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 21세기형 교회는 화해를 중시한다.
예전에 중앙 아메리카 온두라스에서 목회자 세미나가 열렸을 때의 일이다. 세미나에 참석한 한 미국인 목회자가 “미국 교회가 이 지역에 전했던 복음 가운데 상당수가 온전한 복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들은 미국의 사고방식이 가미된 것이었습니다. 교회가 보여준 많은 문제들- 분열, 경쟁, 시기 등-은 중앙 아메리카의 목회자들이 북미 선교사가 그들에게 내비쳤던 모습을 그대로 답습한 결과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성령님을 매우 가슴 아프게 하였습니다" 라고 고백하였다. 그러자 그 자리에 참석한 모든 목회자들이 손을 붙잡고 미국이 수많은 지역에서 저지른 잘못을 대신 회개했다. 주님께 그 동안의 잘못된 사고방식을 끊어달라고 간구했다.
오늘날에는 이와 같은 종류의 회개가 훨씬 더 많이 일어나고 있다. 하나님 아버지께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시고 이 땅을 치유해 달라고 간구하면서 겸손하게 무릎꿇는다. 우리가 하나님께 인종주의와 차별주의, 그리고 부정(不正) 때문에 상처받은 자들을 치유해달라고 간구 할 때, 긍휼의 마음이 우리의 영혼 속에서 솟아오르게 된다. 21세기형 교회는 이러한 치유와 화해가 각종 모임과 공동체간에 이루어져야 한다.
7. 21세기형 교회는 영적전쟁에 새로운 이해를 갖는다.
1986년 프랑크 페레티(Frank E. Peretti)가 쓴 책, 「암흑세계(This Present Darkness)」에서는 영적전쟁에 대한 새로운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 소설은 영적전쟁에 대한 개념을 매우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암흑세계」는 출간당시 그야말로 충격의 화제작이었다. 그간 소개되었던 신앙소설들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깬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21세기형 교회는 영적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필요한 전략을 치밀하게 세워야 한다. 우리는 영적전쟁의 목적이 전투에 있지 않고 그리스도의 주권이 모든 지역에 미치도록 하는데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 사회를 결박하고 있는 마귀의 세력을 대적하면서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감금된 자를 깊이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8. 21세기형 교회는 교회연합을 추구한다.
대부분 목회자들은 교단적 배경을 가지고 상호간에 교류활동을 갖고 있다. 교단별로 열리는 전국적인 집회와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상당한 거리를 여행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정작 자기 교회에서 반경 10킬로미터 미만에 있는 교회의 목회자와 지도자가 누구인지 잘 모른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교회연합의 끈을 통해 교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어 주고 계신다.
수년 전 미국에서 여러 목회자들이 펜실베니아에 있는 해리스버그(Harrisburg)에서 기도모임을 갖기 위해 함께 모였다. 교파와 인종을 초월하여 12명의 목회자들이 정규적으로 모임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이 사는 도시에서 교회연합을 위한 대헌장을 공포하기에 이르렀다. 해리스버그는 중앙에 흐르는 강으로 나뉘어진다. 이러한 지형적인 분리가 인종적이고 사회경제적인 분리까지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 모임의 참석자들은 이 지역의 교회들을 하나로 통일시켰고, 그 강에 놓여 있는 다리를 지나 수천 명의 성도들이 손을 잡고 인간 띠를 만들었다. 그때 기독교인들은 강 아래로 내려가 200명 이상이 침례를 받았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도시를 한 교회나 한 명의 목회자에게 주시지 않는다. 도시 전체를 개종시키기 위해 그리스도의 몸 전체를 사용하신다.
9. 21세기형 교회는 가난한 이웃에게 아낌없이 나눠준다.
어떤 도시에 거주하고 있는 교회 성도들이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기 위해 자신의 생활방식을 간소화한다고 상상해 보자. 모든 성도가 소유하려고 애쓰기보다는 청지기 정신으로 그들의 소유물을 가난한 자들에게 거저 주려고 하는 것을 상상해 보자. 신약시대 초대교회에서 놀라운 기사와 이적이 정기적으로 일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성도들이 이 땅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않고 자신의 소유와 재산을 팔아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누어 주었기 때문이 아닌가?
미국 애틀란타에서 운영되는 한 도시선교 운동은 교회가 주변의 가난한 자들에게 큰 영향력을 끼쳤던 가장 좋은 예이다. 이 운동에 참여하는 봉사자들은 매일 노숙자들(the homeless)에게 먹을 것과 보금자리를 제공해 주고 있다. 도심을 중심으로 사역하는 한 이러한 운동은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이 사역의 핵심은 주일 예배의 일부로서 식사를 제공하는 것이다. 함께 식사를 하는 식탁공동체는 예수님께서 그의 사역전반에 걸쳐 강조하신 것이다. 누군가에게 음식을 제공할 때, 놀라울 정도로 큰 사랑과 보살핌이 서로에게 베풀어진다.
예수님께서는 열두 사도에게 다른 선물을 주시지 않으셨다.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드셨다. 우리는 가난한 자와 병든 자, 그리고 잃어버린 자들을 방치해 두어서는 안 된다. 예수님처럼 우리도 구체적인 행함으로 그들을 사랑의 품안으로 끌어안아야 한다.
10. 21세기형 교회는 자유롭게 예배를 드린다.
이제까지 우리는 예배를 드릴 때 감정을 억제시켜 왔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익숙한 문화만 받아들이려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예배분위기는 오늘날 급변하고 있다. 특히, 미국 교회는 예배를 드릴 때 춤을 추는 것에 대해 상당한 거부반응을 보여왔다. 미국 문화 속에는 민속춤에 대한 전통을 담고 있지 않다. 다른 나라의 문화를 들여다보면, 민속춤은 가족과 친구들간의 결속을 다져주며, 전통의식을 거행하는 데 도움이 되는 건전한 행위로 비쳐진다.
그러나 미국에서의 춤은 거의 폐쇄적으로 나이트클럽을 연상시키며 강한 성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문화적인 함정이 교회로 하여금 주님께 자신을 내어드릴 때, 춤을 추는 행위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로 인한 성령의 기름부음과 역사를 방해하도록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자유롭게 예배를 드리길 원하신다. 예배 중에 춤추는 것이 반드시 내적인 자유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거룩한 춤 속에는 우리가 갖고 있는 억압과 두려움을 하나님께 맡기면서 그분을 자유롭게 경배할 때 오는 해방감이 있다.
오늘날 교회에 오는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문제가 해결되기를 원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구하고자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21세기 사회의 변화 속도는 그 어느 때보다 빠르다. 이러한 환경은 새로운 각도의 교회사역을 요청하고 있다. 변화에 대처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우리의 능력은 위축되고 만다.
이장석 부장(교회성장연구소 전략개발부, issacljs@empal.com)
예전에 중앙 아메리카 온두라스에서 목회자 세미나가 열렸을 때의 일이다. 세미나에 참석한 한 미국인 목회자가 “미국 교회가 이 지역에 전했던 복음 가운데 상당수가 온전한 복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들은 미국의 사고방식이 가미된 것이었습니다. 교회가 보여준 많은 문제들- 분열, 경쟁, 시기 등-은 중앙 아메리카의 목회자들이 북미 선교사가 그들에게 내비쳤던 모습을 그대로 답습한 결과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성령님을 매우 가슴 아프게 하였습니다" 라고 고백하였다. 그러자 그 자리에 참석한 모든 목회자들이 손을 붙잡고 미국이 수많은 지역에서 저지른 잘못을 대신 회개했다. 주님께 그 동안의 잘못된 사고방식을 끊어달라고 간구했다.
오늘날에는 이와 같은 종류의 회개가 훨씬 더 많이 일어나고 있다. 하나님 아버지께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시고 이 땅을 치유해 달라고 간구하면서 겸손하게 무릎꿇는다. 우리가 하나님께 인종주의와 차별주의, 그리고 부정(不正) 때문에 상처받은 자들을 치유해달라고 간구 할 때, 긍휼의 마음이 우리의 영혼 속에서 솟아오르게 된다. 21세기형 교회는 이러한 치유와 화해가 각종 모임과 공동체간에 이루어져야 한다.
7. 21세기형 교회는 영적전쟁에 새로운 이해를 갖는다.
1986년 프랑크 페레티(Frank E. Peretti)가 쓴 책, 「암흑세계(This Present Darkness)」에서는 영적전쟁에 대한 새로운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 소설은 영적전쟁에 대한 개념을 매우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암흑세계」는 출간당시 그야말로 충격의 화제작이었다. 그간 소개되었던 신앙소설들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깬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21세기형 교회는 영적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필요한 전략을 치밀하게 세워야 한다. 우리는 영적전쟁의 목적이 전투에 있지 않고 그리스도의 주권이 모든 지역에 미치도록 하는데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 사회를 결박하고 있는 마귀의 세력을 대적하면서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감금된 자를 깊이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8. 21세기형 교회는 교회연합을 추구한다.
대부분 목회자들은 교단적 배경을 가지고 상호간에 교류활동을 갖고 있다. 교단별로 열리는 전국적인 집회와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상당한 거리를 여행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정작 자기 교회에서 반경 10킬로미터 미만에 있는 교회의 목회자와 지도자가 누구인지 잘 모른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교회연합의 끈을 통해 교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어 주고 계신다.
수년 전 미국에서 여러 목회자들이 펜실베니아에 있는 해리스버그(Harrisburg)에서 기도모임을 갖기 위해 함께 모였다. 교파와 인종을 초월하여 12명의 목회자들이 정규적으로 모임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이 사는 도시에서 교회연합을 위한 대헌장을 공포하기에 이르렀다. 해리스버그는 중앙에 흐르는 강으로 나뉘어진다. 이러한 지형적인 분리가 인종적이고 사회경제적인 분리까지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 모임의 참석자들은 이 지역의 교회들을 하나로 통일시켰고, 그 강에 놓여 있는 다리를 지나 수천 명의 성도들이 손을 잡고 인간 띠를 만들었다. 그때 기독교인들은 강 아래로 내려가 200명 이상이 침례를 받았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도시를 한 교회나 한 명의 목회자에게 주시지 않는다. 도시 전체를 개종시키기 위해 그리스도의 몸 전체를 사용하신다.
9. 21세기형 교회는 가난한 이웃에게 아낌없이 나눠준다.
어떤 도시에 거주하고 있는 교회 성도들이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기 위해 자신의 생활방식을 간소화한다고 상상해 보자. 모든 성도가 소유하려고 애쓰기보다는 청지기 정신으로 그들의 소유물을 가난한 자들에게 거저 주려고 하는 것을 상상해 보자. 신약시대 초대교회에서 놀라운 기사와 이적이 정기적으로 일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성도들이 이 땅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않고 자신의 소유와 재산을 팔아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누어 주었기 때문이 아닌가?
미국 애틀란타에서 운영되는 한 도시선교 운동은 교회가 주변의 가난한 자들에게 큰 영향력을 끼쳤던 가장 좋은 예이다. 이 운동에 참여하는 봉사자들은 매일 노숙자들(the homeless)에게 먹을 것과 보금자리를 제공해 주고 있다. 도심을 중심으로 사역하는 한 이러한 운동은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이 사역의 핵심은 주일 예배의 일부로서 식사를 제공하는 것이다. 함께 식사를 하는 식탁공동체는 예수님께서 그의 사역전반에 걸쳐 강조하신 것이다. 누군가에게 음식을 제공할 때, 놀라울 정도로 큰 사랑과 보살핌이 서로에게 베풀어진다.
예수님께서는 열두 사도에게 다른 선물을 주시지 않으셨다.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드셨다. 우리는 가난한 자와 병든 자, 그리고 잃어버린 자들을 방치해 두어서는 안 된다. 예수님처럼 우리도 구체적인 행함으로 그들을 사랑의 품안으로 끌어안아야 한다.
10. 21세기형 교회는 자유롭게 예배를 드린다.
이제까지 우리는 예배를 드릴 때 감정을 억제시켜 왔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익숙한 문화만 받아들이려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예배분위기는 오늘날 급변하고 있다. 특히, 미국 교회는 예배를 드릴 때 춤을 추는 것에 대해 상당한 거부반응을 보여왔다. 미국 문화 속에는 민속춤에 대한 전통을 담고 있지 않다. 다른 나라의 문화를 들여다보면, 민속춤은 가족과 친구들간의 결속을 다져주며, 전통의식을 거행하는 데 도움이 되는 건전한 행위로 비쳐진다.
그러나 미국에서의 춤은 거의 폐쇄적으로 나이트클럽을 연상시키며 강한 성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문화적인 함정이 교회로 하여금 주님께 자신을 내어드릴 때, 춤을 추는 행위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로 인한 성령의 기름부음과 역사를 방해하도록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자유롭게 예배를 드리길 원하신다. 예배 중에 춤추는 것이 반드시 내적인 자유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거룩한 춤 속에는 우리가 갖고 있는 억압과 두려움을 하나님께 맡기면서 그분을 자유롭게 경배할 때 오는 해방감이 있다.
오늘날 교회에 오는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문제가 해결되기를 원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구하고자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21세기 사회의 변화 속도는 그 어느 때보다 빠르다. 이러한 환경은 새로운 각도의 교회사역을 요청하고 있다. 변화에 대처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우리의 능력은 위축되고 만다.
이장석 부장(교회성장연구소 전략개발부, issacljs@empal.com)
© 2020 Christianitydaily.com All rights reserved. Do not reproduce without permission.





































