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늘 법적인 분쟁을 보면서 ‘방황하는 청소년 문제’, ‘교회 안에서의 신앙생활이 직장이나, 가정에서의 삶과 연결되지 못하는 문제’, ‘이혼 일보 직전에 있는 부부의 문제’, ‘수십만 미성년 소녀들이 매춘을 하는 성적 타락’, ‘기독교인은 많으나 의인이 희귀한 문제’, ‘수고하고 애써도 열매가 없는 고통스러운 삶의 문제’등의 원인이 무엇일까를 생각하고 그 대안을 위하여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저는 그 문제들의 원인 중 하나는 하나님께서 주신 부부관계가 파괴되었기 때문임을 깨닫고 그 대안을 위하여 기도하던 중 깨닫고 정리한 것 한 가지를 소개합니다.

어느 날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절도죄로 구속이 되어 법률사무소에 상담을 하러 온 의뢰인이 한탄을 하며 “내가 그 놈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아십니까? 그 녀석이 사달라고 하는 것은 다 사주었고, 목욕탕도 같이 갔고, 심지어는 오락실, 노래방에도 같이 갔습니다. 그런데, 이 놈은 왜 이 애비 속을 이토록 썩이는지 왜 도둑질을 하고, 왜 나를 사랑하지 않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라고 호소를 하였습니다.

저는 너무나도 자신 만만하게 아들을 온전히 사랑하였다고 말을 하는 그에게 아무 말을 하지 않고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며 한참을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진실로 자신 있게 아들을 사랑하셨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말을 믿지 못하는 제가 답답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그렇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고린도전서 13장을 펴고 “그렇다면 아버지께서 교회의 집사님이시므로 이해를 하시리라 믿고 아들을 향한 사랑의 점수를 매겨 봅시다. 아들에 대하여 오래 참으셨습니까? 온유하셨습니까? 혹 자랑을 하지는 않으셨습니까? 아니면, ‘나는 너에게 이렇게 해주었는데 너는 나를 위하여 해 준 것이 무엇이 있느냐?’고 늘 다그치지는 않으셨는지요. 그리고 아들에게 무례히 행치 않고, 성내지 않고, 교만하지 않고, 아들의 입장에 서서 아들의 유익을 구하고 아버지의 유익을 구하지 않으셨습니까? 아들이 속을 썩이고 말을 듣지 않더라도 아들을 향하여 악한 것을 생각치 않으셨고, 아들에게 힘들고 어렵더라도 진리와 함께 기뻐하라고 가르치시고 본을 보이셨습니까? 또한 아들에게 불의를 기뻐하지 않도록 가르치시고 몸소 그 본을 보이셨습니까? 그리고 아들이 실망을 주고 빗나가더라도 아들의 모든 것을 믿어주고, 아들을 주님을 향한 소망 가운데 바라보시고, 아들의 언행을 견디고, 참으셨습니까?”라고 나직하고 심각하게 물어 보았습니다.

방금 전 까지만 하더라도 아들을 온전히 사랑하였다고 말한 그는 두 눈이 벌겋게 충혈이 되고 눈물을 글썽이며 “제가 아들에게 한 것은 고린도전서 13장에 사랑으로 기록된 15가지 중 2가지에만 해당됩니다”라고 고백을 하였습니다. 저는 그 분에게 ‘아들을 향한 나의 사랑의 점수는 15문제 중 2문제만 맞춘 셈이므로 100점 만점에 13점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아들을 향한 사랑이 13점에 불과 한데도 아들을 향한 저의 사랑이 100점이라고 착각하고 아들은 나에게 80점, 90점의 사랑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을 하므로 항상 괘씸하고 야속한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라고 권면하고 그 분을 위로하였습니다.

그리고 제 자신에게 반문을 하였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향하여 사랑의 15가지 항목 중 몇 가지를 행하고 있는가?” “나의 아내, 자식들, 부모님을 향하여 사랑의 15가지 항목 중 몇 가지를 행하고 있는가?”라고 묵상을 하며 체크를 하였습니다.

제 양심에 비추어 오래 참고 있으면 O 아니면 ×, 온유한 것 같으면 O 아니면 ×, 투기하지 않다고 여기면 O 아니면 ×, 제 자랑을 하지 않으면 O 아니면 ×표, 무례히 행치 않으면 O 아니면 ×, 제 자신의 유익만을 구하지 않으면 O 아니면 ×, 성내지 않으면 O 아니면 ×,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으면 O 아니면 ×, 불의를 기뻐하지 않으면 O 아니면×, 진리와 함께 기뻐하면 O 아니면 ×, 모든 것을 참고 있으면 O 아니면 ×, 모든 것을 믿으면 O 아니면 ×, 모든 것을 바라고 있으면 O 아니면 ×, 모든 것을 견디고 있으면 O 아니면 ×표를 하여 그 날 그 날 나의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점수, 아내를 향한 사랑의 점수, 가족을 향한 사랑의 점수를 체크하였습니다.

만일 O표가 15개이면 그 순간의 사랑의 점수가 100점이나, 6개이면 40점(=6÷15×100), 3개이면 20점, 해당되는 것이 없으면 0점이므로 그 때 그 때 나의 상태를 점검하고 부족함을 회개하며 기도를 드렸습니다.

나는 내 남편(아내)의 몇 점짜리 아내(남편)일까요?

내 인생의 점수는 과연 몇 점일까요. 그 것은 언변, 돈, 명예, 권세, 활동영역으로 평가될 수 없고 사랑으로 평가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언변이 좋아도 사랑이 없으면 그 말은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하고(고린도전서 13장 1절), 어떠한 돈, 명예, 권세가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자’에 불과하며(13장 2절), 부지런히 동분서주 활동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결국 ‘아무 유익이 없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13장 3절)

이제 고린도 전서 13장 4절-7절에 따라 현재 이 순간 바로 나의 아내(남편)을 향한 사랑을 진지하게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배우자의 언행에 대하여 오래 참고 있습니까?
배우자를 향한 오래 참는 탱크가 크고 넓습니까? 아니면 조그마한 물살이 다가와도 쉽고 자주 무너지는 작고 보잘 것 없는 웅덩이에 불과합니까?

*배우자에게 온유합니까?
남에게 온유한 것은 진실이 아닌 가식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노출하는 배우자에게 하는 것은 나의 실상입니다. 배우자에게 온유한 사람은 누구에게나 온유할 수 있으나 배우자에게 온유하지 못한 사람은 온전히 온유할 수 없습니다.

*배우자를 투기하지 않습니까?
배우자가 복되고 형통하게 되는 것이 꿈에도 소원이면 배우자를 투기하지 않은 것이나 그렇지 못하고 ‘잘되나 두고 보자’, ‘늙어서 두고 보자’라는 마음이 있으면 배우자를 투기하는 것입니다.

*배우자에게 나를 내세우고 자랑하지는 않습니까?
배우자를 존중히 여기고 나보다 낫게 여기면 자랑하지 않은 것이나 배우자의 가문을 무시하고 나의 공로를 내세우며 상대방을 비하하면 배우자를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배우자에게 교만하지 않습니까?
눈에 보이는 배우자에게 겸손하지 못하고 어떻게 눈에 보이지 않은 하나님께 겸손하겠으며 배우자의 영혼을 귀하게 여기지 못하고서 죄짓고 불의한 영혼을 어떻게 귀하게 여길 수 있겠습니까? 남편과 아내가 주님의 이름으로 하나가 되어 서로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며 겸손히 섬기면 하나님께서는 배우자를 통하여 놀라운 은혜와 평강을 주실 것입니다.

*배우자에게 무례히 행치 않습니까?
아무리 좋은 이야기일지라도 상대방에게 무례히 행하면서 하는 것은 울리는 꽹과리일 뿐이고, 아무 것도 아니며 아무 유익도 없는 것입니다.(고린도전서 13장 1절~3절)

*배우자에게 자신의 유익만을 구하지 않습니까?
배우자를 나의 욕구를 충족하고 출세의 디딤돌로만 생각하는 것은 배우자를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떠한 분쟁이라도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보면 그 해결의 실마리가 풀리나, 자신의 유익만을 구하면 그 해결책이 보이지 않습니다. 늘 상대방의 입장과 형편을 살필 수 있도록 사랑을 구하는 기도를 드리고 ‘어떻게 하면 상대방을 유익하게 할까’를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풍요롭고 기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배우자에게 성을 내지 않습니까?
상대방에게 과도하게 혈기를 내는 것은 오래 참는 것도 아니고, 온유한 것도 아니며, 자랑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나는 이렇게 잘 해주었고, 이렇게 옳은 일을 하는데도 상대방이 나에게 대해 주는 것이 못마땅하다는 이유로 혈기를 내게 되므로), 무례히 행하는 것이고, 상대방의 입장과 인격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격한 감정만을 퍼붓게 되므로 자기의 유익만을 구하는 것이고, 성을 내는 순간에는 남의 입장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악한 말과 행동을 서슴치 않고 쏟는 상황이므로 악한 것을 생각하고, 상대방을 믿거나 바라거나 견디거나 참는 것과는 전연 관계가 먼 행동을 하는 것이므로 사랑을 전연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성을 내는 이유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말도 되지 않는 말을 하지는 않으셨는지요. 혈기를 자주 내는 것은 ‘사랑이 병든 것’입니다.
혈기가 잦은 분들은 그것이 나의 성격이니 할 수 없다고 포기하지 마시고 ‘사랑이 중증 병에 걸린 것’으로 여기고 그 치유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드리십시오.

*배우자를 사랑하는 것은 악한 것을 생각지 않으며 배우자를 대하는 것입니다.
내 배우자 외의 이성에 대하여 음욕을 품거나, 정도가 지나치게 선호하면서도 이를 숨기고 배우자에게 사랑의 행위를 하는 것은 울리는 꽹과리, 아무 것도 아닌 것, 아무 유익이 없는 속임수에 불과합니다. 내 배우자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히는 죄를 지으면서 이를 숨기며 ‘사랑’을 외치는 것은 외식하는 것이고 회칠한 무덤일 것입니다.

*배우자를 사랑하는 것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는 것입니다.
배우자는 서로 서로 불의에 오염되거나 빠지지 않도록 지켜줄 의무가 있습니다. 불의를 행하는 배우자를 동조하는 것은 배우자를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혼탁하게 된 이유는 배우자가 서로 서로를 불의를 기뻐하는 데에서 견제하지 못하고 방조(幇助)하거나 동조하였기 때문입니다. 아내는 남편이 가져오는 돈이 불의한 것이면 과감하게 거부하고 아무리 권세가 있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불의를 기뻐하는 것이면 과감하게 물러나게 충고를 하고, 남편으로 하여금 불의를 기뻐하지 않는 지혜와 용기를 갖도록 기도를 드려야 남편을 사랑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남편에게도 아내로 하여금 불의를 기뻐하지 못하도록 기도하고 사랑으로 권면할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형법에 규정된 공범(共犯)에는 3 종류가 있습니다. 함께 같은 생각을 하고 행동을 같이하여 죄를 범하는 공동정범(共同正犯), 상대방에게 죄를 짓도록 하고 자신은 뒤에서 조정하는 교사범(敎唆犯), 상대방이 죄를 짓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죄를 짓지 말도록 막지 않고 내 버려두는 방조범(幇助犯)입니다. 따라서 부부는 함께 죄를 범하거나, 자신은 행동을 하지 않더라도 상대방에게 죄를 짓게 하거나, 상대방이 죄 짓는 것을 알면서도 막지 않고 내버려두는 것 모두 하나님 앞에서 불의를 기뻐하는 공범입니다.

*배우자를 사랑하는 것은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떠나서는 진정한 기쁨을 누릴 수 없습니다. 상대방이 진리 가운데 있으면 비록 가난하고 외롭더라도 격려해주고 계속 진리 가운데 거하며 승리하도록 힘을 북돋아 주는 것이 배우자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배우자의 모든 것을 참고 있습니까?
모든 것을 참는 것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진리 가운데에서 모든 것을 참고 견디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능력으로는 모든 것을 참는 것과 불의를 기뻐하지 않는 것이 조화될 수 없습니다. 불의를 기뻐하지 않으면 참을 수 없는 일이 허다하고 모든 것을 참다보면 불의를 보고도 가만히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늘 주님의 은혜 가운데 있어야 불의를 기뻐하지 않으면서도 배우자의 모든 것을 참을 수 있습니다.

*배우자의 모든 것을 믿고 있습니까?
또 나 자신은 배우자가 나를 믿도록 행동하고 있습니까? 상대방을 불신하는 것도 나쁜 것이지만 불신을 조장하는 것도 나쁜 것입니다.

*배우자의 모든 것을 바라고 있습니까?
상대방을 이기적이고 좁은 나의 눈으로만 보면 상대방의 결점만이 보여 실망하고 상대방에게 소망이 없으나 상대방을 하나님의 마음과 눈으로 보면 천 가지의 결점이 있더라도 한 가지의 장점을 보며 소망 가운데 사랑할 수 있습니다. 늘 상대방을 하나님께서 상대방을 아시는 것처럼 나도 내 남편(아내)의 형편과 사정을 알 수 있도록 기도드리십시오.

*배우자의 모든 것을 견디고 있습니까?
견디는 것은 사람이나 물체가 주위의 어려운 상황이나 압력 따위에 굽히지 않고 일정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배우자를 사랑하는 데는 희생이 따릅니다. 그것은 우리의 생활을 지치게 할 수도 있고, 힘들게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 그러한 것도 견디며 우리의 가정을 기쁨 가운데 유지시키는 것입니다.
당신은 현재 위 15개의 사랑의 항목 중 몇 개의 항목에 해당됩니까? 해당되는 것이 별로 없습니까? 그러나 실망하지 마십시오. 해당되는 것이 없더라도 비로소 나의 사랑의 실상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기준으로 보면 우리는 얼마나 사랑이 부족하고 무정한 죄인입니까? 때로는 목숨을 다 바쳐 사랑을 한다고 하면서도 조그마한 일에도 기분이 상하거나 비위에 거슬리면 얼마나 심하고 과격한 언동을 하며 상대방을 부인하고 무시하고 있습니까? 지금 나의 남편이(아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괘씸하게 여기고 섭섭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나는 그를 사랑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늘 섭섭하고 분한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이 순간 하나님 앞에 솔직히 내가 나의 배우자에게 행하는 행동을 고린도전서 13장 4절-7절에 비추어 묵상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나는 상대방에 대하여 오래 참지도 않았고, 온유하지도 못했고, 내가 그에게 베풀었다고 여기는 것을 늘 자랑하였고, 교만하였고, 무례히 행하였고, 성을 내었고, 항상 무엇인가 잘못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악한 것을 생각하였고, 시기하였고, 내 유익을 구하였고, 그를 믿지도 바라지도 견디지도 참지도 않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내가 상대방을 사랑하지 않는 이상 그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더 이상 상대방을 섭섭하고 괘씸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먼저 나에게 상대방을 향한 사랑이 회복될 수 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남편과 아내가 하나가 되고 서로 서로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남편과 아내가 서로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주님께서는 남편과 아내에게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으며, 몸의 소생과 토지의 소산이 복을 받고,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으며, 가정을 깨뜨리려는 대적들이 일어나 치려하면 하나님께서 완전히 패하게 하시며, 남편과 아내의 손으로 하는 모든 일이 형통케 되는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신명기 28장 1절-14절). 그 축복을 받는 것이 분쟁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첩경일 것입니다. 그 축복을 받는 부부가 사회의 3%만 차지하게 되어도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분쟁은 하나하나 종식될 것입니다.

/한국가정사역연구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