는 저 땅 끝 어딘가에 있을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을 찾아 달려 나가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