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들을 괴롭히는 흔한 것 중에 하나가 열일 것이다. 우리 아이도 열 때문에 참 많이도 고생을 했다. 덕분에 나도 잠을 못잔 날이 여러 번 있었다.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보는 바이러스며 세균, 이런 것들이 몸 안에 들어와서 그것들과 싸우려니 열이 심하게 나고 힘이 들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점점 병균들과 익숙해지면 나중에는 크게 힘들이지 않고도 이길 수 있으니 나이가 들수록 열이 나는 일이 줄어드는 것이다.

이렇듯 열이라는 것은 우리 몸이 외부에서 들어온 병원체와 싸우고 있다는 신호이므로 그 자체는 나쁠 것이 없다. 오히려 열이 나야 할 상황에서 열이 안 나는 경우는 심각한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백혈병으로 백혈구가 매우 낮아지던지 에이즈 말기로 백혈구가 기능을 못하게 되면 폐렴에 걸려도 열이 안 나는 경우가 있다.

또 열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지, 계속 올라 있는지, 떨어질 때 정상 온도까지 떨어지는지 등 열의 양상을 보고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데 무조건 열을 떨어뜨리면 그런 것을 놓치게 된다.

그러므로 열을 무조건 나쁘게 생각하거나 무조건 떨어뜨리려 해서는 안된다. 그런데도 열이 나면 매우 불안해하고 빨리 해열제를 써서 떨어뜨려야 마음을 놓는 분들이 꽤 있다.

물론 열자체가 사람을 힘들게 하기는 한다. 필자도 의사 생활을 하면서 원인을 알 수 없는 열 때문에 몇 번 고생한 적이 있다. 그때 얼마나 어지러웠던지 응급실로 가다가 쓰러질 뻔 한 적도 있다.
열이 오르면 왜 그렇게 구토가 나던지 참 힘들었다. 참기 어려울 때는 해열제 주사를 맞기도 했지만 그 당시 열을 무조건 떨어뜨리려 노력하지는 않았다.

연구보고에서도 해열제를 많이 써서 인위적으로 열을 떨어뜨리면 오히려 열이 나는 기간이 길어진다는 보고도 있다. 또 해열제를 많이 써서 열을 떨어뜨리면 편할지는 몰라도 병 자체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장염이나 폐렴 때 열이 많이 나는데 해열제를 쓰는 것이 장염이나 폐렴 자체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필자는 열이라는 것이 자연스러운 우리 몸의 반응이므로 이것을 인위적으로 막는 것은 별로 좋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아이도 열이 난다고 무조건 해열제를 먹이지 않는다. 열이 너무 높으면 열 자체로도 토하기 쉬우므로 많이 토한다던지 아니면 열 때문에 잠도 못자고 힘들어하면 해열제를 먹인다. 몇 일 전에도 감기 때문에 아이가 열이 나서 3일 정도 고생했는데 해열제는 별로 먹이지 않은 것 같다. 밤에 못자고 힘들어하기에 업고 안고 했더니 열이 나는 와중에도 잠들 수 있었다.

해열제를 무분별하게 쓰는 것은 나쁘지만 또 너무 해열제를 무서워 할 필요도 없다. 간혹 아무리 열이 나도 해열제가 몸에 안좋다고 쓰지 않는 부모들이 있는데 그럴 필요는 없다. 해열제는 몸에 나쁜 것은 아니며 일상적으로 쓰는 양으로는 간에도 전혀 부담이 되지 않는다. 열이 심하면 어린아이들은 쉽게 탈수현상을 일으키는데 이럴 때는 적절히 해열제를 써서 열도 떨어뜨리고 물이나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 꼭 필요하다.

남용하지 않고 적절히 사용하면 해열제는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주는 꼭 필요한 약이다.

/원영일(나우병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