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TV채널을 돌리다가 일반인을 응시자로 선발한 후, 모의 취업면접에 임하게 하여 그 잘잘못을 평가하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과연 예리하고 매서운 질문을 쏟아내는 심사위원들은 마치 응시자를 마루타 삼아 갈갈이 찢어 해부하려는 것 같았다. 응시자들도 많이 단련된 듯, 마네킹 같은 자세에 경직된 예의를 갖추며 그들의 질문에 하나씩 응해 갔다.

요즘 입사전형에 업무 능력수행 평가를 위한 면접고사의 비중이 커지는 만큼, 그 내용도 구술, 영어, 논리 등 다양한 형태를 보인다고 하는데, 그 때문인지 아주 기발하거나, 다소 현실성이 떨어지는 질문들까지도 심심찮게 던져지고 있었다.

“예컨대, 상사가 기러기 아빠인데 그 상사가 가족이 없어 외롭다며 매일 저녁 같이 술을 마시자고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요?”

“일단, 마시겠습니다. 그리고 인간적으로 친분을 쌓겠습니다. 그런 후에 나의 사정을 설득하여 적당히 거절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기의 사생활까지 희생해가며 상사로부터 예쁨을 받겠다는 이야기인데, 혹시 이런 당신의 행동이 아부에 속하지는 않을까요? 그리고 다음날 회사의 업무에 지장이 있지는 않을까요?”

“......”

결국 이런 식이다. 술을 함께 마시겠다면 다음날 회사 업무에 지장이 있다 하고, 안 마시겠다면 동료와의 팀워크를 깨겠다는 것이냐며 공격하고 있다. 물론, 이런 논리적 위기상황을 어떻게 헤쳐갈 수 있는지를 가늠하겠다는 긍정적 의도도 숨어 있겠지만, 상황을 바꾸어서 실제로 그 심사위원들에게 위와 같은 경우가 닥친다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궁금해진다. 웬만한 ‘능구렁이’가 되지 않는다면 아마 ‘적당히’ 알아서 순간순간 대처할 수밖에 없으리라...

인간관계에 관한 문제에는 정답이 없다는 얘기도 있는데, 어찌 우문을 하고 현답을 바라는지 모를 일이다. 또, 모든 상황에 낯선 응시자의 입장은 그저 눈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논리를 따지고 임기응변을 따지는 세상이라지만, 약자의 입장에 대한 배려가 전제되지 않는 이런 면접은 지양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대안으로 말하자면 며칠간 동료와의 합숙이나, 자유토론 등을 모니터링하면서 응시자의 심성과 상황대처 능력을 평가하는 것이 좀 더 긍정적일 것 같다. 이 커리큘럼을 통하여 타인을 먼저 배려하고 섬기려는 순수와 착함을 평가기준에 절대적으로 반영시켜내는 것이 오히려 그 기업의 가장 확실한 경쟁력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글로벌시대에 최우선적인 경쟁력으로 평가받는 것이 외국어와 학력, 능력 등이라면, 그 가치를 배가시켜 주는 것은 순수와 착함이라고 본다. 1차(필기) 고사를 통과한 재원이라면 능력 등은 이미 검증 받았을 터, 2차(면접) 고사는 잔머리 굴리는 정도를 채점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착하고 순수한지를 파악해야 할 것이다.

예컨대, 위와 같은 질문이 아니라 ‘봉사활동의 경험담’이라든지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잘했던 일’에 대한 대답을 요구한다든지, 혹은 그 반대의 질문 등이 그것이다. 응시자의 입장에서도 이런 질문들이 쏟아질 것을 예상한다면 억지로라도 봉사활동 한두 번쯤은 다 경험하려 들지 않을까 싶다.

대답하기 애매모호한 질문만 쏟아놓고 안절부절 못하는 응시자를 고소한 듯 쳐다보는 소위 이 시대의 ‘어른’들 아래 최첨단 기술을 외국에 팔아먹고 호의호식하는 차세대 직장인은 끊임없이 배출될 것이며, 죄의식 없이 횡령이나 금품수수 등을 자행하고 정치자금이나 갖다 바치는 악순환에 시달리게 될 것임은 자명하다.

그러므로 기업경영에 있어 개인의 능력이 어쩔 수 없는 최선으로 선택된다면, 착함과 순수는 차선의 경쟁력으로나마 그 가치가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

기업의 경쟁력을 넘어 국가의 경쟁력까지 고려한다면 더욱 더 말이다.

이수종 / 한국기독교문학네트워크 공동대표, 계간 믹스앤매치 편집주간, 시인, 시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